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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행여라도 누구든 내게 왜 사느냐고는 묻지 마라 나는 평생 명예도 욕망도 없었으니 무슨 검증이나 털어 먼지 찾길 일 없다 하지만 나도 털면 먼지 꽤나 나오지 않겠냐만 이나마 되잖게 뜻한 척할 수 있는 건 신독처럼 나 스스로에게나 부끄러울 뿐 나 아닌 그 누구에게도 부끄럽진 않아서 그렇다. 쉽게 아무렇게나 다 내 탓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내 차의 뒷유리창에 붙이는 나만 볼 수 있는 내 탓 말고 나는 못 보더라도 내가 남에게 보이게 하는 다 내 책임이라고는 한다. 요즘은 걱정이 계속 늘어난다 떠날 때 부끄럽지 않게 보이고 싶어서일까? 떠나고 나면 창피스럽든 손가락질 받든 무슨 상관이겠냐만 행여라도 그딴 일 뭐 남겨질까 해서 이다지도 염려스러워진다. 나는 벌써 가 아니라 이미 사는 동안 즐겁게라든지 즐기면서 살..
새벽에 집을 나섰다. 공기도 신선하고 사람들도 없어서 좋았다. 도심을 많이 벗어나는 곳이 없어 길 생김새는 성에 차지 않지만 세 시간 정도 15km 남짓 걸었다. 친구가 그러더만 새벽에 미쳤다고... 잠이 오지 않아서는 아니지만 새벽이면 늘 눈이 말똥거리는 올빼미 타입이라 새벽에 걷는 게 참 좋다. 찬물에 샤워하고 잠자리에 드는 이게 내 행복의 거진 다를 차지한다. 늙어가면서 스스로의 몸뚱이에 누린내 같은 거라도 날까 노심초사하며 산다. 남자들이 나이 들어가면서 잘 안 씻는다는 이야기들을 하던데 나로서는 신기타 세 시간 걷고 들어오니 날이 밝아버렸다. 하지만 난 아무것에도 습관성 버릇은 싫어한다. 아니다 싶으면 즉시 고치려고 노력한다. 좋게만 볼 게 아닌 것은 아직도 내가 타인의 눈치를 보는 것이라서일 ..
내가 삶이 서툴다 그러더라만 요즘 되돌아 보니 여태 궁상만 떨다가 평생을 청승스럽게 살은 것 같다 하루만이라도 완전 마음대로 살아보리라 작심 여러 번 해봤었는데 잘 안되더라 궁상을 떨고 청승맞게 조심하고 뭘 할 게 있기나 있으랴만 미리 대비를 한답시고... 늘 그랬네, 신용불량이 되면 또 뭐 어떄서 그딴 거 할 수 없다고 청승 떨고 아낄거나 뭐 있다고 궁상시럽게 살았는지 늘 그래...수시로... 오늘도 길을 걸으면서 이제부턴 그냥 맘 놓아버린 채 편하게 살아버리고 싶다 ...라고 왜 속된 표현일진 모르겠다만 옛말에도 있잖아?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인데 백도 못 가졌는데 십을 가지고 아등바등할 필요 뭐 있겠냐고 물론 부를 이야기 하려는 건 아니지만... 돈 뿐이 아니라 내 등에 짊어진 짐부터 사고하는..
늙긴 늙은 겐가 또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길을 가다 땅에 떨어진 꽃 한 송이를 봤다 동백꽃처럼 가장 화려하게 만개했을 때 제 모가지 뚝 땅으로 떨어트리는 꽃 찾아오지 않는 님 담장 밖으로 목 내밀어 기다리는 모습이랜다. 해서 예로부터 양반이 아니면 집 안에 키울 수 없었대나... 자꾸 이름들을 잊어먹는다. 능소화를 길에서 만나고 하루 종일 곰곰거렸더랬는데 그 이름 기억하려다 그조차 그만 깜빡 잊고 있다가 하루가 지나서야 갑자기 이름이 떠오른다. 숲을 걷다가 잘 알고 있는 나무와 풀들의 이름이 입 속에서만 꼬물댈 뿐 입 밖으로 이름이 불리어지지 않는 기억 영희 순이 철수 그런 흔한 이름들 외에 알던 사람들의 이름들도 하나둘씩 기억이 쉬 떠오르지 않는다.. 내 이름도 누군가들에게서 점차 잊혀갈 테지...
특이한 사람일까? 게다가 또 까칠하고 소심하고... 누구긴 누구겠어? 나 말이지 뭐, 유년시절부터 종종 들었던 말 중에는 순수한 소년 세심하고 다정다감하면서 배려를 잘하고 뭐 그랬었는데 늙어가면서 소심으로 바뀌고 까탈스러워진 것일까? 근 이십 년 넘게 혼자 살게 된 이유를 보면 말이다... 스스로가 까탈스럽다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난 사람들이 특히 여자들 중에 맨발로 슬리퍼 같은 거 신은 채 다니는 거 싫더라, 내가 싫어하는 거 무슨 상관이야 싶긴 하겠지만 암튼... 사람은 얼굴만큼이나 발도 깨끗하게 해야 된다고 생각해서 그래, 얼굴은 화장씩이나 하면서 발은 아무렇게나 하는 거 별로거든 옛적 카투사로 군 생활할 적엔 화장실이 칸칸이 쭉 있고 샤워실과 세면대가 여러 개 배치되어 있는데 미군들은 면도 후 수건..
강변을 걷다 두어 군데 차려진 낚싯대를 보곤 발길을 멈춘다 고기가 물었을 때의 휘청이는 초릿대와 힘겨루기 할 때 의 손맛 그리고 은빛 비늘 반짝이며 수면 위로 끌어올려지는 물고기 잠시 유혹에 빠져든다 참붕어 살고 있는 저수지 가까이 작은 시골 마을에서 아궁이 불 지피며 살고 싶기도 했는데 하릴없이 낚싯대 하나 드리우고 찌 올림에 설레며 새벽을 맞고 싶었는데 그저 그리움으로 남겨질 이루지 못할 사랑 같은 것이려니... 세준-- 무거운 절들은 살기도 참 잘한다 가벼운 중이 되어 떠나는 내게 그들은 핀잔 섞인 말들로 그렇게 살면 안 된다면서 사회성 결여라더라만... 나는 줄곧 결여된 인간으로 살았던 것일까? 내 생각엔 얼토가 당토치도 앟았었고 그들이 말하던 사회성이란 게 법을 떠나서 거짓과 자기 합리화 투성이..
길 위에서 멀리 최대한 멀리 돌아서 걷는다. 도심을 벗어나려면 차를 타야 되니 걸어서 외곽방향을 향해 무조건 걷는다. 야트막한 산들을 만나면 무조건 넘어서 걷는다. 백두대간을 할 때처럼 야트막한 산들을 계속 넘다 보면 오르내리막이 반복되는데 올라갔다가 다 내려와서 다시 오르막을 만나면 조금은 고역이다. 이곳에서는 아무리 빙빙 돌아 걸어도 하루 종일 40km를 걷기가 어렵다. 종일 그냥 걷고만 있으면 별 시답잖은 잡념들이 사그라들어 좋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걷는데 그러고 보니 미쳐 물 한 방울 준비하지 못했네... 산다는 거 참 고달프다 삶이 고달픈 건 사는 게 힘들어서도 버거워서도 아닌데 참 바보같이 왜 이렇게 살고 있는지를 모르겠다는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고 그냥 그다지 당기지도 않는..
반항하던 청소년 시절 경전선 부산발 목포행 야간열차가 진주에서 밤 열한시경에 출발하는데 순천 도착하면 열두시가 넘는다. 그땐 무엇 때문에 그랬었는지 자주 야간열차를 타곤 했었는데 간혹 여자친구가 있었을 땐 응큼한 작전상 여행으로 택하기도 했었다. 요즘엔 천천히 달리는 비둘기열차도 없거니와 KTX는 느긋하게 즐기는 여행의 즐거움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었는데 아마도 현대인의 빨리빨리 습관탓이려니... 가장 감명 깊었던 영화니 독서니 뭐 어쩌고 저쩌고 라고 묻는 일이 간혹 있었다만 나야 좀처럼 그런 경험이 없었는데 우연히 읽게된 책 한 권으로 인해 내게도 가장 감명깊게 읽었던 책이라는 게 하나 생겼다. 작은 집에서 사는 형편이다보니 이사갈 때마다 책 수십 권에서 많게는 떄론 백권도 넘게 버리곤 하는데 올해도 새..
오늘도 설핏 들었다만 잠 이제는 포기했다만 평생 죽음처럼 깊은 잠에 대한 바램이 있었다. 어차피 죽으면 썩어질 몸뚱아리고 살아 못잤던 깊은 잠 영원히 잘 터인데 이제와서 소원한들 뭐하랴, 여태도 비슷하게 살아오기는 했지만 요며칠은 유독 사업 운운했던 것과 코로난지 뭔지 하는 것 떄문에 생체리듬이 엉망으로 꼬여서였던지 평소보다 더 늦게 잠들기 일쑤였다. 내겐 없기도 하거니와 주제에 어울리지 않을지 모르지만 난 불면증을 믿지 않는데 몸을 다치거나 어쩔 수 없는 노환의 질병이 아닌 다음에야 무슨 무슨 증...중독같은 증세는 생각이나 스스로의 하기 나름이랍시고 아예 믿지 않는다. 그래서 좀처럼 트라우마 같은 것도 없다. 다만 어떤 것에 의해 크게 다쳤을 떄는 한동안 남아있기는 한다. 보통 사람들이 잠자리에 들었..
이번 생은 실패했다고 그랬다가 핀잔을 들었었지 하지만 이번 생은 분명히 실패했음이 분명한 건 한 평생이라는 여태 살아오면서 곁에 내 편하나 없다는 게 실패한 인생 아니고 뭐란 말인가... 부부 애인 뭐 그런 걸 말하려는 건 아니다 수 십년을 어쩔 수 없어서라며 부부인 채로는 살아가는 남남들 혼인을 하고 아이를 낳고 가족을 이루고 국가가 지탱이 되는 사회적인 규약은 이젠 바뀔 수 밖에 없게 되어 가는 것 같지? 애인만큼 좋은 황홀한 사이가 어디 있을까? 부부야 법적으로 인정되고 남들이 믿으면 되는 것이지만 애인은 말 그대로 사랑을 해야 애인이라는 표현이 가능하잖은가 말이다 그건 가짜가 있을 수도 없고 사랑하지 않은 애인 사이란 대상은 애인이라고 해선 안 되고 있을 리가 없으니까... 부러움이나 시샘 후회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