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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살면서 몇 번의 실패를 했을까? 아니 단 한 번도 성공(?)이란 것을 했던 것 같지 않았으니 무수히 많은 실패를 했을 것 같다. 그런데 난 실패를 했던 것 같은 기억이 별로 없다. 성공을 하려고 애썼던 기억이 없으니 당연히 실패를 했던 기억도 없을 테지 뭐, 열심히 살기도 했던 것 같고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아온 것 같은데 성공이나 뭐 잘 될려고 많은 노력을 한 기억도 없고 아등바등이나 악착같은 그런 적이 없었고 오히려 성공을 위해서라면 게을렀던 것 같다.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좋아하는 일 다른 이의 부탁에만 어느 정도 부지런했었지 정작 돈이 되거나 성공할 수 있을법한 일에는 무척 게을렀던 게 사실이다. 그랬으니 실패한 인생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데 스스로 생각해봐도 좀 궁색한 핑곗거리를 찾은 것 같다..
한라산 둘레길 동백 구간 입구 안내센터 내가 근무하는 곳이다 토요일엔 사려니 숲에서 근무한다. 다시 또 이제부터 근 2년 만에 다시 서귀포 숲으로 돌아왔다. 살아낸 세월도 쳇바퀴는 아니겠지만 헛바퀴처럼 돌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셈이다. 반기는 이 없는 곳으로 갔다가 다들 잘 왔다고 어서 오라고 뭐하러 갔었냐고들 한다. 역시 내가 있을 곳은 숲 속이다. 나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곳을 버리고 유랑 성에다 갑작스럽게 변하는 환경에도 곧잘 적응하던 것만 믿고 그토록 싫어하던 서울 땅을 다시 밟았드랬으니... 이제는 숲에서 살아야겠다. 그냥 나무를 부둥켜안으며 풀이랑 나뭇잎 냄새나 맡으면서 마주한 채 눈 흘기던 멧돼지랑 짝짓기 하는 노루들 울음소리 나 들으면서 예서 살련다. 나만큼이나 어리숙한 녀석들이 통로 ..
기억에 없다. 하도 노란민들레들만 오렛동안 봐왔었기에 언제 하얀 민들레를 본 적이 있었던가 싶기도 하다 제주도에서는 장아찌를 그냥 '지'라고 표현하는데 육지처럼 된장이나 고추장이 버무려진 장아찌는 잘 없다. 지인이 담궈 보내준 하안 민들레 지를 먹어봤는데 아주 쌉싸름하다 난 고추장과 젓갈을 넣은 민들레 김치를 좋아한다. 선호하는 김치가 고들빼기김치 민들레 김치 들판에서 보라색으로 자라는 쪽파를 섞은 조선 토종 갓김치 열무김치 등인데 직접 담가보고 싶기도 하다 이 녀석들만 보면 괜스레 심쿵해지는 건 왜일까? 예덕나무의 새 잎이 나올 땐 어김없이 선연한 붉은빛이다. 언젠가 티브이에서 성인병 때문에 예덕나무의 껍질을 벗기러 다니는 사람을 봤는데 예덕나무의 껍질이 효과가 있는 모양인데 글쎄 요즘엔 살기가 좋아져..
문자가 왔나 보다 또 그렇고 그런 홍수같이 쏟아져 오는 홍보성 광고성 문자려니 여권 만료일이 다가오니 갱신하라는 문자다 마지막 갱신할 때 10 년으로 꽤 넉넉하게 여유를 뒀었는데 갱신 후 새 여권으로 바꾸고 나서 한 번도 사용을 안 했었는데 어느새 10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티브이에서 본 기억이 나는데 시한부 선고를 받았거나 나이가 아주 많은 환자들의 인터뷰 그들이 가장 후회하는 첫 번째가 가 보고 싶었던 곳을 미루기만 하다가 영영 못 가게 되었다는 것 여유 같은 게 없어서 못 가다가 막상 여유가 생기고 나선 언제라도 갈 수 있어서 조금씩 미루기도 했다는 것 그러다 이제는 코로나 때문에 아예 포기를 하게 되었다. 그때 내가 외국을 여행 다녔던 것은 여유는 커녕 오히려 최악의 상태였다고 해도..
배려 살면서 내가 다른 건 개판이었다 쳐도 배려하는 그럭저럭이었다 믿었다. 흔히들 말하는 찬다 또는 차였다 라는 표현이 있는데 살아오면서 누구를 차 본 적은 없었으니까 이성 간의 문제만이 아니라 이건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있을 수 있는 일일 텐데 배신이라고 달리 표현할 수도 있겠다. 뒤통수 맞는 것처럼 당했던 적은 있지만 배신을 하거나 신의를 져버린 적은 없어서 하는 말이기도 하다 우스울 수도 있겠지만 낌새를 느끼고서도 내 먼저 사람을 버리지는 않고 상대방이 먼저 나를 차거나(?) 버릴 수 있는 기회를 주곤 했다. 배려라고 하기에 적절치 않을 수도 있고 아니랄 수도 있을 테지만 어찌 됐든 내가 먼저 모질게 하지 못하는 성격 탓이었기도 하다. 배려 싸우거나 성격차이 같은 것도 아니었기에 웃으면서 자판기 커피..
왈가왈부들 하는 해저터널은 싫고 제주도로 가는 기차가 있으면 참 좋을 것 같다. 그것도 옛적 비둘기호처럼 완행열차로 느리게 가고 싶다. 세 번째 제주도로 이사를 간다 2000년도에 이사를 가서 일 년 남짓 2011년에 이사를 가서 7년간 살았었고 이번에 다시 이사를 가게 된다 서귀포는 사계절 상록수가 많아 비가 내린 후 지하로 거의 다 스며들기에 건천이 많은데 습도는 오히려 높은 편이다. 해서 바닷가 청취를 좋아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나는 산간도로 근처의 약간 높은 곳을 선호하는 편이다. 한라산 자락 약간 아랫쪽 숲 속에서 일을 하니까 매일 숲 속을 걷게 된다 숲에서는 출근 시간이 기다려지기도 하지만 퇴근시간이 기다려지지 않아서 더 좋다. 내 삶의 특성상 모를 일이긴 하지만 이번엔 이사 가면 평생을 살 작..
그리움은 아닌 조금 다른 보고 싶은 사람 살아온 세월 동안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분명 마음에 병을 남기게 될 테지 보고 싶은 이라는 표현은 볼 수 없거나 보려고 하지 않는 게 나아서일 테니까... 볼 수 있다는 사람이라면 보고 싶다 보고 싶었다 라고는 않을 테니까 쓸쓸하게 살면서 위안이라고 해도 될까만 나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으로 쓸쓸함이 덜해진다 보고 싶어 할 것은 분명한데 왜서 나를 찾아오지 않는가 하는 궁금증은 오래 가지지 않는다 나를 그리워하려니 하는 그런 것은 아니다만 무탈에 대한 혹여 하는 걱정 같은 아픈 마음은 있다 이제 다시는 볼 수 없거나 나를 찾아오지도 않거나 찾아가지도 않을 것이지만 못 만나게 되더라도 정말 무탈하게 아프지 않고 살아가게 되기만 바란다
난 행복을 모르고 살았다 행복이 어떤 것인지조차 몰랐던 것 같다. 지금 뜬금없이 무슨 행복일까만 사는 게 불안해져 가는 요즈음 살아있는 거? 지속할 자신도 아무런 용기나 욕심이 없다 그렇다고 당장 죽으려는 것은 아니다만 계속 탈(?)없이 오래 살려고도 않거니와 그럴 자신도 없고 그렇게 될 것 같지도 않다. 그렇게 많은 나이는 어니겠지만 잘 죽는다는 것에 부쩍 관심이 많아진다. 건강에 관한 솔깃해짐은 건강하게 잘 살려는 것보다 아픈 채 나을려고 하는 몸부림이 걱정스러워지는 것일 뿐,. 살면서 가끔 아팠을 때 그냥 무작정 잠을 청했었다. 푹 자고 일어나면 씻은 듯 나아질 거라는 되잖은 희망이었다. 몇 번은 그런대로 자는둥 마는둥이었을지언정 주구장창 잠만 좇아다녔다가 대충이나마 자리를 털고 일어나기도 했었다...
알고야 있었지만 막상 헤아려보니 혼자 살게 된 햇수가 22년이네... 성실 부지런치도 않거니와 노력파도 아니고 매사에 긍정적이기보단 부정적인 편이다 해선지 잠자리에 들 때마다 혹시라도 내일 나의 해가 온전치 않을까 온갖 궁리며 걱정거리 한시간이다 내게 뜰 해가 온전치 못할까 싶은 것은 떠오르는 해라기 보다 별 쓰잘데기 없는 준비며 걱정거리들을 해결하려는 몸부림이다 여느 사람들처럼 돈 걱정일 수도 있겠지만 없이 살면서 별스럽게 돈을 쫓지는 않은 성격인지라 닥쳐지는 환경변회에 또 곧잘 적응하는 편이라 그랬을 터, 그 세월 혼자 살면서 외롭지 않았다고 한다면 거짓일 수도 있겠지만 외롭다기 보다는 그런 건 속칭 쪽 팔려서 외롭지 않은 듯 살았을 것이다 오히려 고독을 고즈넉으로 즐기면서 산 것 같으니 말이다 그런..
살면서 단 한 번도 불러주지 못했었고 불러본 적 없다. 너는 이것 때문에 미안해 할 필요가 뭐 있냐 그럴테지만 나는 모든 게 미안하다 그냥 니가 여늬 동네 아줌마들처럼 그럭저럭이라도 살아갔으면 덜 미안했을테다 미혹까지만 살겠지 라고 입버릇처럼 되뇌이던 청춘의 시기 한 평생을 버텨내면서 보여질 때든 보이지 않았을 때도 어떻게 살아내고 있는지를 알던 우리 내가 가진 미안함보다 언제나 내가 그냥이라도 보통의 똥배 나온 이웃집 아저씨들처럼 행복한 듯 살아주기를 바랐을 너 내가 그랬었던 것처럼 이렇듯 제대로 못(?)살아서 미안해 하는 우리 내것도 아니고 니것도 아닌 채 각자 남의 것으로만 살아왔던 우리 그러면서 스스로는 포기했어도 서로가 더 행복해지길 바라며 살았을 우리 지금 이 순간에도 나보다 더 평온하게 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