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실패한 자의 궁색한 핑계 본문

측은지심

실패한 자의 궁색한 핑계

까미l노 2021. 3. 21. 20:18

살면서 몇 번의 실패를 했을까?

아니 단 한 번도 성공(?)이란 것을 했던 것 같지 않았으니 

무수히 많은 실패를 했을 것 같다.

 

그런데 난 실패를 했던 것 같은 기억이 별로 없다.

성공을 하려고 애썼던 기억이 없으니 당연히 실패를 했던 기억도 없을 테지 뭐,

 

열심히 살기도 했던 것 같고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아온 것 같은데 

성공이나 뭐 잘 될려고 많은 노력을 한 기억도 없고

아등바등이나 악착같은 그런 적이 없었고 오히려 성공을 위해서라면 게을렀던 것 같다.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좋아하는 일 다른 이의 부탁에만 어느 정도 부지런했었지

정작 돈이 되거나 성공할 수 있을법한 일에는 무척 게을렀던 게 사실이다.

 

그랬으니 실패한 인생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데 

스스로 생각해봐도 좀 궁색한 핑곗거리를 찾은 것 같다.

 

 

산속 숲에 있는 나무가 아니다

마를 가운데 빌라들도 있는 공터 주차장에 있는 것이다.

그렇고 그런 작은 나무도 아닌 무려 수십 년을 살아낸 거대한 고목이다.

 

 

제주도 사람들은 감귤나무 외에는 별 다른 관심들을 갖지 않는 편이다.

산림청에서는 소나무 외 다른 나무엔 관심이 없고...

 

일제 강점기 일본놈들이 다 베어 전쟁물자로 사용해버려 제주도에는 거대한 고목이 거의 없는 편이다.

더러 있는 고목은 마을 입구에 서 있는 느타나무인데 목재로 사용하기엔 부적합해서 살아남은 것들 뿐

 

나무의 아래 무지막지한 덩굴을 자르고 있었더니

지나가던 동네 아주머니 말씀

동사무소에서 나왔느냐고

아니라고 했더니 그럼 시청에서 나온 거냐고 묻는다.

 

일요일에 동사무소 또는 시청에서 공무원이 마을 고층같은 대민 봉사하러 나오기도 할까?

 

내 허벅지 두께만큼 자라서 나무를 타고 올라

거의 꼭대기까지 무성한 잎으로 뒤덮었다.

 

나무의 수피에 무수히 많은 빨판 같은 잔털을 부착하여

사계절 상록으로 나무의 광합성을 방해하며 살아간다.

 

종내는 둘이 같이 쓰러져 죽게 되는데

니 죽고 내 살자는 살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만

이건 뭐 어린 떡잎 때부터 기대어 이용하고선 제 덩치만 키우다 보니

결국 고목이라도 그 무게와 무수한 잎사귀로 가려 햇빛 차단으로 인해 고사하게 되는 것이다. 

 

고약한 유해식물 치고는 생김새 하나는 그럴듯 하다

심지어 먹음직스럽게도 생겼다.

소가 잘 먹는다고 송악이라는 이름도 있다.

 

뿌리를 달여 차로 마시기는 한다.

제주도에는 집의 담에도 과수원의 돌담에도 삼나무에도 

어디든 가리지 않고 무지막지하게 번식을 한다.

 

덩굴의 아랫부분을 다 잘라준 후

내가 쓸 덩굴 가지 몇 조각을 챙겼다.

 

나무를 살리면서 잘라낸 조각들로 생태적 공예를 하는 것이다.

'측은지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덤덤 껄렁  (0) 2021.05.23
싶은 것 하고 살아  (0) 2021.04.18
한국의 아름다운 숲길  (0) 2021.03.16
부초 부유인  (0) 2021.03.10
언제쯤 나를 사랑하지?  (0) 2021.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