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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배려 살면서 내가 다른 건 개판이었다 쳐도 배려하는 그럭저럭이었다 믿었다. 흔히들 말하는 찬다 또는 차였다 라는 표현이 있는데 살아오면서 누구를 차 본 적은 없었으니까 이성 간의 문제만이 아니라 이건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있을 수 있는 일일 텐데 배신이라고 달리 표현할 수도 있겠다. 뒤통수 맞는 것처럼 당했던 적은 있지만 배신을 하거나 신의를 져버린 적은 없어서 하는 말이기도 하다 우스울 수도 있겠지만 낌새를 느끼고서도 내 먼저 사람을 버리지는 않고 상대방이 먼저 나를 차거나(?) 버릴 수 있는 기회를 주곤 했다. 배려라고 하기에 적절치 않을 수도 있고 아니랄 수도 있을 테지만 어찌 됐든 내가 먼저 모질게 하지 못하는 성격 탓이었기도 하다. 배려 싸우거나 성격차이 같은 것도 아니었기에 웃으면서 자판기 커피..
왈가왈부들 하는 해저터널은 싫고 제주도로 가는 기차가 있으면 참 좋을 것 같다. 그것도 옛적 비둘기호처럼 완행열차로 느리게 가고 싶다. 세 번째 제주도로 이사를 간다 2000년도에 이사를 가서 일 년 남짓 2011년에 이사를 가서 7년간 살았었고 이번에 다시 이사를 가게 된다 서귀포는 사계절 상록수가 많아 비가 내린 후 지하로 거의 다 스며들기에 건천이 많은데 습도는 오히려 높은 편이다. 해서 바닷가 청취를 좋아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나는 산간도로 근처의 약간 높은 곳을 선호하는 편이다. 한라산 자락 약간 아랫쪽 숲 속에서 일을 하니까 매일 숲 속을 걷게 된다 숲에서는 출근 시간이 기다려지기도 하지만 퇴근시간이 기다려지지 않아서 더 좋다. 내 삶의 특성상 모를 일이긴 하지만 이번엔 이사 가면 평생을 살 작..
그리움은 아닌 조금 다른 보고 싶은 사람 살아온 세월 동안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분명 마음에 병을 남기게 될 테지 보고 싶은 이라는 표현은 볼 수 없거나 보려고 하지 않는 게 나아서일 테니까... 볼 수 있다는 사람이라면 보고 싶다 보고 싶었다 라고는 않을 테니까 쓸쓸하게 살면서 위안이라고 해도 될까만 나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으로 쓸쓸함이 덜해진다 보고 싶어 할 것은 분명한데 왜서 나를 찾아오지 않는가 하는 궁금증은 오래 가지지 않는다 나를 그리워하려니 하는 그런 것은 아니다만 무탈에 대한 혹여 하는 걱정 같은 아픈 마음은 있다 이제 다시는 볼 수 없거나 나를 찾아오지도 않거나 찾아가지도 않을 것이지만 못 만나게 되더라도 정말 무탈하게 아프지 않고 살아가게 되기만 바란다
난 행복을 모르고 살았다 행복이 어떤 것인지조차 몰랐던 것 같다. 지금 뜬금없이 무슨 행복일까만 사는 게 불안해져 가는 요즈음 살아있는 거? 지속할 자신도 아무런 용기나 욕심이 없다 그렇다고 당장 죽으려는 것은 아니다만 계속 탈(?)없이 오래 살려고도 않거니와 그럴 자신도 없고 그렇게 될 것 같지도 않다. 그렇게 많은 나이는 어니겠지만 잘 죽는다는 것에 부쩍 관심이 많아진다. 건강에 관한 솔깃해짐은 건강하게 잘 살려는 것보다 아픈 채 나을려고 하는 몸부림이 걱정스러워지는 것일 뿐,. 살면서 가끔 아팠을 때 그냥 무작정 잠을 청했었다. 푹 자고 일어나면 씻은 듯 나아질 거라는 되잖은 희망이었다. 몇 번은 그런대로 자는둥 마는둥이었을지언정 주구장창 잠만 좇아다녔다가 대충이나마 자리를 털고 일어나기도 했었다...
알고야 있었지만 막상 헤아려보니 혼자 살게 된 햇수가 22년이네... 성실 부지런치도 않거니와 노력파도 아니고 매사에 긍정적이기보단 부정적인 편이다 해선지 잠자리에 들 때마다 혹시라도 내일 나의 해가 온전치 않을까 온갖 궁리며 걱정거리 한시간이다 내게 뜰 해가 온전치 못할까 싶은 것은 떠오르는 해라기 보다 별 쓰잘데기 없는 준비며 걱정거리들을 해결하려는 몸부림이다 여느 사람들처럼 돈 걱정일 수도 있겠지만 없이 살면서 별스럽게 돈을 쫓지는 않은 성격인지라 닥쳐지는 환경변회에 또 곧잘 적응하는 편이라 그랬을 터, 그 세월 혼자 살면서 외롭지 않았다고 한다면 거짓일 수도 있겠지만 외롭다기 보다는 그런 건 속칭 쪽 팔려서 외롭지 않은 듯 살았을 것이다 오히려 고독을 고즈넉으로 즐기면서 산 것 같으니 말이다 그런..
살면서 단 한 번도 불러주지 못했었고 불러본 적 없다. 너는 이것 때문에 미안해 할 필요가 뭐 있냐 그럴테지만 나는 모든 게 미안하다 그냥 니가 여늬 동네 아줌마들처럼 그럭저럭이라도 살아갔으면 덜 미안했을테다 미혹까지만 살겠지 라고 입버릇처럼 되뇌이던 청춘의 시기 한 평생을 버텨내면서 보여질 때든 보이지 않았을 때도 어떻게 살아내고 있는지를 알던 우리 내가 가진 미안함보다 언제나 내가 그냥이라도 보통의 똥배 나온 이웃집 아저씨들처럼 행복한 듯 살아주기를 바랐을 너 내가 그랬었던 것처럼 이렇듯 제대로 못(?)살아서 미안해 하는 우리 내것도 아니고 니것도 아닌 채 각자 남의 것으로만 살아왔던 우리 그러면서 스스로는 포기했어도 서로가 더 행복해지길 바라며 살았을 우리 지금 이 순간에도 나보다 더 평온하게 살기..
무슨 영화나 소설에도 나오던 말 진정으로 아끼는 사람에게는 어떤 이유든 조건같은 것 없이 원하는대로 다 해준다는 것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목숨을 버리기도 한다는 것 사랑하기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스스로가 떠나거나 떠남을 이해하는 것 젊어 한창 때 까지는 그말이 싫었다 어떻게 죽을만큼 사랑하는데 떠나겠으며 떠나 보낸단 말인가...라고 하기사 사랑도 이별도 여러번 했던 사람이 무슨 자격이야 있겠냐만 죽기까지 일생 단 한 번 오직 한 사람만 사랑했던 사람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다 늙은 할배가 무슨 사랑타령 하려는 건 아니다만 돌이켜보니 빵 없이도 살 수 있다는 게 사랑이라고 항변 아닌 항변같은 걸 했었는데 비록 여러번 사랑을 했었기에 자격 없는 건지는 모르겠다만... 어느날 전혀 짐작조차 ..

조금싹 변해가는 모습들 처음의 열정이 식고 관심이 줄어들고 고마움이 일상이 되고 눈빛과 말투가 심드렁해지고 아름답게 보이던 것들이 시시해져버리는 결코 처음처럼 한결같을 수 없는 변하기 마련인 그것 친구 하나를 또 잃었다 삶에 시달려 놓쳐버린 그녀의 아리땁던 모습을 떠올린다 그애가 반했던 에전의 내 모습도 사라졌다 슬프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아마도 좀 더 시간이 흐르면 사랑했던 사실마저 잊게되리라 동무였거나 정인이었거나 잠시 함께 길을 걸을 뿐인데 보내는 일에 익숙해져야 한다 인연이 다했으려니 할일이다 나도 잘 아는 친구라는데 그렇구나... 더러 짐작가는사람들을 떠올려 보다가 예전 갑작스럽게 떠났던 아는 사람들의 면면처럼 삶이 그러하듯 미쳐 상상조차 못했던 이름일까봐 차마 더 묻지 않았다. 아주 잠시나마 행..
친하게 지내는 지인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다. 내가 십 여년 전부터 개인 블로그를 하는데 가끔 내 블로그에 들러 글을 읽어보곤 한다. 최근 만나서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핀잔인 듯 충고인 듯한 말을 해준다. 그런 글을 쓰면 여자들이 싫어한다고... 말의 진의를 모를 리가 있겠는가 별 다른 대꾸를 안 하고 있으니까 지금도 여자를 만날 수도 있는데 그런 식으로 글을 써 놓으면 보통의 여자들은 관심을 멀리하지 않겠느냐고... 이 나이에 내 주제에 무슨 또 다시 여자를 만나겠냐고 내 한몸조차 제대로 건사를 못하는데 누구 다른 사람을 만나 보호를 할 수 있느냐고 하소연 같은 대꾸 아닌 대꾸를 했었다. 그 지인이 그래도 아직은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로 끝을 맺더라만 나는 다시 또 사람을 만나는 것에 대해 포기를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