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측은지심 (492)
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 카미노 동강에서 링반데룽 " 날씨: 하느님 부처님 제발 함박눈이 내리게 해 주십사였으나... 오늘 걸은 거리 길 아닌 강길 약20km (누적거리 505km) 걸음 수 약 29.000 보 (누적걸음 약 726,000 보) 영월을 출발 그 유명한 어라연 전망대를 포기하고 곧장 거운리로 들머리를 잡고 시작지점부터 계속 오르막 길..
비어있을 의자들이 주는 냉기 시골 다방 문을 밀치고 들어설 때 처럼 빈 의자들은 일제히 갸웃 고개를 비틀고 객실 안을 입장하는 나그네를 바라보겠지... 수많은... 알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의 체온을 싣고 달려서 누적되고 퇴색되어 여행의 설레임 혹은 불안한 감정의 파편들이 켜켜이 겹..
왔던 길 되돌아 가면서 뒤 돌아보지 않으려는 사람 애써 미안해 한답시고 화해의 손 내 밀었던 어줍잖은 몸짓 서투르고 어색한 막무가내식의 어투라서 서운한 감정을 삭이게 할 수 없어서는 아닌 듯하다... 오늘 가까웠던 사람 하나와 다시 멀어지게 된 비 오는 날
좋은 기억을 가지고 갈려던 마음은 점점 엷어져 가고 사치와 허영으로 여행이나 다니는 길이라고 폄하하던 혼자 걷는 내 산길에 내리던 비는 적막하기까지 했었습니다. 채 다 풀지 못했던 무지한 몰이해 끝에 오는 이 황당함을 다스리기가 참으로 난감합니다. 산다는 건 마음 속에 있는 그 무엇들을 ..
이제 다시는 내 생애에 꽃을 피우지 않으리라. 마지막 남은 꽃대를 들어 올리는 일만으로도 버거운 이 새벽. 지난 밤 말라가는 실핏줄 뽑아 피워 낸 여린 내 꽃술에도 고통으로 투명해진 흔적들이 그렁그렁하지만 그 뿐, 잠시 후면 찬란한 여명에 홀연히 지리니 삶으로부터 뿌리를 거두고 ..
빨리 꽃지는 밤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남자들의 그것처럼 야릇하게 퍼지는 밤꽃 냄새가 나기전에 당신과 함께 새벽 호수에서 물안개를 보고싶습니다 살구씨처럼 흘겨보는 당신의 눈에 때 이른 욕망까지 내 보이고 싶습니다 부끄러워 할 당신의 벗은 등이 자꾸 떠 올라 슬그머니 물가로 ..
배낭을 꾸리는 연우의 손놀림이 예전 같지 않다. 한두 번 하던 짓거리도 아닌데 벌써 몇 번째 이러고 있는지... 아래에서부터 차례로 침낭이며 옷가지를 넣은 후 텐트 버너 코펠 등속이 반듯하게 각이 지면서 채워져야 하는데 어쩐 일인지 오늘은 계속 꾸려놓은 베낭이 허리 굽은 노인의 ..
----어스름 새벽에 밝아져오는 여명을 등진 채 앉아있는 아내의 모습에 나는 그만 괴기한 악몽을 꾼 듯이 비명 같은 것을 질렀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그때 직감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여자가 무슨 일을 내려고 작정했구나, 하는 것이었다. 이미 아내의 얼굴에는 죄의식이나 두려움 같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