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다시 이제부터 #3 본문

측은지심

다시 이제부터 #3

까미l노 2007. 11. 22. 00:55

전혀 모르는 남인데도

그 모습을 지켜보는 연우의 마음은 늘 편치가 않았다.

 

아직 인생을 덜 살아서일까?

그러나 오늘같은 날의 술 한 잔은 감로주처럼 고맙고도 반가웁다.

 

연우가 국밥을 후후 불며

마지막 국물까지 깨끗이 먹고는 멜라민 밥공기를 들어 막걸리를 마시는데

그 모습을 아까부터 지켜보았는지 단체 패거리들중 의 한 남자가 소리쳐 부른다.

 

"이봐요. 젊은이! 이리로 와서 술 한 잔 더 하슈!"

 

돌아다보니 등산 꽤나 한 듯 검게 그을린 이마에

노무현 주름이 한 일자로 이랑을 이룬 작달막하고 단단해보이는 오십 중반의 사내였다.

 

"아, 괜찮습니다. 편히 드세요!"

 

"사람이 그러면 못써요. 때에 따라서는 줄 줄도 알고 받을 줄도 알아야지..."

 

"아 예..."

 

연우는 이 생면부지의 사내가 누구에게 신세지기도 싫어하고

아쉬운 소리 하기도 싫어하는 자신의 성격을 그새 눈치챘나 싶어 뜨금해하며

자석에 끌리듯 비실비실 사내쪽으로 다가가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실소한다.

 

"어디서 오셨는가?"

 

“서울에서 왔습니다"

 

"혼자서?"

 

"......"

 

`"이 밤에 잠은 어디서 잘려고?"

 

그제서야 퍼뜩 오늘밤 잘 곳이 마땅치 않다는 사실을 깨닫곤 놀란다.

연우는 사실대로 말하고 도움을 청하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을 한다.

 

"사실은 오늘 외설악까지 가려고 했는데 차사고가 나서 차를 견인해 갔어요"

 

"아이고~ 눈길에 미끌어졌는교?

 

큰일날뻔했구먼. 그 잘됐네. 우리도 오색에서 자고

내일 아침 대청을 오를까 했는데 입산 금지라고 해서

외설악으로 해서 속초나 묵호쪽으로 갈까 하고 있는데 잘됐네 그려~.

내 태워다 줌세!"

 

"아 예. 이거 너무 신세를 져서..."

 

"괜찮네. 젊은이! 여기 술 한 잔 따르게나..."

 

"예!"

 

얻어마신 몇 잔 술에 불콰해진 연우가 줏어들은 것은

이들은 남대문 도깨비 시장의 상인들로 십수년전부터 산악회를 조직하여

쉬는 날마다 전국의 이 산 저 산을 유람 겸 등산을 다니는 사람들의 모임이었다.

 

"자! 이제 그만들 가세! 밤길에 운전하려면 최 기사 간 꽤나 쫄을거야. 더

어둡기 전에 그만 일어나세!"

 

모임의 대표인 듯한 사내의 말이 떨어지자

언제 술을 먹으며 떠들었느냐는 듯 일순간에 조용해진 패거리들은

군말 없이 각자의 짐을 챙겨들고 주차장의 대절 버스로 향하는 것이었다.

 

연우는 그 모습을 보며

 

'저건 유신 시대 교련 사열을 열심히 받은 세대의 공통된 특징이야...

'라고 냉소짓는 자신에게 또 한 번 씁쓸한 웃음을 웃어주곤 사람들의 뒤를 따라 버스에 오른다.

 

"다들 탔지? 안 탄 놈 손 들어!"

 

예의 그 대표 사내의 인원 점검이 끝나자

버스는 부릉부릉 몇 번 소리를 지르곤 조용히 주차장을 빠져나가

구불구불 양으로 향하는 고갯길을 기어내려가기 시작했다.

 

버스안의 스팀열기로 창밖을 내다보던 연우의 시야가 점차 흐릿해져 간다.

술기운에 금방 잠에 빠져든 옆자리의 산악회원의 반쯤 입벌린 얼굴을

무심히 건너다보다가 창유리의 안개를 손바닥으로 문질러

캄캄한 산야를 내다보 다가 연우는 문득 제 얼굴에

눈물 한 줄기가 소리도 없이 흘러 내리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묵호로 가는 새벽 기차에 오르니, 여기는 딴 세상 같다.

 

질척한 활기 속에서 사람들 몸에 배인 비릿한 냄새를 맡으며,

그들 몫의 삶울 생각한다. . . .

소주 한 잔에 소리 한 사발,

물고기의 등줄기에 비껴 부서지는 햇살처럼 웃음이 환한 사내의

밑도 끝도 없는 노래가,

 

질긴 끈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의 빈자리에

길을 내며 느슨하게,

또는 팽팽하게 떠다닌다. . . .

 

내려야할 곳이 분명한

이들의 가슴은 저렇듯 넉넉하구나. . . .

덜크덩 덜크덩. . . .

흔들리며

흔들리며

나는 어디로 가는지. . . .

창밖에 눈은 내리고, 밤을 새워 눈은 내리고. . . .

 

 

 

-- 백 창우, 겨울편지·스물다섯 --

 

 

"선생님!"

 

막 모텔 문을 밀고 들어서려던 연우는

젊은 여성의 선생님이라는 호칭에 지난 시간들의 기억이 떠 올라

순간적으로 돌아볼려다가 이곳에 아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싶어

자신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고 단정하고.

그냥 안으로 들어서려는데 한번 더

조금 전 그 목소리의 여자가 이번엔 연우의 앞으로 다가서면서 가로막고

연우의 얼굴을 자세히 본다.

 

"한 연우 선생님 아니세요?"

 

 

하면서 자신의 옆으로 다가서면서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연우는 그 목소리에 대한 기억도 전혀 없는데다가 아는 얼굴이 아닌 젊은

여성이 가까이 다가서기에 적잖이 당황스러워 저도 모르게 어색한 모습이 된다

 

"제 이름이 맞긴 맞습니다마는 ..."

 

"저예요!저 지숙이예요,최지숙!"

 

반가움이 넘쳐 호들갑스럽다는 표현이 어울릴만큼

그 여자는 연우의 코 앞에서 잘 보라는 식으로 자신의 얼굴을 바짝 들이댄다.

 

이십대 중반쯤 됐을까,

귀티 나는 얼굴과 훤칠한 키의 몸에 착 달라붙는

청바지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연우를 정신없게 만드는 건 그 여자의 몸에서

훅 끼쳐나는 화장품 냄새의 은은함이 연우를 혼미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

 

"선생님 저 모르시겠어요?"

 

'측은지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시 이제부터 #1  (0) 2007.11.22
다시 이제부터 #2  (0) 2007.11.22
태안군 소원면 파도리 샘기미  (0) 2007.11.22
왜 걷느냐고 묻거든 #2  (0) 2007.11.22
왜 걷느냐고 묻거든 #1  (0) 2007.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