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파란색 글씨와 검은 색 글씨 본문

측은지심

파란색 글씨와 검은 색 글씨

까미l노 2019. 9. 20. 10:01







파란색의 글씨는 아주 오래전에 유행(?)했었고

검은 색의 글씨는 전세계 어디를 가도 모두들 사용하는 글자 색이다.


요즘에 파란색 잉크를 사용해서 글씨를 쓰면

엉뚱하거나 유별난 사람 취급을 받을 수도 있다.


파란 색의 글씨만 유행했을 떄

가끔 난 아주 빨간색의 글씨를 쓰기도 했었고

한때는 편지 겉봉에 붉은 색의 글씨로 이름을 쓴 적도 있었다.


글쎄...

튀는 걸 좋아해서는 분명 아니었지만

그냥 남들 다 하는대로 따라하는 게 싫었고 남들 다 싫어하는 걸 나 혼자라도 좋아해볼려고

죽을 숫자라는 4라는 숫자를 무척 사랑하기도 했었다.

지금도 난 4층 4호실 같은 숫자를 사용하지 않으려는 한국이 우습다.


우연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초등학교떈 4학년 4반이었고 번호가 44번 일 떄도 있었다.

학교 같은 곳에서는 아이들에게 미신을 믿지 말라고 그랬는지

4학년도 있었고 4반과 4번 그리고 44번도 사용했었다.

예전엔 은행 비밀번호를 4444로 쓰기도 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연속되는 숫자를 비밀번호로 사용 못하게 해서 바꾸긴 했었다만...


좌우지간 난 모든 사람들이 곧잘 따라하려는 유행 같은 건 좀 싫더라

하기사 이런 게 튀는 것일 수도 있기는 하겠다.


내게는 중요한

그러나 다른 이들에게는 극히 사소한

거꾸로 다른 이들에게는 중요하지만 나로서는 극히 사소하다 싶은


지나고 나서이거나 해결이 되고 난 후에는

내게도 별 것 아니게 되기도 하는


하지만 잠시 후에 세상 밖으로 퉁겨저 나가는 한이 있더라도

지금의 일만은 만드시 잘 마무리 하고 싶어지는 책임을 지고 싶어하는 


떄론 맞서지 않고 피해 가는 모습이 내 뒷통수에 보여지기도 하려나 
팔자타령 따위 언제는 했나만 하도 뒷통수 맞는 일 경험타 보니 그러려니 하고 산다.


세상사 내 뜻대로 안될 바에야 가벼운 중이니 무거운 절 탓 않고 떠나야지

그냥 나 싫어하는 사람들 몇 보게 되면 그딴 곳들 미련 없이 떠나곤 했는데 

혹시라도 내가 없으면 멋지게 해볼 수 있다는 욕심들을 벌견 했었을지도...   

  

 

한낮의 하늘이 참 파래...

그대에게도 절실한 것인지 아니면 그닥 개의치 않을만한 일인지 모르겠다만

기를 써서 제대로 끝맺음을 하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이제 나는 어떻게 되든 다 괜찮아졌다.

짧은 시간일 수도 있었지만 요 며칠 사이 한 번 더 스스로가 소심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도 모든 것에서 맘 편하게 놓여날 수 있어서 이 얼마나 다행인지 



북쪽의 티벳 사람들이 말하는 '우주의 어머니'이고

남쪽의 네팔 사람들이 말하는 '하늘의 머리'인 그곳으로 돌아오지 않을 여행을 떠나고 싶다.

높은 산 보다는 깊은 산이 더 좋지 않은가...


내겐 다른 이들에게는 없을지도 모르는 언젠가는 이라는 무기가 있잖은가 말이다

싶다 싶다 두어 번 하면 이루어지곤 헀었으니까...

 

매사 부정적이고(긍정적인 것과 스스로를 위한 이기적인 것의 착각은 안됨)

종교조차 없는 나는 무엇엔가에 부딪혀 헤어나오기 힘들고 제대로 해결 할 수 없게 되었을 땐

잘 안 되는 것이 아닌 그냥 차라리 잘 되었노라고

오히려 만사태평한 긍정이 도사리기도 하다


세상에 와서는

오고 싶어서 온 것이 아니라서 떠나버리자고 한들 떠날 방법도 마땅찮거늘

 남들 다 그럭저럭 부대끼면서 살아가고 무난하다는 삶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어서인지 나는 그런 게 잘 안 되는 사람인 것을 알게 되었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이브라힘 페레르가 부르는 노래에

"꽃들에게 내 슬픔을 숨기고 싶네. 내 슬픔을 알게 되면 꽃들도 울테니까." 라는 구절이 있다.

 

나도 내 슬픔으로 인해 그 누구도 시들게 하고 싶지는 않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바닥까지 들여다볼 수 있을만큼 투명해야 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몸과 마음까지 더불어 나눈 사이에도 저마다의 다른 강물이 흐를 수가 있고

때로는 건널 수 없는 강물도 있다는 것을


인생은 때때로 잔인해지기도 하고 깨달음은 왜 늘 뒤늦게 찾아 오는지

이제는  어쩔 수 없이 나도 드디어는 오래도록 함께 늙고 싶었던 사람이 생겨지고

그리고서는 영영 떠나지 않기를 바라는 몹쓸지경에 이르른 것 같음이다.


세상 그 어떤 누구도 또한 그대도

단 한번 그대의 몸을 만졌던 내 욕심은

그대에게 싫다는 느낌을 남긴 것이었을까 라는

스스로에 대한 물음에 대한 답을 여태도 못찾고 있다만 

스스로를 속이지도 비겁하지도 않게 되었으니 초라한들 소심한들 어떠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