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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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은지심

가장 오래 사랑한 사람이 가장 많이 분노케 했다

까미l노 2017. 2. 6. 00:03




인생은 지나간다.

참 잘도 지나 간다.

소설가 구효서씨의 책 제목에도 있지만

내가 결정했었고 내 가슴이 흐르는대로 살아온 시간이 휙휙 지나갔었고 지나간다.


다시 되돌아갈 일 없지만

다시 돌아 간다한들 성격이 바뀌지 않았으니 여태 살아온 그대로 결정할테고

지금껏 살아낸 기억을 고스란히 안고 갈 것 아닌 다음에야 뭐 바꿀 수도 없을 터,


현재 잘 아는 사람이 아니면 다시 새로운 사람 만나기 별반 좋아하지도 않거니와

누가 나에게 접근을 하려거나 말을 걸려는 몸짓이 보이면 애써 외면하고 미리 까칠하게 군다.


사회 생활을 하고 직업을 가져 일을 해야하니 언제나 그럴 수만은 없는 노릇이겠지만

내 공간에서는 늘 그렇게 하며 산다.

힘 들고 싶지 않고 마음에 받을지도 모를 상처에 다치고 싶지 않아서이다.


그렇다고 내가 뭐 타인에게 받은 상처가  많았거나 뭐 그렇대서는 아니지만

그냥 새로운 사람을 알기가 싫어서 그럴 뿐이다.



그랬는데 그만 최근에 한사람을 또 알게 되어버렸다.

알게 되어버렸다고 한 표현은 알려고 하지 않았었고 미리 울타리를 치며 애써 외면했던 터라서 하는 말이다.


나의 공간 나의 숲에서 한참 나무를 만지고 있을 때

미루어 짐작하고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있었기에 더 그랬던 것인데

그분은 기어코 나의 마음에 문을 두드렸고 한사코 외면하려던 나의 마음을 노크해 버린 것 것이다.


아주 조금이나마 알게된 지금 봐도 그럴만한 성격도 못(?)될 분인 것 같고

타인을 귀찮게(?)할만한 성격은 더더욱 아닌 것 같아서 지금 생각하면 마이 미안했고 내 성격이 참 지랄맞다 싶다.


오늘 또 전화가 왔다.

평소처럼 휴대폰을 멀리해서 받지 않으려 작정하는 분은 아니었기에 잠시 만났었다.


부인께서 우울증이 조금 있으시다는 말에 내 가슴이 덜컥 겁이 났었고

우울증이라는 뜻이야 알지만 직접적인 증상이나 당사자의 몸도 마음도 모르기에 

지인의 가족이 겪고있어 말만으로 들었지만 그게 사람을 많이 황폐화 시키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미리 까칠하게 굴었던 그때가 더욱 미안해진다.


나에게도 사랑하는 아내가 있어서 그 아내가 불편한 곳이 있다면

그게 마음이든 몸이든 낫게 해주려고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었을 것이니....


나무에 대해서 궁금해 하며 몇조각 얻고자 나의 문을 두드렸던 그때

내 작업실 주변을 오 가는 사람들의 호기심과 모두들 내가 주무르고 있는 나무를 얻고자 하는 게 싫어서(?)

지나는 사람들이 말을 걸어와도 아예 눈은 마주치지를 않고 퉁명스럽게 대해왔었는데

어차피 모두의 호기심도 가지고자 하는 욕심도(?)다 채워줄 수는 없는 노릇 


참 조심스럽게도 말을 걸었던 분인데 그땐 그분의 눈을 마주보지 않았었다.

건성으로 대답을 했었는데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서는 아차 싶었다.

내가 이렇다할 별 수고를 하지 않고서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었거늘....


그러저러하게 작은 인연이 되었는데 꼭 저녁 한 끼 대접하고 싶으시다는 그분의 청이 있었는데

세상에서 나에게 밥을 주려는(?)사람이 제일 고마운데 차일피일 미루게 되어버렸다.


우체국에 들려 지인의 딸이 우울증이 심해 나무를 보내다가 만나게 되었다.

이저런 이야기 끝에 수일 내 밥 먹자고 전화 드리겠노라고 약속을 덜컥 해버렸다.

제대로 그분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데....


내가 세상에서 가장 오래 사랑했었던 사람은 내가 가장 많이 미워했고 나를 가장 많이 분노케했던 여자였었다.

세상은 참 좁다고 말하던 사람들의 말이 그렇기도 하다고 오늘 느꼈다.


그분은 내가 가장 오래 사랑했던 그 여자의 옛날 샘이셨을 것 같다는 걸 이야기 도중 알게 되었고

그분께선 이것도 인연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내가 가장 오래 사랑했었고 가장 많이 미워했고 나를 가장 많이 분노케 했던 여자였는데 말이다....


어렴풋이 그 옛날 제자의 키와 조금은 독특한 이름까지 기억을 하셨다.

가장 미워했던 그 여자처럼 그분의 눈도 사슴같은데 무슨 남자의 눈이 사슴 같냐고....

그야말로 아이들에게 선한 국어샘인 게 천상 맞다 시푸다.


그런 그분은 이제 아이들과의 평생 놀이를 끝낸 후 제주섬으로

마음이 조금 아파 힘든 아내를 위해 이주한 것이다.


오늘 책 한 권을 주셨다.

시집인데 재직하시던 여자고등학교의 일학년 아이들의 애송시들로 역은 책이다.

아주 오랫동안 내가 좋아하던 시 '낙화'도 있다.


30여 년 전에 그 여자고등학교를 다녔던 책을 술 만큼이나 무척 좋아하던 그여자

지금 그 여자 고등학교를 다니는 후배들이 그 옛날 그 여자에게도 시를 가르쳤던

지금 내가 만나고 있는 애써 눈을 마주하지 않을려고 까칠하게 대했던 분

그 여자처럼이나 눈이 맑은 하지만 이제는 할배가 된 국어샘과 함께 엮은 시집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내가 가장 오래 사랑했었고

내가 가장 미워했던

세상에서 나를 가장 분노케 했던

이제는 측은지심만 남겨진 그 여자


더는 그 여자를 사랑할 수도 용서도 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던 그때

그만 버리기로(?)작심하던 날에 나는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되어있었고

이상하게도 그 음악만 계속 듣게 되었었고 그 시만 계속 읊조리고 있었다....


그 시가 바로 이형기 시인의 '낙화'였었고

음악은 Triumvirat의  'for you' 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