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건명 곤명 본문
바로 어저께까지
봄인 것 같았는데
애닯은 그곳을 찾아갔어야 했는데
솔잎이 연두색으로 아주 맑았을텐데
그그저께 빗소리 낮게 깔리던 그 밤 지나고
아침녘 창가 머리맡으로 쏟아져 들어오던 한줄기 눈부신 햇빛
세상 모든 풍경 더 없이 투명한 아름다움으로 눈에 들어와 박히고
귀에선 온갖 잡다한 상념조차 사라지니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있어서 쉽게 풀어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날이다.
나그네는 꽃이 지는 밤에 다니는 법이라던데
곧 신발을 고쳐 신고 길 위에 서지 않으면
영영 떠나지 못할 것 처럼 밀가루 반죽같이 부풀어 오른 마음이 된다
알싸하게 코 끝을 건드리던 만개한 매화도 달빛 아래 고고하던 이화의 환영도
두고 온 섬진강에서 후년을 기약하며 둥둥 떠내려가고 있을테지...
꿈인지 생인지
어둑한 주차장에서 차를 빼내 낯모르는 산사를 찾아간다.
밤늦게 기차를 타고 여행을 가던 스무살의 어느 날처럼
언뜻언뜻 스쳐 지나가는 검은 나무들 사이로
꿈처럼 나타났다 사라지곤 하는 풍경들...
사춘기의 어느 날 시골 버스를 타고 먼 친척집에 심부름을 다녀오던 저녁,
그때도 아마 이맘 때쯤의 봄이었을게다
운판을 치는 스님의 예불소리 들리고
물 속에 있는 고기들의 복을 빌며 목어를 때리고
하늘을 나는 새들의 창생을 빌며 운판을 치는 맑디 맑은 그 소리들
생은 밤기차를 탄 것처럼 언제나 무연히 지나가고
결코 거머쥘 수 없는 꿈처럼 아주 가끔
내 눈에 나타났다 사라지곤 하는 것인가
나는 아직도 스님이 되고 싶은 부질없는 욕망이 남아있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