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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은지심

배려란

까미l노 2021. 2. 24. 18:24

배려

살면서 내가 다른 건 개판이었다 쳐도

배려하는 그럭저럭이었다 믿었다.

 

흔히들 말하는 찬다 또는 차였다 라는 표현이 있는데

살아오면서 누구를 차 본 적은 없었으니까

 

이성 간의 문제만이 아니라

이건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있을 수 있는 일일 텐데

배신이라고 달리 표현할 수도 있겠다.

뒤통수 맞는 것처럼 당했던 적은 있지만

배신을 하거나 신의를 져버린 적은 없어서 하는 말이기도 하다

 

우스울 수도 있겠지만 

낌새를 느끼고서도 내 먼저 사람을 버리지는 않고

상대방이 먼저 나를 차거나(?) 버릴 수 있는 기회를 주곤 했다.

 

배려라고 하기에 적절치 않을 수도 있고 아니랄 수도 있을 테지만

어찌 됐든 내가 먼저 모질게 하지 못하는 성격 탓이었기도 하다. 

 

배려

싸우거나 성격차이 같은 것도 아니었기에

웃으면서 자판기 커피 한 잔씩 들고서 마지막 헤어지는 가정법원 복도에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하라고 했더니

 

빈말인지 거짓인지 몰라도

세상에서 가장 자신을 아끼고 사랑해줬다고

다시는 나 같은 사람은 만나기 어려울 거라고 하더니

다만...이라는 꼬리가 달렸다.

 

살면서 배려를 참 잘해줬는데

굳이 말하자면 그 배려는 내가 하고 싶은 배려였지

정작 자신이 바라는 배려들은 아니었다고 했었다.

 

구체적으로 하나를 말했는데

아무리 고급 옷이든 보석이든 선물해줬어도(생일이든 무슨 기념일 잊고 그냥 지나친 적 없었다)

그것들이 본인이 원하는 것들이기보다 내 취향에 맞는 것들이었다 라는 말을 했었다...

 

난 순간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었는데

사는 동안 내가 훨씬 더 잘해줬다 라는 생각의 크기보다

잘못했을 크기가 더 컸을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었다.

 

헤어진 근본적인  이유는 차치하고서라도

내 고향에서 살았었고 그의 고향은 멀리 있는 곳이라서

외로울 수도 있을 거라는 것조차 난 그 당시 전혀 짐작을 못했었다.

 

아직도 내 여동생과는 친하게 지내는 모양이더라만

내 가슴 깊은 구석엔 채 삭이지 못한 분노는 남아있다만

그건 여전히 내 몫이고 탓을 할 일도 못되거니와 책임 또한 내 것일 뿐,

 

그저 무탈하게 잘 살아가 주면

뭇 세상 사람들 가운데 나를 탓하거나 싫어 할 사람 하나는 줄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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