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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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은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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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미l노 2020. 10. 26. 23:42

지금 떠나면 뭔지는 모른 채 조금은 아쉬울 것도 같다만

그닥 미련이나 아까울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 괜찮을 법도 한데

나쁜(?) 습관 따위는 고치려고 애써 노력을 한다

 

새벽의 거리를 나서면 이 지랄같은 세상인데도 놀랍도록 평화롭다

밤 새 잠자리에 들지 않고서도 아침이면 일찍 일어나려고 애를 쓴다

전형적인 올뺴미형이라 밤잠은 없이 아침잠이 달콤한데

직장에 있을 떄나 없을 때나 한결같다

 

늙어서라는 또는 은퇴를 했다는 핑계를 댈 수도 없는 지금의 나이

혼자 살면서도 중천에 해가 떠오를 때까지 돼지처럼 잠만 자는 인간으로 보여질까 봐서다

누구 볼 사람이 전혀 없는데도 말이지

 

하긴 중뿔 날 것도 없으면서 어쩌면 난 평생을 남의 눈을 의식하며 살았을게다

 

값비싼 물건도 귀금속도 재물도 아닌 것들을 버리지도 못한 채 부여안고 있다

다른 이에겐 쓰레기일 수도 있을테지만 나로선 그냥 버리기엔 너무도 아까운 것들

이저리 이사 다니기엔 지나치게 버거운 것들이라

꽤나 한참 지난 후의 시간에 생길지 모를 부담스러움을 매일 고민하면서도 여전히 안고 산다

 

누굴 줘도 버려도 전혀 아무렇지 않은 것들 중에 펜 치고는 고급 축에 속하는 것들이 있다

잊고 살다가 어떤 걸 찾을 떄 불쑥 눈에 보여지는 것들

케이스 속에 보관되어 있던 고급 볼펜 손수건 등

가볍게 사는 게 좋긴 한데 오히려 아직은 더 유용한

헤진 핫바지 두어장은 버리기 쉬운데 이것들은 왜 못버리는지

 

점점 두려워진다

뭐 딱히 걱정을 안고 사는 건 아니다만 오래 살게 될까봐

몸이 아파질까봐 조심을 하다가도 슬핏 웃음이 난다

 

내 소심은

어느날 나 떠난 자리에 내 부끄러움이 보여질 뭔가는 없는지

쓸것도 못될 서푼의 돈이라도 남겨진 채 떠나지게 될까봐 아쉬워진다

 

아등바등 살거나 악착같지도 않았고 평생을 아끼면서 저축하고 노력하며 살지는 않았지만

제대로 즐기지도 내일이 없어도 되는 것처럼 편하게 기분대로 살아보지도 못해서일까...

단 한순간 하루일지언정 지금이라도 그러면 될텐데 그마저도 못하는 소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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