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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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은지심

부치지 못한 편지

까미l노 2020. 11. 20. 00:40

비 내린다

가방을 들쳐 메고 신발끈을 단단히 동여 메고 집안을 둘러본다

베란다 쇠고리를 잠그고 가스밸브를 내렸던가 다시 한번 더 확인하고 전기 스위치는 껐는지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단속을 한다

 

나는 까탈스러운 사람인가 집을 나서니 살아있음이 괜시리 다행스러워진다

마른 수목에 생기돌 듯 잠 시맞는 비 머리와 어깨에 떨어지니 나도 덩달아 생기가 도는 듯 하다

 

싫어서도 애써 바쁘게 살지않는 삶

오랜시간 아무도 물어오지않는 안부 걸어본 지 오래라 기억하던 전화번호도 점점 없어진다

 

새가슴같은 내속에 풍덩 빠져버릴 듯 설쳐대던 묘한 바람조차 잦아든 듯하니

차라리 나조차도 다행스럽다

정말로 허황스러운 몸짓일랑 털어내고 웃으면서 오래 같이 살고싶다고 말 할 사람은

비떨 어지는 강물속으로 걸어가버렸던가

무릎사이 피곤한 이마를 묻고 감은 두 눈속에서 고백을 한다

 

남루한 생애 까맣게 타들어간 가슴으로 선 길 위 모퉁이 돌면

세상이 등 돌린 꿈아픈사람 매만져주지 못한 상처에 헝클어진 발걸음 돌려세우는 회한

바람비 내리날의 비애가 쓸쓸한 안부를 전한다

 

시시껄렁한 허풍으로 가끔 아주가끔씩의 안부조차 전하지 못하는 의심많은 사람의 안녕

잠이들면 겨우 솔직해지려는가 허름해진 내 신발코같은 초라함

차마 헛발 내딛을까 바람에게만 물었다

 

살아가다 가끔 생각나려나하는 사람으로나 산다

아주 먼길 걸어가 맞이하는 사람없어도 기다려주는 누군가 있는 듯 젖은 마음 그냥

늘 그래왔던 것처럼 외면하고 살면 될것을 언제나처럼 시간이야 쏜살같이 지나가버린 세월처럼

다시 다가와도 흘러간 강물의 끝이 가닿는 자리에 이어지듯 그저 그러려니 뭉개어진 마음으로 살자

 

문득 약속한 적 없이 그대를 찾아나선 강물에 부서지던 햇살이 눈부신데 때 늦은 그대의 눈물을 보았고

벗은 신발 두짝 움켜쥐고 강물로 걸어들어가는 그대 뽀얀 맨발 뒷꿈치 허둥대며 따라간다

 

아무런 희망도 미련도 자잘한 욕심조차 없다던 사람

세상을 살아오면서 놓치고 싶지않은 사람이 정녕 나였을까만 별 소식 없는 듯 이리 살아도

가슴 한켠에 자리한 살아는있느냐고 이메일 한 통 이라도 보내야할까

 

살아가야 할 날이 더 남았다면 붙잡고싶은 살면서 왠지 붙잡고싶고 세월이 흘러흘러 그만잊었는가 하였는데도

문득문득 궁금해지는 마음이 애틋해지 는사람

잘 있는거냐고 어디 아프지는 않은거냐고 휴대폰 쉰목소리라도 던져 젖은 대답 들어볼까 연습해본다

 

살아온 세월보다 덜 늙어 풋풋한사람 처음 남자 앞에서 옷을 벗는 여자같이 부끄러운 사람

살다가 넘어지지 않을 곳에서 넘어져 일어선 길엔 늘 혼자였었을 터

엎드린 채 숨죽여 꺼억꺽 울음을 삼키는 짐승처럼 살기도 했을게다

기나긴 겨울한낮이 기울때면 차창에 부서지는 여린눈발처럼 남루하던 유년기의 생을 부여잡은 채

차창너머 손 흔드는 듯 눈물겨운 사람의 모습이 보이는 듯 아뜩타

 

겨울이면 유난히 차갑게 시려워지는 내손만큼이나

내 몸안의 피는 잘 돌지않아서인지 나는 따뜻한 사람도못되는가보다

그때 수 만자 원고지 밤 새 채워 부친 편지는 구겨진 파지만 수북이 남겨진 채

아무도 받지 않았다는데 수신인을 찾지도 못한 채 아직도 어딘가를 헤매고 다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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