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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세상의 모든 길 위에서 본문
이제는 늦은 것이리라
점점 더...
히말라야 산간 마을
천 년 전 양들이 다니던 태항산 절벽길과
축조 후 한 번도 보수를 하지 않아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만리장성 켄커우창청 구간
인도 바라나시 겐지스강가의 가트
산타이고 순례길과 피니스테레 절벽 끝
내가 걷고 다시 가고 싶어하는 길
좋아하는 사람 생기면 보여주고 같이 걷고 싶은 길
다시 그 길들 위에 선다면 그떄의 난 우울할 때일까 아니면
소풍 마치고 떠난는 것처럼 홀가분해졌을 때일까?
내 생애 모두 세 번
잘난 구석도 괜찮게 보일 이유도 없었던 나를 괴롭혔던 그들
나중에 반드시 반쯤 죽여 놓겠다고 다짐하던 인간들
시간이 흐르고 난 후 내 악감정은 조금씩 잊혀지거나 무디어져 버렸는데
들리거나 알게 된 사실들이 그 인간들 하나 같이 불의의 사고로 죽었거나
무리에서 추방 당했더라는 사실인데 행여 내 악담이 현실처럼 되어진 거라고 해도 전혀 미안치는 않다.
외나무 다리에서 만나진다는 속설처럼 맞딱뜨린 인간은 여전히 그모습 그 인성대로 보였고 서둘러 나를 피해 도망치듯 사라지더라,
못나고 어리석다할지언정 비겁한 사람이긴 싫다.
난 분노조절 잘 되는 편이다.
그것도 다르게 표현하자면 비겁한 차분해짐이라고 느껴질 때도 있었다.
화가 끝까지 치미는데 분노를 조절한다는 건 진정한 용기가 없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혹시 내가 상대를 충분히 이길 수 있었는데도 나는 과연 참을성 있게 분노 조절을 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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