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나를 여행프게 하는 것들 본문
낮선 도시에 첫발을 디딜 때면 가슴이 뛴다.
몸속 모세혈관들까지 일제히 깨어나 웅성거린다.
설렘만은 아니다.
긴장과 두려움이 그보다 앞선다.
몸에 눈에 마음에 설게 느껴지는 것을 앞에 설 때면 몸도 마음도 함께 굳는다.
그 첫만남의 떨림과 긴장을 나는 사랑한다.
익숙한 것에 대한 그리움과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 사이에서
승리는 언제나 호기심이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풍경
나와는 다른 얼굴을 가진 사람들
이질적인 삶의 방식들이 언제나 나를 끌어당겼다.
내 것과는 다른 삶이 저 길 바깥에 있을 거라는 기대
세상사 부정적이고 까탈스럽기만 하던 헐거워진 내 성벽 안으로
바람이며 햇살이 드나들 작은 구멍이 생겼다.
길 위에 오래 머무를수록 구멍은 점점 커져갔고
그 구멍 속으로 나 아닌 다른 것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익숙한 것들을 새롭게 보고 낯선 것들에서 정 붙일 구석을 찾아낼 수 있는 눈도 자라난다.
모나고 강팍한 나를 으지할 곳 없는 공간 속으로 내동댕이쳐
그곳에서 만나는 것들과 몸과 마음을 섞으며 둥글어가는 법이다.
도보여행가 김남희 글을 읽고서...
세상에는 단 두가지만 있다.
사소한 것이거나 절실한 것
누군가에게 사소한 것이 어떤이에게는 아주 절실한 경우가 있을 것이다.
사소함과 절실함의 차이에는 관심과 무관심과 그리고 무심이 따른다.
어떤 이에게 일생의 꿈 희망 절박함과 절심함으로 치열할 삶이(또는 취미)
그조차 어떤 이의 시선에는 극히 사소하거나 무관심으로 비치기도 한다.
예컨데 히말라야 고봉의 빙벽을 오르는 사람에게
추위를 극도로 꺼리거나 내려올 산엔 뭐하러 오를거냐는 사람에게는
극히 무관심하거나 사소한 일에 목숨 거는 아예 미친 짓거리라고도 느껴질 법
자살하는 사람에게 핀잔을 하고 애써 구하기도 하는데
정말로 죽을 사람이라면 누군가 발견하거나 쉽게 구해주지 못할 곳을 선택한다고 한다는데
죽음이 간절하다는 표현으로 쓸 수야 있겠냐만 그 자신 스스로에게만 절절한(?)죽음조차
누군가의 시선에는 사소한 일로 고귀한 생명을 함부로 한다는 소릴 들을 수도 있겠다.
거의 뇌사 상태인 시한부 환자의 삶에 대한 희망이 더 절실할지(자신은 모를텐데)
연명치료라도 끝까지 하면서 환자를 보살피려는 가족의 미련이 더 절실할지
이런 것들이 타인의 눈에는 쓸데 없는 짓거리로 보이기도 한다는 것인데
무지막지하게 과학문명이 발전해가는 작금의 세상에서 흔해져가는 사소하거나 무관심이다.
겨우 하나의 점 정도에 지나지 않을 거대한 우주의 작은별 하나인 지구
그 속에서 바다보다 훨씬 작은 땅덩이에 살아가는 인간들
언젠가는 인간들 스스로의 선택으로(?) 멸망하게 만들 게 뻔할 터,
그게 종교간의 갈등이거나 자연 재해 같은 환경일지 국가간의 이기심으로 일어날 핵전쟁일지
다행으로 살아남는 사람이 있기라도 한다면 먼 옛날 원시시대로 돌아가게 될테지...
떠올려지는 얼굴이사 간절한 사람 없음에 그냥 지우면 되지만
참 듣기좋은 나즈막하고 차분한 생각나는 목소리 하나
그래봤자지만 절실하게 듣고싶을 때 너무도 비슷한 음색의 가수의 노래소리를 듣는다...
그런데 그 목소리는 그 가수의 노래를 들어봤거나 알기나 할까만
내게 절실한 것들을 누군가 사소하게 생각하면
아프고 여행프진다.
세상엔 고프고 술프고 아프고 고달프고 죽고픈 것들이 있다.
나는 그냥 죽어도 괜찮고 아무런 고픔이 남아있지 않지만 오로지 여행만큼은 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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