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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은지심

곰솔나무가 말했다.

까미l노 2017. 5. 23. 19:28



소나무가 말했다.

한국인들이 나를 사랑하는 게 부담스럽다고...


애국가에도 나오고 온 산에 들에 나를 살게 하며

병해충 방제를 위해서도 많은 돈을 들여가며 호들갑을 떠는 정서는 잘 알겠는데

실제로는 보살피고 가꿔주는 것 같지 않아서 숲이나 산길 주위에 태어난 우리 아이들을 보면 그다지 아껴주는 것 같지도 않다.


태어날 때나  자랄 때 아무런 보살핌이 없으니 키 큰 침엽수에 밀려나고 가지 많은 활엽수에 치여

점점 숲에서 사라져 가는데도 사람의 손길이 덜 가야 자연보호가 된다고 믿는 것인지...


그럴려면 차라리 온전히 우리들 자유자재로 태어나고 살다가 죽게 내버려나 둘 것이지

다른 모든 나무들은 베어내거나 해를 입혀도 용서를 하면서 유독 우리들 소나무만은 손을 못대게 하는 건 뭐람?

보호를 해서 싫을 리야 있겠냐만 보호를 할려면 수십 년 살아낸다고 힘에 겨운 숲 속의 키 큰 우리를 구해줘야 할 것 아닌가?


키 큰 나무들 사이에서 햇빛 한조각 받아볼려고 덩달아 키만 계속 키웠더니

몸도 부실하고 잎도 꼭대기에 조금만 있을 뿐이리서 곧 죽을 것 같은데 아무도 거들떠 보지를 않는다.


스스로 태어나서 숲 속 이곳 저곳에 우리 아이들이 쑥쑥 자라나고 있는데

과연 이런 곳이 우리가 제대로 수십 년을 살아갈 수 있는 곳인지 관심이나 가지겠는가?


금강송이니 황장목이니 하는 소나무들만 소나무인가?

우리는 사람도 아닌데 왜 인물타령 몸매타령을 하는가 말이다.

보호 한답시고 다른 나무들을 베어내도 괜찮다고 할 게 아니라

차라리 다른 나무들이나 잘 자라게 우리들을 다 베어버리기나 하든지...


궁궐이나 문화제 보수할 때 쓰는 귀족 소나무는 아니지만

우리도 잘 보호하고 가꿔주면 얼굴이나 몸매가 좋아질지 누가 알어?


저봐! 우리 새끼들은 지들이 잘 알아서 주차장 경계석 안쪽으로는 절대 태어나지도 않잖아?

자귀나무 같은 애들은 아무곳에서나 마구 태어나지만

누가 알려주거나 시키지 않아도 우리는 사람들에게 밟힐 곳이나 방해가 되게할 곳에서는 절대 태어나지를 않는다.


어떻게 씨앗이 잘못 떨어져내려 비록 빗물이 흘러갈 도랑 안쪽에 태어나긴 했지만

스스로가 행했던 탓이니 죽고 사는 것이야 우리 책임 아니겠어?

우리는 햇빛 방해만 하지 않는다면 한국인들처럼 끈질긴 생명력을 가졌으니까 괜찮아...









숲 속에 뺵뺵하게 모여살 게 방치해서 키 크고 잎이 무성한 나무들에 가려서 비실거리게 내버려두지 말고

군데군데 띄워서 편하게 잘 살아가게 해주면

재선충 병에도 쉽게 전염되지 않고 건강하고 멋진 모습으로 잘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근데 당신 우리 이파리가 몇개인지는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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