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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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은지심

미련하게 산 게 다행이로고

까미l노 2017. 2. 18. 00:05






삼나무 오형제


돌아보니 참 미련하게 살아낸 것 같다.

그 옛적 혼자가 되기로 작정할 무렵 갑상선 진단을 내리면서 치료를 맡았던 대학병원 원장이 하던 농담


지금의 당신을 판단하건데 중년 무렵이면 엔간할만큼 돈도 가지고

출세까지는 아니라도 등 따시고 베 부르게 살 수는 있을 것 같은데

문제는 그 돈으로 늙어질 때 치료비로 탕진하기 딱 좋을 성 싶은데 어떻게 할 거냐고

슬슬 놀면서 적게 벌면서 스텐레스 받지 않고 사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웃으면서 내게 그랬었다.


머리 밑에 원형 탈모가 세군데 있었다는 것을 단골 이발소 주인에게서 알게되고

수저 든 손이 떨리고 산에 오를 때 다리에 힘이 부쳐 심각해지면서

미련해져 보리라고 작정을 했던 게 다음날 바로 멀쩡하게 앞길이 그런대로 창창하던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혼자로 돌아 나오면서 당일 바로 서류 정리를 마친 후 난 생 처음 홀로 15일간의 여행을 떠났던 것이다.


여행을 마칠 무렵 몸이 게운해지는 것을 느꼈던 건

출근을 하지 않으니 넥타이며 구두며 슈트며 다림질이니 세탁이니 깨끗한 와이셔츠를 고민할 일도 없으졌으며

언제나 추한 것들 나쁜 소식들만 보여주기로 작정하는 지랄 같기만 한 뉴스를 안 봐도 되고

그냥 무조건 내일도 해는 뜰 테고 당장 먹을 걱정 하지 않아도 되어 그냥 행복했고 평화로웠다.


기적처럼(?)나는 일 년만에 갑상선 완치 진단을 받았었는데 갑상선은 완치라는 게 없다는데도

수술도 필요 없었으며 여자들에게나 생기는 병이라면서 빨리 알게 되어 잘 되었노라고 의사가 그랬었다.


난 그 후 그야말로 가끔은 미련스럽게 때론 되는대로 깊이 생각도 않은 채 뭐든 저지르고 보는 사람으로 변해왔다.

그 덕분에 주머니는 다 비워졌지만 더 이상은 갑상선 이상 재발 같은 건 생기지 않았었고

보통 사람들은 평생 꿈만 꾸고 산다는 세상여행을 꽤 많이 다닐 수 있었다.


한데 지금 난 미련하지 않은 채 너무도 열심히 살고 있는 것 같다.

이러면 안 되는데 이렇게 살 생각은 없었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또 다시 얄팍한 잔머리를 굴리면서 사는 것 같다.


일만 하고 돈만 만들 작심으로 하루 하루 살고 있는 건 아닌지

딱히 목적한 바가 있어서도 아니라서 뭘 가질려고 어딜 가기 위해서만은 아닌데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아무 생각 없이 계속 일만 하고 산다.


수입이 늘고 더 좋은 직장으로 스카웃 제의를 받는 건 분명 좋은 것인데

무엇을 위해서 이러고 있는지 미련하면서 시간 게으름뱅이로 살려고 했던 마음을 잃어버린 것 같다.


나에겐 이런 게 있다. 

비록 이자를 갚으니 은행에서 재촉할 일은 없는 대출이지만 제로가 될 때 까지는 아무런 생각 없이 줄창나게 일만 한다.

은행에 대출이 남은 상태에서도 수입의 대부분을 저축은 한다

은행에서 받을 이자가 대출 이자보다 적다는 건 누구보다 잘 안다.


내 나름의 신용 재테크라고 믿으면서 은행에 많게는 2%의 손해를 감수해 준다.

대신 은행은 나에게 신용등급을 언제나 최상급으로 지속 시켜준다.

그렇지 않았으면 변변한 직업도 집도 없는 나에게 마이너스 통장을 줄 리가 만무했을 터,


신용등급?

그거 높으면 뭘 할 것이며 언제 필요하게 써 먹을지도 모르지만 막판까지 몰렸을 때도

끝까지 파산 신청이나 신용불량 만들고 신용회복 같은 것도 하지 않고 잘 버텨냈었다.


암튼 난 그게 좋아서 언제나 고수를 해왔고 IMF때도 난 오히려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그래야만 잠도 조금이라도 편하게 잘수 있을 것 같고 안심하면서 미련스럽게 사는 것에 저으기 도움이 된다.


그렇지 뭐,

더 늙으면 더 나중에 어차피 독거노인처럼 살게 될 바에야 믿을 구석이라곤 없는

홀로사는 인생의 마음이라도 따뜻하게 살다 갈려는 소리없는 내 아우성일지도 모르겠다.


별 좋은 점 아닌 나의 미련스러움에 이런 게 있다.

분명코 고치는 게 좋을 그런 게으름인데 몸의 어디가 고장 같은 거라도 생기면

출근도 않은 채 아프기 전엔 약도 먹질 않고 그냥 잘려고 하는 것이다.


먹지도 않고 오로지 잠 들다가 깨이면 시계 한 번 날짜 한 번 보고선

또 다시 잠 속으로 빠져드니 몸이 엉망진창이 되지 않을 수가 있으랴,

작년 5월에는 그랬다가 반쯤 골로 갈 뻔 했었다.


먹는 것에 별 관심이 없었고 어릴 적 부터 잘 굶기도 해서 그런지 모르겠다만

괜찮은 요리 음식 맛있다는 것 나도 알고 먹으면 기분도 좋아지는 것도 맞고 

가끔은 나도 맛있는 것 찾아 다니고 그래볼까도 생각했는데 잘 되지는 않고 있다.


이런게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의 하나인 것도 같은데

역시 나는 스스로를 사랑하지도 끔찍히 아낄 줄도 모르는 사람인 건 맞다.


바꿔 볼만할 때가 되기는 한 것도 같은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