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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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은지심

밤불빛이 외롭니? 평화롭니?

까미l노 2016. 6. 20. 20:45





비 온다.

늦게 아주 늦은 시간 다들 가고 없는 텅 빈 넓은 사무실에서

동그란 편백나무에다 버닝펜으로 글자를 새기며 퇴근을 미룬다.


며칠 잠이 일찍 깨어버려 그냥 새벽에 출근을 하고

불 꺼진 집에 들어서봤자 티비 켜봤자 달가울 거리가 아무것도 없으니

좋아하는 짓거리나 하는 게 나아 그냥 저냥 퇴근을 서두르지 않는 것이다...

밤 불빛은 외로움인가 평화로움인가?

달빛은 음습함인가 온화함인가?

일부러 엘리베이터를 버린 채 계단을 오른다.


한층 오를 때마다 꺾어지는 계단 중간엔 센스가 작동하고 불이 켜진다.

마치 나를 위해 내 앞길에 불빛을 비추어 조심해서 오르라는 듯

밤이면 나타나는 불빛들은 외로움인가 온화함인가?


온갖 잡곡을 뒤섞어 무쇠솥에다 밥을 앉히고 샤워를 한다.

오늘은 3인분 정도를 앉혔다.


한 그릇은 오늘 저녁으로 내가 먹고

한 그릇은 늘 그랬듯이 비닐팩에다 퍼서 이미 여러개의 팩에 든 밥들마냥 냉장고에 넣고

남은 1인분은 두텁게 누룽지로 눌이게 한다.


샤워를 하는동안 밥은 알맞게 잘 퍼져서 맛있게 뜸이 들 것이다.

빼가지 뿐인 몸뚱아리 씻을 거나 뭐 있다고 언제나 샤워를 하면 30분 정도 걸린다.

물기를 닦고 나오면 밥 익는 냄새가 드디어는 배를 고프게 자극한다.


재래 시장 장날에 가서 사둔 열무김치에다

대파 쪽파 부추를 각각 한 단씩 썰어서 섞었다.


요즘 불각시리 또 김치를 담고 싶어지는데 큰 통이 없다는 핑계로 오늘도 참았다.

내 상상 속의 내가 담그는 김치는 온전하고도 완전한 나만의 식 김치다... 


혼자 먹을거라서 많이 못산다며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까지 던졌는데도

5천원어치에 겨우 요딴만큼 밖에 담아 주지 않아 김치통이 헐거웠었는데 

대파 쪽파 부추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을만큼 김치양이 푸지더니

열무김치는 보이지 않고 파들과 부추만 보인다...


공기로 치면 두 그릇정도 되는 밥에다

내가 간섭해서 버무린 열무김치를 큰 국그릇 가득 담았다.

그러고 보니 밥은 2인 분일테고 김치는 3인분은 족히 될 것 같은데

별 힘(?)들이지 않고 개눈 감추듯 맛있게 해치웠다.


모니카님이 주고 간 곰탕 한봉지도 데워 국그릇에 빠질 듯 퍼먹고

밥 밥은오늘도 내 밥은 내게 거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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