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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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반데룽

Miigwech.. 한짝 남은 등산화

까미l노 2016. 2. 5. 15:00

인디언의 언어 ...Miigwech



나무들은 키가 컸다.

그러나 캘리포니아 북부의 어느 가파른 산등성이 위에 서서 이 나무들을 굽어보는 나는 더 컸다.


방금 전 벗어놓은 등산화 한 짝을 그 나무들 사이로 떨어뜨린 터였다.

거대한 배낭이 엎어지는 바람에 녀석이 공중으로 퉁겨져 나가더니

자갈투성이 길을 굴러 저쪽 끄트머리로 날아가버린 것이다.


녀석은 몇 미터 아래 헐벗은 바위 위에 부딪혀 튀어 올랐다가 금세 저 아래 숲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다시 찾아오는 일은 불가능했다.

헉. 나는 마치 기절이라도 할 것처럼 숨을 들이켰다.


비록 황무지에서 38일을 지내며 이곳에서는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방금 일어난 일의 충격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등산화가 사라지다니...말 그대로 완전히 잃어버린 것이다.

나는 남은 한짝을 마치 간난 아기처럼 품에 꼭 끌어안았다.

물론 그건 아무 소용없는 짓이었다.


도대체 이걸로 무얼 할 수 있단 말인가?

아무짝에도 쓸모없고 있으나 마나 한 존재 아닌가?

끈 떨어진 고아 같은 녀석에게 나는 아무런 동정심조차 느낄 수 없었다.

그건 그냥 무겁고 커다란 짐짝일 뿐이었다.


은색의 금속 죔쇠에 붉은색 신발끈이 달린 갈색가죽의 라이클 등산화 한짝이라니..


나는 남은 신발 한짝을 온 힘을 다해 멀리 내던졌다.

그리고 녀석이 내 품을 떠나 저 멀리 무성한 숲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셰릴 스트레이드의 Pacific Crest Trail 중에서...

                                                                                           




나의 집착은(가끔은 사소한 것에도 목숨(?) 거는 타입)

비록 그녀의 눈에는 상상조차 되지 않아 거의 불가능으로 보였을 한짝의 등산화를 구하러(?)

과감하게 절벽을 타고 내려가 어떻게든 숲 속을 헤집었을 것이다...


한짝 남은 등산화가 불쌍해서라도

맨발로 남은 산길을 걸어갈 암담함을 생각해서라도

학교 공부 외에는 다 잘하고(?)짐념조차 악착 같은 성격임을 알기에...


아마도...내가 완전히 잃어버린 등산화를 포기하게 된다면

그건 그곳에서 최소한 하루 종일  정도는 등산화를 구출하기(?) 위한 몸부림 후의 포기일 것이다...


내 성격을 묻는 사람에게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남은 한짝의 등산화마저 잃어버린 등산화가 떨어진 절벽 아래의 숲을 향해 내던지기 보다

어떻게든 잃어버린 한짝의 등산화를 구하려는 타입이라고 말할 것이다.



한 번도 길을 잃어보지 않은 사람이랑은

친구도 하지 말아라


전혀 모르는 낮 선 길로 한 번도 들어서지 않으려는 사람이랑은

친구도 하지 말아라

그런 사람이랑은 사랑도 하지 말아라...


친구도 하지 말아라,

너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아주지 못하는 사람이랑은...

설령 모난 니 성격이든 아무런 가진 것조차 없고 울퉁불퉁한 니 모습이 됐든 말이야...


세상에 와서 마지막일 키스를 하듯 그렇게

지금까지 살아온 한시대의 니 인생을 끝이라도 내는 것처럼 열정적인 입맞춤을 하고 길을 떠나렴,


사랑하는 사람이 없다면 떠나면서 버리고 갈 니 베개를 향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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