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앙금이 팥앙금이면 좋을텐데 본문
나도 그런 적은 있었다.
남자였으니 그냥 주먹질이라도 해서 분을 풀까 생각도 했었고 영원히 가져갈 것 같았었는데
내 지론이었던 가벼운 중은 언제라도 떠나버리면 되고 단절해버리면 그뿐이려니
고였던 물에서 떠나왔더니 그 즉시 씻은 듯 사라지던 앙금...
옛말에도 있었다만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다고
세상을 살면서 어디에서든 반드시 한 번은 만나게 될 게 뻔한 이치
상상도 못했을 장소에서 나를 맞닥뜨린 그가 불쌍해서 전혀 안 그런 척 먼저 반갑게 손 내밀어줬다.
응겁결에 나를 만나게 되었던 그의 속은 어땠을까?
떠나와 속 편했던 나는 그를 무시하고 살다가 용서까지 했기에 더 마음 편해지고 홀가분했었다.
창졸간에 뜻밖의 장소에서 나를 만난 그는
먼저 손 내밀고 안부를 묻는 내게 아직도 정신(?)덜 차린 듯 제 주변인들에게 불만을 내비치긴 하더라만
그러거나 말거나 나에게서 떠난 내 속의 화인지라 짐짓 모른 채 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어쩔 도리 없이 계속 모른 척 할 수만은 없고
각자 나를 향해 하소연(?)같은 푸념 같은 걸 들어야 하는데
중간에서 지켜봐야할 지인들이고 제 삼자인 입장에 여자들 문제라 이러쿵 저러쿵 할 수도 없는 노릇
한 해도 저물어 가고 칼자루를 쥔 사람이 누구였든 한 사람이 이제 그만 풀렸으면 하고 생각한다면
누가 먼저 손 내밀거나 측은함을 가지고라도 이야기 할 수는 없는지 그게 그리 어려울까?
화도 분노도 억울함 같은 것도 얼만큼 오래가야 희미해지거나 제대로 퇴색 되어 속에서 씻어져 나가려나...
한 사람은 미안하다는 손을 내밀고 싶어하는데
두 사람은 전혀 그럴 마음도 분노도 앙금도 전혀 씻기지 않고 있는 것 같다.
누가 더 잘못하고 더 미안해 하고 먼저 사과해야 하는지 지켜본 나는 알지만
그토록이나 용서하기도 사과를 받기도 싫고 그냥 안 보면 그만이라는
내아직도 그떄의 앙금이 고스란히 남아 전가의 보도 같았던 단절을 계속 고집하고만 있는 것 같은데
내가 그랬을 때 누군가 나를 봤다면 지금 내가 생각한 마음 같았을까?
차마 그렇게 묻지는 못했었지만 그나마 내 경우와는 달리 아직은 용서하기는 싫더라도
그에게서 일말의 고마움이나 도움 같은 것을 받았던 것이 조금이나마 있지는 않았을까 해서 조심스럽다.
물론 도와줄려고 하랬나 라거나 도울 듯이 하다가 뒷통수 맞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을테지만...
분해서 일주일 씩이나 이불 뒤집어 쓰고 앓아 누웠었다는데...
사람은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
이야기를 들어 주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어깨를 토닥여 준다고 해서
내 편을 만들려고 들지만 말고 내가 속을 보이면 다른 사람들이 내 진정성을 알수 있을 것이다 라는 거...
세 번도 용서해 줄 수 있다.
진정성만 제대로 보인다면...
내가 애 타 하는 건
부모 형제도 그럴 수 있고 부부 사이도 그러할 수 있을진데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이겠지만 세상을 살아가면서 누군가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고
누군가에게 내가 미안해 할 일을 만들었었는데 그냥 덮어둔 채 기억을 그대로 안고 가는 건 끔찍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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