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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은지심

사라진 가족애

까미l노 2015. 8. 9. 16:21

 

 

저는 1944년생, 평범한 남자노인입니다.

그러나 우리 나이의 남자들에게 평범하다는 말은, 결코 편안하고 무난하게 살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해방 즈음의 북새통에 태어나서, 소년시절 기억은 6 25 피난길 풍경부터 시작됩니다.
배 곯고 헐벗으며 청소년기를 보냈고, 일찌감치 거친 세상에 나와 모진 풍파 다 겪으며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그게 44년 잔나비띠들의 가장 평범한 삶일 겁니다.

 

 

더구나 저는 유약한 부모님 밑에 5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니,

열 살 무렵부터 언제나 어깨 위에 무거운 짐이 얹힌 기분으로 지금껏 살아왔지요.

얼마 전에, 국제시장이라는 영화를 보고 저 역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주인공이 부러운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저 사람은, 어머니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아우들의 감사를 받는구나.

무엇보다 언제나 지지를 해주는 아내가 곁에 있구나….

 

 

저는 탄광 노동자였던 적도 없고, 월남전에도 안 갔습니다.

제가 한 일은 군대 제대한 스물 네 살때부터 사십여년간 옆도 돌아보지 않고 일을 했다는 것뿐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 하기 싫은 일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저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닥치는 대로 일했습니다.

 

 

저를 믿고 그러시는지 아버지 어머니는 두 손 놓고 계셨고,

남동생들 대학 공부, 여동생들 시집보내는 게 모두 제 책임인 줄만 알았습니다.

그 와중에 무슨 배짱으로 저 역시 결혼을 해서 남의 집 귀한 딸을 데려다 수십 년 고생시켰지요

 

.

마누라가 처녀적에 모아놓은 돈 뺏어서 큰 누이동생 시집 보냈고,

내 새끼 분유값도 제대로 못 대면서 막내 동생 등록금 냈습니다.

동생들 뒤치다꺼리가 끝났나 싶으니까 내 자식들이 대학이다 결혼이다 혼을 빼놓더군요.

 

 

그 모든 숙제들을 다 마치고 일흔 살 나이가 된 지금, 저는 제 인생을 후회 없이 돌아보고 싶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나한테 시집와서 고생만 한 아내는 병이 들어 골골 합니다.

 

 

시집들 잘 가서 현재 남부러울 것 없이 사는 누이들은 큰오빠인 저에 대해 불만이 가득합니다.
92세 96세 부모님을 왜 한 집에서 안 모시느냐고요. 저 역시 모시고 싶긴 합니다만,

병자인 아내가 두 노인양반 수발을 어떻게 들겠습니까.

 

 

아니할 말로 부모님보다 마누라가 먼저 저세상 갈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드는데 말입니다.

건강한 사람이라 해도 평생 고생한 마누라에게 그 고생까지 시키고 싶지는 않았지요.

 

 

그래서 부모님 근처로 이사를 했고, 거의 매일 제가 찾아 뵙고 있지요.

간병인도 부르긴 하지만 저도 나이가 있다보니 쉽지는 않네요.

 

 

그러나 그 문제로 누이동생들은 올케를 찾아와 삿대질을 퍼붓습니다.

엄마가 치매기가 있으셔서 밤사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데,

맏며느리가 돼가지고 발 뻗고 잠이 오느냐고요. 제 아내는 아내대로 화를 냅니다.

 

 

누구 돈으로 공부하고 시집가서 이만큼 사는지,

까맣게 잊었느냐고 따지지만, 그런 과거지사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더군요.

 

 

공부 많이 해서 대학교수님인 막내동생은 이런 구질구질한 집안 싸움에 관심조차 두지 않고요.

어릴 때는 한없이 귀엽고 애처롭던 동생들입니다.

 

 

한 자라도 더 가르치고, 남부럽지 않게 해서 시집보내는 게 제 자신의 행복이었는데,

요즘 들어서는 모든 게 허무해지는 심정입니다.

 

 

아내는 저더러 바보 중에 상바보라고 합니다. 살아도 헛살았다고 합니다.

자식들 역시 제 삶을 존경의 눈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아버지는 왜 원가족의 그늘을 못 벗어나느냐고 따지더군요.

 

 

'원가족'이라는 어려운 말도 저는 처음 알았습니다.

가족이면 다 가족이지, 원가족은 뭐고 곁가족은 뭔지….

 

 

자식들은 저한테 말합니다. 이제라도 동생들 불러놓고 부모님에 대해 똑같이 책임을 지우라고요.

그러나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제가 그런 시도를 하면 집안에 싸움이 그칠 날이 없을 겁니다.

 

 

큰오빠 내외가 있는데 왜 우리가 친정 일에 신경을 써야 하느냐고 억울해할 테고,

남동생들은 잘난 안사람들 눈치를 보며 묵묵부답일 겁니다.

 

 

그냥 저 하나 고생하면 형제들이 서로 낯 붉힐 일은 없은 없겠지요.

동생들의 원망이나 지적은,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조금만 더 버티자 싶습니다.

부모님이 사시면 얼마나 더 사시겠습니까?

 

 

문제는 제 아내와 제 자식들입니다. 제 희생에는 내 식구의 희생이 뒤따르더군요.

그렇다보니 처자식이 점점 더 저를 답답해하고, 고모와 삼촌을 미워합니다.

제 막내딸은 이런 기막힌 소리까지 하더군요. 아버지는 그냥 효자로 혼자 사시지 결혼은 왜 하셔서 엄마 고생시키셨느냐고요.

 

 

그게 죽게 키워놓은 자식한테서 들을 소리인가요?

70평생 살아보니, 세상은 도대체 은공을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습니다.

 

 

지금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도 꼭 이대로의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맏이가 돼가지고 나 혼자 잘 살자고 도망칠 수는 없습니다.

 

그게 내 운명이고, 팔자입니다.

다만 그 세월을 장하다 말해주고 등을 쓸어주는 한 사람이 내 곁에 없다는 게 이렇게 서러울 따름입니다.

 

-조선일보 별별다방에서 옮김-

 

 

 

어깨 툭툭 두드려 주는 사람 아무도 곁에 없다고요?

평생을 고샹하며 함께한 아내가 아직 살아있지 않은지...

그 아내도 지난 시간을 원망만 하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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