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밖에서 해결해!!!! 본문

측은지심

밖에서 해결해!!!!

까미l노 2015. 8. 9. 16:15

 

 

요즘 별별다방에 부부간의 내밀한 고민들이 솔직하게 올라오는 것을 보고 저도 용기를 내봅니다.

얼마 전, 같이 자지 않은 남녀는 어디까지나 친구일 뿐이라고 주장한 남편이 뭇매를 맞던데….
그 글 읽고 저는 좀 답답했습니다.

 


저 역시 그 양반 생각에 100프로 동의하는 건 아닙니다만

같이 자지 않는 남녀가 진짜 남녀관계일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물론 같이 자지 않는 특이한 남녀도 있겠죠.

그러나 같이 자기 싫어하는 남녀도 세상에 있을까요?

 

 

저희 부부는 그 문제로 십년 이상 갈등중입니다.

아내는 이제 더 이상 같이 자지는 않는 희한한 '부부'가 되기를 원하는 모양입니다.

저는 그런 이상한 관계를 '부부'라고 부르고 싶지도 않구요.

 

 

늦둥이 둘째 태어나고 나서부터이던가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피하기 시작하더군요.

피곤하다고 했다가, 아프다고 했다가, 할 일이 있다고 했다가….

그러다 결국엔 본심을 털어놓더군요.

 

 

의미를 모르겠답니다.

1년에 단 한 번이라도 서로 원할 때, 제대로 분위기 잡고

평생 잊지 못할 밤을 보내고 싶지 일상적으로 밥먹고 용변보고 잠자듯이, 관계를 갖고 싶지는 않다네요.

 


그러나 부부관계라는 게 사실 그런 거 아닌가요?

성인남녀가 어쩔 수 없이 가지고 있는 성적인 욕구를 합법적으로, 품위 있게

건전하게 해소하는 것도 결혼의 의의라고 생각합니다. 배우자라면 협조할 의무도 있고요.

 

 

그 과정에서 서로 합심해서 분위기도 살리고 느낌도 찾는 것이고 그 노력이 바로 의미인 것이지

어떻게 늘 의미가 선행할 수가 있나요?

 

 

그리고 무슨 견우 직녀도 아니고 매일 민낯 보며, 부대끼며 사는 부부가

일년에 단 한 번 마음이 통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364일을 냉랭히 살고나면, 마지막 하룻밤도 별 볼 일 없는 거죠.

 

 

하여간 의미를 모르겠다는 그 말에 상처를 받은 뒤로 저도 더 이상 매달릴 의미를 못 찾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남자라서 그런지, 부부관계가 쏙 빠진 부부관계의 의미를 도무지 모르겠더군요.

 

더 이상 구걸하지 말자, 기대하지 말자 다짐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는

언제나 제가 뭔가 매달리고 구걸하는 느낌으로 살아가는데 급기야는 이런 말까지 들었습니다.

 

밖에 나가서 해결하고 오면 차라리 좋겠다고요.

다 좋습니다. 내키지 않으면 언제까지나 거부할 수 있습니다.

의미를 못 느껴서 이젠 아예 그만하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아내의 몸과 마음을 열지 못하는 못난 남편이라서 그런 거겠지요.

그러나 부부간에 할 말이 있고, 못 할 말이 있습니다. 밖에서 해결하고 오라니요.

 

 

부부관계를 하느냐 안 하느냐를 넘어서, 이건 배우자에 대한 사랑과 존경이 곤두박질치는 상황 아닙니까?

남자로서 애로사항을 느끼면서도 가정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짓은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아내의 모진 말 한 마디에 모든 게 물거품이 되는 느낌입니다.

 

 

밖에서 그거 하나 해결 못하고 애먼 아내를 귀찮게 하는 저는 희대의 바보인가요?

저 같은 고민으로 한숨 쉬어 보신 남자분들만이 이 기분 아실 듯 합니다.

 

--조선일보 매거진 별별다방에서--

 

'측은지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라진 가족애  (0) 2015.08.09
사랑과 재혼  (0) 2015.08.09
그남자 그여자 이야기 #2  (0) 2015.08.09
그남자 그여자 이야기 #1  (0) 2015.08.09
밥 이야기 #3 '밥 처럼 고운 여자'  (0) 2015.0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