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밖에서 해결해!!!! 본문
요즘 별별다방에 부부간의 내밀한 고민들이 솔직하게 올라오는 것을 보고 저도 용기를 내봅니다.
얼마 전, 같이 자지 않은 남녀는 어디까지나 친구일 뿐이라고 주장한 남편이 뭇매를 맞던데….
그 글 읽고 저는 좀 답답했습니다.
저 역시 그 양반 생각에 100프로 동의하는 건 아닙니다만
같이 자지 않는 남녀가 진짜 남녀관계일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물론 같이 자지 않는 특이한 남녀도 있겠죠.
그러나 같이 자기 싫어하는 남녀도 세상에 있을까요?
저희 부부는 그 문제로 십년 이상 갈등중입니다.
아내는 이제 더 이상 같이 자지는 않는 희한한 '부부'가 되기를 원하는 모양입니다.
저는 그런 이상한 관계를 '부부'라고 부르고 싶지도 않구요.
늦둥이 둘째 태어나고 나서부터이던가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피하기 시작하더군요.
피곤하다고 했다가, 아프다고 했다가, 할 일이 있다고 했다가….
그러다 결국엔 본심을 털어놓더군요.
의미를 모르겠답니다.
1년에 단 한 번이라도 서로 원할 때, 제대로 분위기 잡고
평생 잊지 못할 밤을 보내고 싶지 일상적으로 밥먹고 용변보고 잠자듯이, 관계를 갖고 싶지는 않다네요.
그러나 부부관계라는 게 사실 그런 거 아닌가요?
성인남녀가 어쩔 수 없이 가지고 있는 성적인 욕구를 합법적으로, 품위 있게
건전하게 해소하는 것도 결혼의 의의라고 생각합니다. 배우자라면 협조할 의무도 있고요.
그 과정에서 서로 합심해서 분위기도 살리고 느낌도 찾는 것이고 그 노력이 바로 의미인 것이지
어떻게 늘 의미가 선행할 수가 있나요?
그리고 무슨 견우 직녀도 아니고 매일 민낯 보며, 부대끼며 사는 부부가
일년에 단 한 번 마음이 통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364일을 냉랭히 살고나면, 마지막 하룻밤도 별 볼 일 없는 거죠.
하여간 의미를 모르겠다는 그 말에 상처를 받은 뒤로 저도 더 이상 매달릴 의미를 못 찾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남자라서 그런지, 부부관계가 쏙 빠진 부부관계의 의미를 도무지 모르겠더군요.
더 이상 구걸하지 말자, 기대하지 말자 다짐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는
언제나 제가 뭔가 매달리고 구걸하는 느낌으로 살아가는데 급기야는 이런 말까지 들었습니다.
밖에 나가서 해결하고 오면 차라리 좋겠다고요.
다 좋습니다. 내키지 않으면 언제까지나 거부할 수 있습니다.
의미를 못 느껴서 이젠 아예 그만하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아내의 몸과 마음을 열지 못하는 못난 남편이라서 그런 거겠지요.
그러나 부부간에 할 말이 있고, 못 할 말이 있습니다. 밖에서 해결하고 오라니요.
부부관계를 하느냐 안 하느냐를 넘어서, 이건 배우자에 대한 사랑과 존경이 곤두박질치는 상황 아닙니까?
남자로서 애로사항을 느끼면서도 가정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짓은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아내의 모진 말 한 마디에 모든 게 물거품이 되는 느낌입니다.
밖에서 그거 하나 해결 못하고 애먼 아내를 귀찮게 하는 저는 희대의 바보인가요?
저 같은 고민으로 한숨 쉬어 보신 남자분들만이 이 기분 아실 듯 합니다.
--조선일보 매거진 별별다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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