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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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엔 까미노

구련산엔 절벽 위에 매표소가 있다?

까미l노 2015. 2. 14. 12:38
  • [중국 트레킹 5] 2010년 4월 3일

    건너편 협곡 위에 크고 웅장한 건물이 들어선 것이 보였다. 건물 옆은 낭떠러지다. 언뜻 보기에 호텔 같다. 저게 뭐냐고, 가이드에게 물었더니 매표소란다.

    협곡을 따라 외줄기로 나 있는 길을 걷는다. 길 폭은 점점 더 좁아졌지만 한 사람이 넉넉하게 지나갈 수 있을 정도는 된다. 길 한쪽은 바위로 막혀 있고, 다른 한쪽은 낭떠러지다. 고소공포증이 있다는 포도향기 언니는 낭떠러지 쪽으로 가면 떨어질 것 같아서 절벽 쪽으로 바싹 붙어 걷다가 바위에 머리를 수도 없이 부딪혔단다.

    양몰이꾼들이 다녔다는 이 길은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만든 길이란다.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내는 거야 당연하달 수도 있지만, 길도 길 나름이 아니겠나. 높은 산 중턱의 낭떠러지에 길을 내려면 얼마나 많은 공력이 들어가야 했을까? 위험하지는 않았을까?

    산굽이를 따라 돌아가니 멀리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이 보인다. 마을은 손에 잡힐 듯 가까워 보이지만 보이는 것만큼 가깝지는 않다. 굽이굽이 산을 에둘러 가야 하기 때문이다.


     
     


    협곡을 따라 걷는 길은 좁았지만 마을길은 제법 넓었다. 마을 입구 한쪽에 있는 밭에서 노부부가 쟁기질을 하고 있었다. 바야흐로 씨를 뿌리는 계절이 돌아온 것이다. 우리 일행이 카메라를 들이대고 사진을 찍자 할머니의 쟁기질이 힘차고 빨라진다. 닭 서너 마리가 마을 안을 종종걸음으로 돌아다닌다. 수탉 한 마리가 목청을 가다듬고 뽑아내는 소리가 마을을 울린다. 암탉도 두어 마리 보인다. 마을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암탉을 보면서 생각했다. 저 녀석들이 낳은 달걀은 죄다 유정란이겠구나.

     


    마을을 벗어나기 전에 양지바른 곳에 나와 앉아 있는 할머니 두 분을 보았다. 머리에 수건을 두른 할머니는 두툼한 겉옷을 입었고, 단발머리 은발인 할머니는 따뜻해 뵈는 스웨터를 입었다. 할머니들이 심심해 봬 배낭 안에 넣어두었던 초콜릿과 사탕 같은 단것들을 꺼내 손에 쥐어드렸더니 한사코 사양한다. 일상이 무료할 때 단것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잖아요, 할머니. 그래도 손에 억지로 쥐여드리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나중에 돌아보니 초콜릿의 껍질을 까신다.

    마을을 벗어나니 콘크리트로 포장을 한 길이 나온다. 이 길이 이 마을과 다음 마을을 연결하는 도로인가 보다. 한데, 길 중간에 간이 철문을 만들어 통행을 막고 있었다. 문에 표지판이 붙어 있어 가까이 다가가 보니 도로를 수리하는 비용을 받는다고 적혀 있다. 통행료를 내야 한다는 건데, 도로를 늘 사용하는 사람은 따로 있을 텐데 일부러 찾아온 관광객이 왜 그걸 내야하는 건지 모르겠다.

     

     

     

    1인당 5원. 중국 돈 5원이니까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900원 정도가 된다. 돈을 내고 그 길을 걸었다.

    우리가 점심을 먹을 예정인 주가포에 도착했다. 이곳 역시 공사가 한창이었다. 중국 정부에서 거액을 들여 관광단지를 조성하고 있다더니 사실인가 보다. 태항산을 직접 걸어보니 앞으로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올 가능성이 높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암절벽들이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니 누구라도 와서 감탄을 할 게 분명했으니까. 경치 아름답지, 걷지 좋지.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니다.

    오후 3시에 주가포의 한 식당에서 늦은 점심식사를 했다. 시간이 늦어서일까, 식당에는 우리 일행밖에 없었다. 천천히 식사를 하고, 가져온 1회용 커피믹스로 커피까지 마시고 나니 노곤하다. 식당 널찍한 마당에 털썩 주저앉아 해바라기를 한다. 하늘은 맑고 푸르고, 부는 바람은 살랑거린다. 이대로 낮잠이라도 자면 좋겠다, 싶은 오후다.

     

     

    버스를 타고 왕망령으로 이동했다. 왕망령에 이르는 자동차도로는 어찌나 구불구불 하고 경사가 심하던지 차를 타고 지나온 길을 돌아보면 현기증이 저절로 날 지경이었다. 산과 바위를 깎아 만든 티가 역력하게 나는 길이었다. 산 위에는 밝은 색 페인트를 칠한 케이블카가 여러 대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멀리서 보니 밝은 색 등을 매달아놓은 것 같다. 그 케이블카를 타고 아래를 내려다보면 참으로 아찔하겠구나, 싶어진다. 한데, 그거 아직 운행을 하지 않는단다.

    산봉우리에 오르기 위해 산을 허물고 바위를 깎고, 케이블카를 놓는 건, 우리나라나 중국이나 다를 바가 없구나, 싶다.

     


    버스가 멈춰 선 곳은 납작하게 엎드린 건물들이 들어선 평평하고 너른 꼭대기. 이곳에 들어선 건물은 호텔이라고 했다. 관광지를 관리하는 건물도 있는 것 같다. 호텔은 4월에 문을 연다고 했는데, 일정이 늦춰진 모양이었다. 우리는 이 호텔에서 묵을 예정이었지만 문을 열지 않아서 대신 시설이 낙후하다는 왕망령 초대소에 잔다고 했다.

    이 호텔, 전망 하나는 끝내줄 것 같다. 창문을 열면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펼쳐질 테니까. 다음에 왕망령에 오게 된다면 이곳 호텔에서 꼭 하룻밤을 자야겠다. 다시 온다는 기약은 할 수 없지만.

     


    길은 숲을 향해 이어지고 있었다. 잘 다음어진 길이다. 중국인 관광객 한 무리가 그 길에서 몰려나오다가 우리와 마주쳤다. 왁자지껄한 말소리와 웃음소리가 확 퍼진다.

    해질녘이라서 그런가, 아니면 산꼭대기라서 그런가. 세찬 바람이 불었다. 바람은 우리 뒤를 따라오기도 했고, 우리 앞을 가로 막기도 했다. 시원하면서도 서늘한 기운이 감돈다. 하늘이 조금씩 어두워지는 것도 같았다.

     


    관일대는 주변 경치를 조망하기 좋은 곳이었다. 아마도 이곳에서 일출을 볼 수 있는가 보다. 조금씩 기울기 시작하는 석양을 느낄 수 있었다. 경치를 조망할 수 있는 곳에는 사람들이 떨어지지 않도록 구조물을 설치해 놓았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깊은 절벽 사이로 툭~ 떨어질 수 있을 테니까.

     


    일행 한 사람이 장난기가 잔뜩 서린 표정으로 구조물을 넘어가는 시늉을 하자 제복을 입은 중국인 안내인이 정색을 하고 다가와 제지한다. 절벽과 절벽이 이어진 산은 장엄하기 그지 없다. 바위산이 모이고 모여 장관을 연출한다.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둘러보고 둘러보아도 산이고 바위다. 멀리 산 아래에 길게 이어지는 돌계단이 보인다. 사람의 발길이 닿을 것 같은 곳에는 어김없이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산을 오르는 사람을 위한 배려겠지만, 계단을 오르는 것보다는 산길을 오르는 것이 더 좋은 것이 사실.

     


    시간이 흐를수록 바람이 차갑게 느껴져 옷깃을 여미게 된다. 바람은 여민 옷깃을 비집고 들어와 서늘한 기운을 느끼게 하고.

    버스를 타고 올라왔던 길을 내려간다. 가파른 경사 탓에 롤러코스터를 탄 것 같은 느낌이다. 한 겨울에 눈이라도 내린다면 이 길은 위험하기 짝이 없겠다. 누군가 말한다. 한계령 같다고.

     

     

    * 이 도보여행은 도보모임 <카미노 도보여행> 회원들과 함께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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