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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엔 까미노

깎아지른 절벽위를 걷다, 여기가 만리장성 맞아?

까미l노 2015. 2. 14. 12:27
 

허연 부분이 문제였다. 쌓은 돌이 모조리 무너져 내려 디딜 것이 전혀 없는 것 같다. 상태가 어떤지 살펴보러 올라간 선발대. 사진을 찍으려고 폼을 잡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길이 없다고 알려주는 중이다.





 

오금이 저리다는 말, 생전 처음으로 실감했다. 이래서 오래 살고 봐야 한다는 말이 있는가 보다.

경사가 80도가 넘는다는 가파른 성벽 길을 기다시피 하면서 겨우 올라왔더니 마지막 관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거의 수직인 성벽. 명나라 때 쌓았을 때는 오르는 길이 계단이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계단이었을 것이라는 짐작만 할 수 있는 흔적만 겨우 남아 있었다. 삐죽삐죽 삐어져 나온 돌들은 아무리 후하게 봐줘도 계단이라고 할 수 없었다. 겨우 발을 딛고 올라설 수 있을 것 같은 길 아닌 길. 발을 잘못 디디거나 돌을 잡은 손을 놓치면 아차, 하는 순간 그대로 바위투성이의 절벽 아래로 곤두박질 칠 것 같았다. 그 이후는? 상상에 맡긴다.

 


바지는 온통 마른 흙투성이였다. 손가락 끝이 없는 장갑을 낀 손 역시 더러워질 대로 더러워졌다. 참내, 지금까지 도보여행을 다녀봤지만 지금 같은 몰골은 처음이다.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옷이야 더러워지면 빨면 그만이고, 몸이 더러워지면 물로 씻어내면 그만이다. 앞을 가로막고 있는 길 아닌 길을 지나가야 한단다.

튀어나온 돌을 길 삼아 밟으면서 절벽 길을 올라가야 한다는 건데, 비슷한 구간을 연달아 두 개 기어 올라왔을 때는 마지막 관문도 그렇게 기어 올라가면 될 줄 알았다. 한데, 코앞에 와서 위를 올려다보니 갑자기 심장이 벌렁거리고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돌들이 삐죽삐죽 튀어나온 그 구간의 윗부분이 심상치 않았다. 수직으로 내려 꽂힌 절벽처럼 보여 딛거나 잡고 올라갈 돌이 전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그 벽면은 손을 대기만 하면 모래처럼 부서져 내릴 것처럼 약해 보였다.

 


그 자리에 가장 먼저 올라간 나, 그 깎아지른 절벽 길을 멀거니 보고 있자니 내가 미쳤지, 싶은 생각이 머릿속을 휙 스친다. 죽을 자리가 없어 죽을 자리를 찾아 왔나, 싶었다는 거 아닌가.

저길 올라가야 한다고라? 나, 죽어도 못 가!

 

 

북경결. 이 지점에서 길이 세 갈래로 나뉘어 진다고 했다. 멋드러진 소나무가 인상 깊은 곳.


내 뒤를 따로 올라온 여자 둘이 그 절벽을 보더니, 남자들이 올라올 때까지 기다리자고 한다. 여자들끼리는 절대로 못 올라간다는 거다. 당연히 동감이지. 그럼, 지금까지 기어 올라온 길을 다시 내려가야 한다는 결론? 거의 80도 경사의 길을 자일 같은 등산장비 없이 내려간다고? 그 또한 못할 짓 아닌가?

진퇴양난이라는 말, 이럴 때 쓰는 거다.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로 물러날 수도 없는 상황이 바로 이런 거 아니겠나. 그럼 우짜라고? 헬기 불러서 타고 내려야지. 하지만 여기는 대한민국이 아니라 중국의 만리장성이다. 만리장성에서도 하이라이트라고 불리는 가장 험한 구간. 첸코우, 라고 한다던가?

지난 4월 2일부터 6일까지 중국으로 도보여행을 떠났다. 걷는 구간은 태항산의 구련산과 왕망령 종주 코스와 만리장성 일부. 만리장성이야 오래전에 다녀온 경험이 있기에 성벽을 따라서 걸으면 되려니 하고 전혀 걱정을 하지 않았다(이 때 간 곳은 관광지란다. 트레킹 코스가 아니라). 만리장성을 우습게 본 것이지. 전체의 길이가 6350km라는 만리장성이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미처 못 한 것이다.

우리가 걷기로 한 구간은 명나라 때 축성한 것으로 축성한 뒤 단 한 번도 보수를 한 적이 없단다. 왜냐고? 가보니 알겠더라. 그 험한 곳에 성을 쌓은 것부터가 미친 짓인데, 그 성을 보수한다는 건 더 미친 짓이지 싶더라니까. 수직으로 성을 쌓은 것을 보니 성을 쌓을 때부터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을 것이라는 짐작을 하고도 남게 한다. 나더러 거기에 가서 성을 쌓으라고 하면 아마도 남편 손 이끌고 야반도주 하고 말았으리라. 어차피 죽을 거라면 도망치다 죽는 편이 낫겠다, 싶었을 테니까.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길, 위험하다고 통행하지 말라는 표지판을 세워놓은 길이었단다. 올라가는 길에 표지판을 보긴 했지만, 그냥 표지판인가 보다 했지 그런 표지판인지 몰랐다. 하긴 알았더라도 별 거 있겠어, 하면서 올라갔겠지만.

물론 조선족 가이드가 따라붙긴 했다. 여자 하나, 남자 하나. 한데 둘 다 그 길은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단다. 그냥 위험한 길이라는 얘기만 들었다나. 그들을 대신 해서 그 길을 무지 잘 아는 중국인 현지 가이드가 따라붙긴 했지만.

 


만리장성을 놀멘놀멘 걸으러 갔다가 목숨을 걸고 기어올라야 했던 이야기, 처음부터 좍 풀면 재미가 없을 터. 천천히 풀어 놓을란다.


* 이 도보여행은 도보모임 <카미노 도보여행> 회원들과 함께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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