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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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엔 까미노

왕망령에서 만선산 가는 길 절경이네

까미l노 2015. 2. 14. 12:36

[중국 트레킹 6] 2010년 4월 4일

어제, 롤러코스터를 타듯 내려온 그 길을 오늘 다시 버스를 타고 왕망령까지 올라간단다. 삶은 달걀과 죽, 빵으로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하고, 버스를 타러 갔다. 어제는 버스에 우리 일행만 탔지만, 오늘은 현지 사람들 몇 명이 우리보다 먼저 타고 있었다. 그 중에는 예비군복 비슷한 것을 입은 청년 둘도 있었다. 왕망령에 도착하기 전에 같은 옷을 입은 청년 한 사람이 곡괭이를 들고 버스에 오른다. 이 청년, 곡괭이는 버스바닥에 패대기치듯 내려놓고 같은 복장을 한 청년 앞으로 가서 무릎 위에 올라앉으면서 장난을 친다. 이 청년들, 군인은 아닌 것 같고, 왕망령의 호텔 공사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인가?

 


간밤에 우리가 묵었던 왕망령 초대소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시설이 좋았다. 시설이 열악하고 밤에 추울 것이라고 해서 안나푸르나에서 트레킹을 할 때 묵었던 허름한 게스트하우스를 상상했던 것이다. 시설이 호텔만은 못했지만, 하룻밤을 묵는데 큰 불편은 없었다.

 


하얀 시트가 씌워진 침구는 깨끗했고, 침대가 3개씩 들어가 있는 방은 그런대로 널찍했다. 방마다 침대는 3개였지만, 2사람이 사용했다. 산 위라서 그런지 해가 진 뒤 기온이 뚝 떨어졌고, 방안에서는 냉기가 감돌았다. 스팀이 들어오긴 했지만, 그 온기가 방안을 전부 따뜻하게 데우기에는 부족했다. 그래도 두꺼운 이불 덕분에 자는데 춥지는 않았다.

 


욕실 겸 화장실은 공용이었다. 수세식 화장실이었고. 욕실의 물은 태양열로 데운다고 했는데, 샤워꼭지가 오래 돼서 낡았을 뿐, 더운 물은 그럭저럭 나왔다. 욕실이 썰렁하니 냉기가 돌아서 그렇지. 하루 종일 걸으면서 땀을 흘려서 샤워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뜨거운 물이 나오지만 덜덜 떨면서 씻어야 했다.

이 초대소, 방마다 잠금장치가 있는데 열쇠가 없단다. 그래도 초대소 관리사무소에는 마스터키가 있다니 다행이긴 하지만. 이 날 초대소에는 우리 말고도 몇 사람이 더 묵었다.

 

 

이 날 밤의 에피소드 하나.

남정네들이 차지한 방에 일행 대여섯 명이 모여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는데 양복을 차려입은 한 남자가 들어왔다. 이 남자, 연신 얼굴에 환한 웃음을 띠면서 이야기를 하는데 무슨 말인지 도통 알아들을 수가 있어야지. 우리 일행 중에 중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으므로. 우리 일행은 방문을 열어놓고 높은 톤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시끄럽다고 다른 방에서 항의를 하러 온 것이 아닌가, 짐작했지만 얼굴 표정으로 봐서는 화난 것 같지는 않았다.

 

 


이럴 때 부르는 사람이 바로 가이드. 우리의 꽃미남 가이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가 잠이 덜 깬 표정으로 불려왔다. 가이드의 통역에 따르면 이 남자는 이곳 초대소에서 일하는 사람이라고. 왕망령을 앞으로 계속 개발해서 관광객을 유치할 예정인데, 그 주요대상이 한국인이란다. 마침 한국인들이 이곳을 찾아서 둘러본 소감이 어땠는지를 묻는 거라고.

한국 사람들이 중국을 많이 찾긴 찾는구나, 싶었다. 앞으로 더 많은 한국인들을 고객으로 유치하고 싶어 하고.

 


 
 

오전 8시 40분경, 왕망령 버스정류장에 다시 도착했다. 날씨, 맑음. 어제 걸었던 길을 다시 걷는 것이 아니라 계단이 길게 이어진 옆길로 샌단. 만선산으로 가는 길이란다. 계단, 참으로 길다. 걸어도 걸어도 계단이다. 왕망령에서 만선산에 이르는 트레킹 코스에는 2700개의 돌계단이 이어진단다. 270개도 지루할 판인데 2700개라고라?

내려가는 계단만 있는 게 아니라 더러는 올라가는 계단도 있었다. 길을 따라 걷다가 주변을 둘러보면 기암절벽들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그 모습, 장관이라 아닐 할 수 없다. 빼어난 경치는 걷는 이들의 시선만 붙드는 것이 아니라 발걸음도 멈추게 했다. 시루떡처럼 켜켜이 쌓인 돌들이 높은 탑을 이루는데, 하나 둘이 아니었다.

저것 좀 봐, 저기두!

 


중국의 산수화를 3D로 보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넋을 잃고 볼만한 절경이었다. 계단을 벗어난 길의 일부 구간은 길옆이 낭떠러지라 쇠로 난간을 만들어놓았다. 쇠 난간 덕분인지 위험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천천히 걸으면서 절경을 감상하기 좋았다고나 할까. 일행은 쇠 난간에 바싹 붙어 서서 경치를 사진기에 담느라 정신이 없었다. 경치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도 하고.

왕망령 매표소를 지나니 내리막 계단이 이어진다. 돌계단, 많기도 하지.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돌계단을 내려가는데 올라오는 사람들이 보인다. 대부분 중국 사람들이다. 내려가는 사람들은 느긋하지만 올라가는 사람들은 가쁜 숨을 내쉬며 이마에서 흘러내린 땀을 씻느라 분주하다. 이따금 올라가는 사람들이 말을 건다. 하지만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있다.

일행 중 한 사람이 목청 크게 외친다. 항궈, 팀부동. 한국에서 왔고, 당신들 뭔 말 하는지 못 알아들어. 이런 뜻이다. 어떤 사람은 아, 항궈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어떤 사람은 그냥 씨익 웃으면서 지나간다. 가파르게 이어지는 계단 아래로 저 멀리 마을이 보인다.

마을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다. 이 마을에는 작은 가게가 있었다. 그 가게에서 초코바처럼 생긴 막대 아이스크림을 팔고 있었다. 맥주도 있는데, 냉장고에서 차게 식힌 건 딱 한 병이란다. 아이스크림은 당연히 아이스크림용 냉장고에 들어 있었지만, 맥주는 그냥 가게 안에 놔두고 판다나. 그래도 가게 안이 서늘해서 그런지 맥주는 나름대로 시원하다고 할 수 있었다.

베이징 같은 대도시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들렀던 곳 대부분은 맥주를 냉장고에 넣지 않은 채 그냥 팔았다. 냉장고에서 갓 꺼낸 차가운 맥주만을 마시던 습관 때문일까? 그게 어찌나 낯설고 못마땅하던지. 목 넘김이 시원한 맥주를 간절히 마시고 싶었으므로. 식당에서도 내주는 맥주도 마찬가지였다. 냉장고가 많이 보급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했다. 맥주를 주문하면 유리컵 대신 종이컵을 내주는 경우도 있는데, 종이컵에 냉장이 안 된 맥주를 따르면 거품이 어찌나 많이 나던지... 그나마 계절이 한 여름이 아니길 다행이지.

이 마을에 돌로 세운 안내판이 있었는데 반갑게도(?) 한국어도 같이 씌어 있었다.

지구를 해방하고 있지 않습니다. 관광객은 멈추어 섭니다.

이 마을에서 왕망령에 이르는 구간을 개방하지 않으니 관광객은 출입을 금하라는 얘기인데, 관광객은 멈추어 선다, 고 표현했다. 개방하지 않는다는 구간으로 등산객들이 엄청나게 올라가는 걸 보니, 강제로 구간을 폐쇄한 것은 아닌 것 같다.

 

마검봉 폭포

 
이 마을에서 마검봉 폭포까지 가는 길은 험했다. 지금까지 내려온 길에는 돌계단만 있었는데 이 구간에는 철계단도 더러 있었다. 아주 위험한 구간에 일부러 계단을 만들어 길을 이은 때문이었다. 원통형 철계단을 지나니 한 사람이 겨우 드나들 정도 크기의 동굴이 나타난다. 동굴 출구에는 잡고 나오라는 것인지 쇠사슬이 늘어져 있었다. 그걸 잡고 겨우 동굴 속을 빠져 나오니 눈앞이 환해지는 것 같다.

마검봉 폭포의 물은 별로 많지 않았지만 무척이나 높아서 고개를 한껏 뒤로 제쳐야 했다. 한여름에는 수량이 늘어난다는 것이 가이드의 설명. 폭포 앞은 몰려든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전부 다 중국인들이었다. 물이 많아지는 여름에는 당연히 관광객들이 더 늘어나리라.

마검봉 폭포에서 내려가는 길 역시 기암절벽으로 이뤄져 있었다. 빼어난 절경은 감탄을 연달아 하게 만들었다. 바위와 바위가 모여서 장대한 산을 연출하는 모습은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다.

남평에 이르렀다. 이 마을은 제법 규모가 컸다. 호두며 말린 과일을 파는 노점상들이 늘어서 있었고, 물건을 사느라 사람들이 모여 있기도 했다. 마을길을 따라 식당으로 가는 길에 너댓 살쯤 되었을까, 여자 아이 둘을 만났다. 한 아이는 잘못을 했는지 엄마로 짐작되는 어른에게 혼나는 중이었다. 뚱한 표정으로 야단을 맞는 아이가 어찌나 귀엽던지, 주머니를 뒤져 사탕과 초콜릿을 꺼내 건넸다. 이 아이, 뚱한 표정을 풀지 않고 손도 내밀지 않고 가만히 서 있다.

손에 사탕을 쥐어주고, 주머니에 초콜릿을 찔러 넣어 주었다. 그래도 표정은 달라지지 않는다. 이런 아이를 지켜보던 주변의 어른들이 왁자지껄 떠들면서 웃는다. 그곳에서 대여섯 걸음 떨어진 곳에 서 있는 아이에게도 사탕을 쥐어주니, 이 아이 제 옷에 붙은 주머니를 벌리는 시늉을 한다. 거기다가 더 넣어달라는 게다. 그래서 초콜릿을 몇 개 넣어주었다.

오늘의 걷기는 이곳 남평까지. 이 마을에서 점심식사를 한 뒤 버스를 타고 안양역으로 이동해서 오후 7시 반에 출발하는 북경행 고속열차를 탈 예정이었다. 안양까지는 버스를 타고 두 시간반 가양 가면 된단다.

남평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드는 곳인 것만은 분명했다. 노점상들이 많았고, 큰 식당도 여럿 들어서 있었다. 우리가 들어간 식당 역시 식사를 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아이들이 제법 눈에 띄는 것을 보니 휴일을 맞아 놀러온 가족들이 많은 것 같았다.

 


점심식사를 하면서 기억나는 것 하나. 닭볶음탕 비슷한 것이 나왔는데, 닭발과 더불어 닭 머리까지 들어가 있더라는 것. 흐미, 이것이 무엇이여, 하는 말에 보니 닭벼슬이 눈에 확 들어오더라는.
 

왕망령에서 남평까지 걸었다.

* 이 도보여행은 도보모임 <카미노 도보여행> 회원들과 함께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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