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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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엔 까미노

태항산, '중국의 그랜드 캐니언' 맞네

까미l노 2015. 2. 14. 12:08

구련사

 

비닐봉지 안에 개나리가 들어 있다.




 

구련사 코앞까지 갔으니 절에 들르면 좋겠지만, 거기서 지체하다가는 일정을 제대로 마칠 수 없기에 우리는 그냥 먼빛으로 절의 겉모습만 슬쩍 쳐다보고 지나간다. 길은 외줄기로 이어진다. 그 길, 평지와 다름이 없다. 산 위에 걸린 길이건만 더할 나위 없이 평평한 걷기 좋은 흙길이다. 이런 길이라면 하루 종일 걸어도 질리지 않고 지치지 않으리라.

길을 따라 걷다가 반대편을 보면, 대협곡이 웅장하게 펼쳐져 있다. '중국의 그랜드 캐니언'이라고 하더니 결코 빈말이 아니다. 걷는 길 건너편 협곡 사이는 깎아지른 절벽. 그 사이로 떨어지면 뼈도 못 추릴 것 같다. 떨어진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누구도 그 뼈를 추리러 갈 엄두를 내지 못할 것 같다.

 


개나리가 피었다. 가지가 많은 것도 아니요, 꽃이 소담스러운 것도 아니다. 자연에서 제멋대로 자라다가 꽃을 피운 티가 역력하다. 부부로 뵈는 나이든 노인 둘이 개나리를 따고 있었다. 말이 통해야지 개나리를 따다가 무얼 할 거냐고 묻기라도 하지. 그냥 두 사람을 향해서 미소만 흘릴 수밖에. 등산장비를 제대로 갖춘 사람들의 무리가 지나가자 이들 역시 신기한 듯 본다.

깎아지른 절벽을 따라 길이 이어진다. 길 아래는 천길(?) 낭떠러지. 군데군데 벚꽃이 피어 있다. 하지만 다른 나무들은 아직 푸른 옷을 입지 못한 채 헐벗고 있었다. 일주일쯤 지나면 산이 푸른 빛으로 변할 것이라는 게 가이드의 설명이었다. 우리는 너무 일찍 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봄빛이 온 산을 쩌렁쩌렁 울릴 때 왔더라면 경관이 더 아름다웠을 텐데.

 


이 곳, 5월이면 한 여름 날씨를 방불케 한단다. 봄은 더디게 오면서 여름은 무척이나 빠르게 찾아오는 곳인가 보다. 이런 곳일수록 겨울이 길지. 매섭게 추우면서.

마을이 보인다. 이곳이 황감두 마을인가 보다. 마을에서 뚝 떨어진 곳에 자리 잡은 특이한 형태의 이층집이 눈길을 끌었다. 1층은 돌로 벽을 쌓았고, 2층은 빨간 벽돌을 쌓아올렸다. 1층의 문은 아치형이고 2층에는 창이 하나도 없다. 지붕은 나무로 만들어 이어 올렸다. 집 모양만 봐서는 사람이 사는 살림집은 아닌 것 같다. 창고일까?

집이 참 마음에 든다. 2층에 커다란 창을 내면 협곡을 마주 볼 수 있으니 전망이 끝내 줄 것 같다. 이참에 여기에 눌러 앉아 살아볼까?

 


집 뒤의 산언덕 여기저기 벚꽃 무더기가 보인다. 멀리서 보니 마을의 어느 집에서 세 개의 깃발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붉은 기야 중국의 국기인 오성홍기일 테고, 하늘색과 노란색 깃발은 무엇일까? 가이드에게 묻자 고개를 갸웃거린다. 노란색은 종교 단체 깃발이 아니겠느냐면서.

마을 길 아래 풀숲에 빈병들이 잔뜩 나뒹굴고 있었다. 어딜 가나 쓰레기가 문제다. 이 곳, 여름에 계곡에 물이 많아지면 더위를 피하려는 관광객이 무척이나 많이 몰려온단다. 쓰레기는 관광객들이 다녀갔다는 흔적으로 남기는 것이리라.

 


북경에서 신향까지 고속철도를 타고 오면서 나뭇가지에 걸린 비닐봉지들을 엄청나게 많이 보았다. 버려진 비닐봉지들이 바람이 불 때마다 이리저리 흩어지다가 나뭇가지에 걸린 것이리라. 비닐봉지의 색깔은 다양했다. 검은색, 흰색, 붉은 색, 노란색. 바람에 날려 나뭇가지에 걸린 비닐봉지들은 바람이 불 때마다 깃발처럼 나부꼈다. 어지럽고 지저분해 뵈는 비닐봉지들. 쓸 때는 편하지만 쓰레기가 되면 환경오염을 가중시키는 것들.

그걸 보고 꾸요 언니가 말했다.
나, 한국에 돌아가면 다시는 비닐봉지는 안 쓸 거야.

 

 

산신당

 

움푹 패인 곳에 계단이 있다.


마을을 지나 한 오 분쯤 걸었을까? 길옆에 단층 기와집 한 채가 덩그러니 놓인 것이 보인다. 산신당이란다. 우리나라의 산신당이라면 사람의 키를 넘는 게 보통인데, 이건 인형이 사는 집처럼 작았다. 안을 들여다보니 수염을 기른 할아버지 인형 둘과 나무로 깎은 돼지 두 마리가 있다. 불 꺼진 붉은 양초도 하나 있네. 인형 하나는 군인 복장을 했다.

기암절벽으로 이루어진 태항산에서 아주 오래전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고 한다. 전한을 멸망시키고 신나라를 세운 왕망과 후한을 세운 유수가 이곳에서 전투를 벌였다는 것이다. 이렇게 험한 곳에서 싸움을 벌였으니 싸우다가 죽는 것이 아니라 발을 헛디뎌 낭떠러지 아래로 굴러 떨어져 죽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으리라. 하긴 주변을 둘러보니 천혜의 요새가 따로 없겠다. 외줄기 길 위에서 서로 마주친다면 도망도 못가고 죽기 살기로 싸울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그 뿐인가, 태항산은 우리 광복군이 중국의 팔로군와 함께 일본군과 전투를 벌인 곳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에 우리의 광복군이 중국에서 활약했던 이야기는 들은 바 있지만, 그들이 이곳까지 와서 일본군과 싸웠다니, 대단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곳은 우리와 아주 무관한 곳이 아니라는 얘기인데, 그러한 역사를 전하는 표지판 하나 없이 이제는 트레킹 코스로 각광을 받게 되었으니, 흐르는 세월이 무상하다고 해야 하는 건가?

 


길은 지나는 이가 세월의 무상함을 탄식하거나 말거나 이어진다. 걷다가 길 건너편을 보니 그곳에도 길이 있다. 절벽을 따라 금을 그은 것처럼 이어지는 길. 굵은 실타래를 풀어놓은 것 같다. 그쪽에서 보면 우리가 걷는 길도 그렇겠지.

이곳 높이가 어느 정도가 되는 지 궁금해서 가이드에게 물었더니 1200미터쯤 되지 않겠어요, 한다. 구련산의 높이가 1700미터쯤 된다면서. 그렇다면 우리가 걷는 길옆으로 펼쳐진 시루떡 절단면처럼 생긴 바위들의 높이가 어쩌면 천 미터가 넘을 수도 있다는 거다. 천길 낭떠러지가 바로 이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태항산 협곡은 사진으로 보는 것과 실물로 보는 건 느낌이 아주 다르다. 직접 눈으로 보고 돌아와 찍은 사진을 들여다보니 그 느낌이 제대로 나지 않는다. 이래서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이 나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산신당은 몇 개가 더 있었다. 낭떠러지 옆에 바싹 붙어 있는 산신당이 눈길을 끌었다. 한 발을 헛디디면 그대로 낭떠러지 아래로 굴러 떨어질 판인데 하필이면 그런 곳에 산신당을 지어 놨을까? 그 자리에서 많은 사람들이 떨어져 죽은 것은 아닐까?

산신당 옆으로 작은 집 한 채가 지어져 있다. 혹시나 규모가 큰 산신당인가 했더니 아닌 것 같다. 한데 그 집 아래쪽으로 가파른 계단이 이어져 있다. 난간이 없는 가파른 돌계단은 사람이 지나다닌 지 오랜 된 것처럼 퇴락해 보였다. 가이드가 한 마디 불쑥 던진다.

우리가 저 계단을 올라오려고 했습니다.
난간이 없고 가파르고 좀 위험하다는 계단이 바로 저기?

 


가이드가 맞는다고 대답한다. 계단을 유심히 살피니 그 길을 오르지 않기를 너무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계단이 어찌나 가파른지 그 길을 올라오는 게 거의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난간조차 없어서 저 계단을 오르려면 두 손과 두 다리를 다 이용해서 엉금엉금 기다시피 해야 할 것 같았다.

비록 옆은 낭떠러지지만 길은 폭이 넓은 걷기 좋은 흙길이었다. 그 길을 한 시간쯤 걷자 집이 보인다. 마을이라고 하기에는 규모가 너무 작아서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네 집이 산단다. 이런 곳에서 무엇 먹고 사나, 궁금해 했더니 밭농사를 짓고, 염소를 키운다나. 땅을 보니 산속이긴 하나 아주 척박한 곳은 아닌 것 같다.

집들이 있는 곳에서 뚝 떨어진 곳, 낭떠러지를 앞둔 곳에 작은 규모의 방아와 맷돌이 있었다. 이것들은 돌탁자 위에 얹혀 있어, 우리는 그곳에서 잠시 쉬었다 가기로 했다. 신발을 벗고, 양말을 벗고 느긋하게 쉬고 있는데, 염소들이 나타났다. 이 염소들, 어찌나 겁이 많던지 우리를 보더니 놀라서 뒷걸음질을 치거나 몸을 돌려 오던 길을 되짚어 가려고 한다. 낯가림이 심한 염소들인가 보다.

이 녀석들이 그냥 오던 길을 다시 돌아가려고 했으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텐데, 그럴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당황한 염소무리들은 낭떠러지 옆에서 갈팡질팡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자칫 했다가는 뒤에서 앞의 상황을 모르고 꾸역꾸역 몰려오는 염소들 때문에 앞에 있던 녀석들이 낭떠러지로 떨어질 판이었다. 염소를 몰고 오던 남자가 염소들을 채근했지만, 겁을 집어 먹은 녀석들은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뒷걸음질을 치기만 했다.

이번에는 염소들을 구경하던 우리 일행이 당황했다.
어어어... 어어어... 이리와, 이 미련하고 겁 많은 염소들아. 떨어진단 말이야.

 

그 때였다. 우리 뒤쪽에 있는 집 앞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던 한 여자가 날카롭게 소리를 지르면서 우리더러 쉬고 있던 자리에서 비키라고 손짓을 한다. 우리가 있는 한 염소들이 마을 쪽으로 들어오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그제야 알아차렸다. 염소들을 위해서 우리가 그 자리에서 비켜주는 게 최선일 수밖에.

빨리 비켜!

누구는 배낭을 내팽개친 채로, 누구는 벗어둔 신발을 손으로 집은 채로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우리가 비켜나자 염소들은 안정을 찾았고, 천천히 집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다시 걷기 시작하니 길 위에 까만 콩알 같은 염소 똥이 제법 많이 흩어져 있는 것이 보인다. 염소뿐만 아니라 양들도 제법 많이 키운다는 것이 가이드의 설명이다. 마을을 지난 뒤부터 길이 좁아졌는데, 이 길은 예전에 양몰이꾼들이 다니던 길이란다. 가파른 절벽을 끼고 양몰이꾼들이 양을 몰고 목초지를 찾아 다녔는가 보다.

중국에서는 양고기 꼬치가 유명하지. 양몰이꾼들이 험한 산으로 양을 몰고 다니면서 키울 정도니 당연할 지도 모르겠다. 중국에 도착한 첫날, 호텔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신향 시내에 있는 양고기 꼬치구이를 파는 집에 갔다.

숯불에 양고기 꼬치를 비롯해 다양한 꼬치를 구워 판다는데, 우리는 중국 특유의 향신료를 넣지 않은 양고기 꼬치를 주문했다. 이 집, 생선찜도 판다고 했다. 꼬치구이를 먹으러 간 사람은 나와 가이드를 포함해 전부 다섯 명. 맥주 세 병과 양고기 꼬치구이 10개를 주문했다.

양고기 꼬치에는 고기 외에 기름덩이가 하나 꼭 들어가 있는데, 가이드는 그것을 버리지 말고 꼭 먹으라고 했다. 중국에 황사가 심해서 목구멍에 낀 먼지를 씻어내려면 양고기 기름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건 우리나라에서 삼겹살을 먹어야 한다는 이치와 비슷하군, 그래. 운전하는 사람들은 목구멍에 낀 매연을 씻어내려면 기름덩이가 붙어 있는 삼겹살을 먹어야 한다지, 아마도.

 


양고기 꼬치는 대여섯 개를 내가 먹었다. 주문은 해놓고 다들 인상을 찌푸리면서 맛조차 안 보려고 하는 게 아닌감. 그럴 거면 왜 먹으러 오자고 한 거여. 결국 내가 가장 많이 먹을 수밖에. 양고기는 약간 질겼고, 후추를 많이 뿌린 듯 후추의 매운 맛이 입 안에 오래 남았다. 하지만 먹을 만 했다. 저녁 식사를 하지 않았다면 더 많이 먹을 수 있었으리라.  

* 이 도보여행은 도보모임 <카미노 도보여행> 회원들과 함께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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