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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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엔 까미노

북경서역 앞에서 포옹한 남녀, 어떤 사이?

까미l노 2015. 2. 14. 12:06

북경서역(北京西驛)이었다. 우리는 신향으로 가는 고속열차를 탈 예정이었다. 역은 겉에서 보기에 규모가 엄청나게 컸다. 열차 시간이 넉넉하게 남아 역 앞에서 구경을 하겠다고 서 있는데, 한 쌍의 남녀가 눈길을 끌었다. 두 사람, 진하게 포옹을 하고 있었다. 어딜 가나 이런 남녀가 있기 마련이지.

내 눈길을 끈 건 남자의 팔과 손이었다. 여자는 남자를 필사적으로 끌어안았는데, 남자는 두 팔과 손을 엉거주춤한 자세로 내려놓고 있었던 것이다. 기차역 앞에 서 있는 남녀란 누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별을 앞둔 사람들이 분명할 터. 두 사람의 옆에는 당연히 짐꾸러미가 놓여 있었다. 한동안 포옹 자세를 유지하는 남녀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곁눈질로 힐끔거리고 있었다. 그건 우리 일행도 마찬가지.

한참 뒤 포옹을 푼 두 사람, 재미있는 장면을 연출하기 시작했다. 남자는 굳은 표정으로 여자에게 계속해서 말을 하고 있었는데,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남자가 여자의 포옹에 엉거주춤한 상태를 유지한 것이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무슨 일인가로 두 사람은 다퉜으리라. 흔하디흔한 사랑싸움이었을까? 여자는 남자를 사랑한다면서 끌어안았을 테고, 남자는 화가 풀리지 않아 여자를 마주 끌어안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밀어내지도 않았으리라.

두 사람이 무슨 말을 나눴는지는 모른다. 사람이 붐비는 역이기도 하거니와 중국어를 전혀 모르니 알 수가 있겠나. 이 남자, 말을 하는 동안 얼굴이 붉어졌다. 화가 점점 더 나는 걸까? 여자도 남자의 말에 대꾸를 하긴 하는데, 남자의 표정은 도통 풀릴 줄 모른다. 무슨 일로 남자는 화가 났을까? 대체 누가 떠나고 누가 남는 걸까?

나는 그들이 역 앞에서 이별하기 전에 역 안으로 들어가 그들이 화해를 했는지, 누가 떠나고 누가 남았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모습은 오래 기억에 남았고, 더불어 내 카메라 안에도 남았다.


 

북경서역 안 풍경

 

지난 4월 2일, 4박5일 일정으로 중국여행을 떠났다. 태항산을 트레킹하고, 만리장성 길을 걸을 예정이었다. 중국은 1994년, 고구려 유적지를 탐방하러 다녀왔다. 중국은 개방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동북아 공정 역시 시작하기 전이었으니, 지금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인천국제공항에서 9시 45분 비행기를 타고 출발, 북경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현지시간으로 10시 45분. 시간상으로는 한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북경이 서울보다 1시간 빠르니 2시간이 걸린 셈이다. 점심식사를 하고, 북경서역으로 이동, 신향으로 가는 고속열차를 탔다.

북경공항에서 북경서역까지 우리를 안내한 조선족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북경에서 신향까지의 거리는 600km 남짓이란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거리보다 길다는 얘긴데, 걸리는 시간은 4시간 20분정도. 오후 2시 30분에 출발한 열차가 신향에 6시 50분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했다.

 


열차는 가이드 없이 우리 일행만 타고 간다. 열차 안의 좌석까지 우리 일행을 안내한 가이드는 신신당부를 한다. 중국어로 신향을 신시앙이라고 하니 안내방송을 잘 듣고 신향역에서 잘 내리라고. 역에서 열차가 정차하는 시간은 1분간이니 그 시간을 놓치지 말라는 것이었다. 내려야 할 역에서 못 내리고 지나치게 되면 다음 역은 한 시간쯤 가야 있다나. 허걱, 중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는데, 만일 역을 지나친다면 우짠다냐?

중국 트레킹을 나선 우리 일행은 나를 포함해서 10명. 모두 도보모임 <카미노 카페>의 회원들이다. 남자 셋, 여자 일곱. 이 가운데 중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긴 뭐, 중국어 못한다고 중국 여행 못하는 거 아니니 걱정을 하거나 겁을 먹을 필요는 없지.

 


중국어 안내방송을 못 알아들어서 신향에서 못 내리면 어쩌지, 하는 걱정을 안고 열차에 올랐으나 잠시 후 그런 걱정은 사라졌다. 열차 안에 안내전광판이 있었던 것이다. 중국어 안내문에 이어 영어로 안내문이 뜬다. 안내방송 역시 중국어 외에 영어도 하더라. 그러니 역을 지나칠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

 

어두워지기 시작한 신향역


북경에도 아직 봄은 완전하게 오지 않았다. 열차가 달리는 벌판에는 메마른 가지를 벌린 나무들이 줄 지어 서 있어 황량하게 보였다. 한국에서는 황사 때문에 한동안 난리였는데, 외려 중국에 오니 황사가 보이지 않는다. 물론 마른 먼지바람이 날리기는 했지만 우려할 정도는 아니었다.

열차는 처음에는 100km대의 속도를 유지하더니 이내 200km가 넘는 속도로 달린다. 이 열차, 16대의 차량이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열차 안은 사람들로 붐볐고, 시끄러웠다. 중국 사람들, 말하기 시작하면 무지 시끄럽지 않나.

푸른 싹이 돋은 밀밭을 지나는데 밭 가운데나 옆에 흙무더기가 들어가 있다. 저게 대체 뭐지, 하면서 자세히 보니 흙무더기 앞에 비석이 세워져 있기도 하고, 상석이 놓여 있기도 하다. 멀리서 보니 비석 같기도 하고 상석 같기도 했을 뿐 확인하기는 어려웠다.

일행 두 사람이 그걸 보고 입씨름을 시작한다. 한 사람은 무덤이다, 다른 한 사람은 퇴비더미다. 비석이 세워져 있는 퇴비 더미도 있나? 무덤이 분명하다, 고 논쟁이 이어진다. 신향에 도착해서 조선족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무덤이 맞는단다. 예전에 만든 무덤으로 지금은 전부 화장을 한단다.

이번 여행길에 차량을 타고 이동하면서 장례를 치르는 광경을 두 번 보았다. 그걸 보고 우리 일행이 차를 세우라고 사진을 찍겠다고 하자, 가이드가 말도 안 된다는 듯이 웃었다. 장례를 치르는데 사진을 찍는다는 말입니까? 이렇게 반문하면서. 여행자에게는 장례가 구경거리일지 모르지만, 상을 치르는 이들에게는 의식일 테니, 결례라는 의미였으리라.

 

 

달리는 차 안에서 찍었다.


우리나라 여행을 다니면 어디에서든 공사 중인 현장과 마주치는데, 이건 중국도 예외가 아니었던 것 같다. 특히 아파트 건설 붐이 일었는지,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아파트에 대한 선호도가 중국에서도 상당히 높단다. 부동산 투기 바람이 거세기도 하고.

중국의 집값은 '장모님'이 죄다 올려놓는다는 게 가이드의 설명이었다. 장모님들이 사윗감에게 집이 없으면 딸을 주지 않는다고 유세(?)를 부려서 그렇다나 어쩐다나. 중국에서도 집 장만은 남자 몫이구나, 싶었다.

우리는 신향 역에서 제대로 내렸다. 안내방송도 알아들었고, 안내전광판도 제대로 확인을 했으니까. 내리는 사람들, 무지 많더라. 물론 타는 사람들도 무지 많고. 중국의 인구가 많다는 것을 이렇게 확인하나보다, 했다.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중국의 공식적인 인구는 14억이지만 15억이 넘어섰다고 추정한다고. 중국 정부의 한 자녀 낳기 정책 때문에 태어나서도 호적에 오르지 못한 아이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이다. 돈이 있는 집에서는 벌금을 물고 호적에 올리면 된다지만, 그렇지 못한 집에서는 아이들은 유령(?)이 될 수밖에 없는데, 그 수가 만만치 않단다. 호적에 오르지 못한 아이들은 학교에도 못 간다니, 살아 있으되 존재하지 않는 게 되는 건가? 

 

 

 

* 이 도보여행은 도보모임 <카미노 도보여행> 회원들과 함께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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