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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엔 까미노

태항산 트레킹 가이드는 방년 27세 꽃미남

까미l노 2015. 2. 14. 12:07

 난간이 없는 가파른 돌계단을 1시간 이상 올라가야 한다는 가이드 말을 듣고 처음부터 놀란 것은 아니었다. 산에 있는 계단에 난간이야 없을 수 있지, 그랬다. 한데 그 돌계단의 일부가 허물어져 위험할 지도 모른다, 는 단서가 붙자 상황이 달라졌다. 60~70도 경사의 돌계단에 난간이 없는 것도 위험할 지경인데, 그나마도 허물어진 구간이 있다면 위험은 배가 될 터. 거길 가야 한다고라? 왜 그래야 하는 건데?

우리가 태항산에 트레킹을 하러 왔지, 위험을 자초하러 온 건 아니지 않나. 의견이 분분해질 수밖에. 가이드가 뭔 소리를 들었는지 모르지만 우리 일행을 과대평가한 것이 틀림없었다. 하긴 뭐, 복장과 장비만 봐서는 히말라야가 아니라 에베레스트를 정복하고도 남을 것처럼 뵈긴 했으리라. 배낭에, 등산복에, 스틱에, 등산화까지 어느 것 하나 누구에게도 꿀릴 것이 없었으니까.

여러 말이 오가자 가이드가 말했다.


그럼 덜 위험한 곳으로 갑니다. 한 시간 정도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면 트레킹 하기 좋은 길이 나올 겁니다.

여행 둘째 날부터 본격적인 트레킹이 시작될 참이었다. 우리가 걸을 구간은 태항산의 구련산 종주코스와 왕망령에서 만선산에 이르는 트레킹 코스. 이틀 동안 걸을 예정이었다.

태항산은 중국의 하남성, 하북성, 산서성에 걸쳐 있는 거대한 산맥이라는 것이 조선족 가이드의 설명이었다. 이 산맥은 미국의 그랜드 캐니언과 흡사해 ‘중국의 그랜드 캐니언’이라고 불린다는 것이다. 그만큼 빼어난 경치를 자랑한다고 할 수 있겠다. 협곡이 깊은 만큼 천혜의 요새라고도 할 수 있단다. 외적의 침입을 잘 막아낼 수 있으니까.


아름답고 매력적인 산이지만 아직까지는 그리 널리 알려지지 않아서 이 산을 찾는 등산객이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앞으로 이곳을 찾은 이들의 입소문을 타고 찾는 이들이 점점 더 늘어날 것이 분명하다.

 

 

 

태항산에서 가장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곳이 바로 구련산. 아홉 개의 연꽃이 피어난 것처럼 아름답다 해서 구련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구련산의 구불구불한 길을 걸으면서 연꽃의 자태를 보지 못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빼어나면서 특이한 경치는 감탄사를 거듭 터져 나오게 만들었다.

7시 40분경 신시앙의 호텔을 출발한 소형버스는 2시간쯤 달려 구련산 입구에 도착했다. 구련산에는 등산코스도 있지만 유명한 관광지도 있어 입구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대부분 중국 사람들이었지만.

 


구련산 입구에서 십여 분쯤 차를 타고 달려 도착한 곳은 좁은 물줄기가 흘러내리는 작은 폭포 앞이었다. 난간이 없는 가파른 위험한 돌계단은 못 올라간다는 우리 일행의 반응에 가이드는 위험하지 않은 길로 코스를 변경했다면서 우리 일행을 안심시켰다.

길은 폭포 옆의 계단에서 시작되었다. 쇠 난간이 설치되어 있는 돌계단을 올려보니 노란 개나리가 핀 것이 보였다. 아, 여기에는 봄이 왔구나.

 


계단을 오르면서 산을 살펴보니 깎아지른 것 같은 절벽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산의 모양이 우리나라에서 보던 것들과 전혀 달랐다. 이국의 정취가 뚝뚝 묻어난다고나 할까. 돌계단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자연이 만든 것이 아닌 사람의 손길이 묻어난 흔적이 역력한 계단이었다. 누군가가 이곳에 와서 계단을 쌓아 다른 사람들이 발을 내딛을 수 있게 만든 것이었다.

한참을 걸어 올라가다 보니 무너진 길을 보수하러 나온 사람들이 있었다. 기둥을 세우고 철근을 심고, 바닥을 다지고... 이 사람들, 느닷없이 몰려든 등산복 차림의 우리 일행을 호기심이 어린 눈빛으로 살펴본다. 말이 통하면 이야기라도 나누련만 중국말을 할 줄 알아야지.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던가. 계단 길 중간이 철 계단으로 이어지는 구간이 있었다. 이 철 계단은 난간을 잡고 저벅저벅 걸어 올라가면 좋으련만, 그러지 못했다. 하필이면 이날, 난간에 페인트를 새로 칠했단다. 페인트가 마르지 않았으니 손으로 잡지 말고 그냥 올라가란다. 급경사의 철 계단을 손잡이를 잡지 않고 올라가는데, 그게 생각처럼 쉽지가 않더라는 얘기.

 

 

처음에는 별다른 생각 없이 발을 내딛었는데, 올라가다 보니 어째 현기증이 나는 것 같다. 발이 허방을 딛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저절로 손을 앞으로 내밀어 앞 계단을 잡게 된다. 처음에는 살짝, 나중에는 끌어안듯이 부여잡게 되더라. 급경사의 계단을 그렇게 올라가는데 어째 계단이 끝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거 대체 언제 계단이 끝나는 거야? 발을 헛디뎌 떨어질 것 같구만. 만일 떨어진다면 바위 사이로 툭 떨어지겠지. 으히히, 무서워라.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건 정해진 이치. 겨우 전망대에 도착했다. 돌아서서 올라온 계단을 내려다보니 올라올 때 잔뜩 겁을 먹었던 것이 우스울 정도로 위험해 뵈지 않는다. 난간을 잡지 않고 철 계단을 오르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페인트가 묻거나 말거나 그냥 손으로 난간을 잡고 올라왔더라면 쉬웠을 것을.

 


전망대에서 걸어 올라가야 할 계단을 보고 입이 떡 벌어졌다. 그 경사가 어찌나 가파르게 보이던지, 저 길을 우리가 가야 한다고? 저렇게 경사가 심한 계단을? 계단의 폭이 얼마나 되는지 내가 선 자리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80도 이상의 경사로 보인다. 발을 잘못 디디면 그대로 아래로 추락하는 건 아닐까? 게다가 길은 어찌나 길어 보이던지.

가이드는 전혀 위험하지 않다, 고 강조를 하지만 직접 가보기 전에는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 는 게 만고불변의 진리가 아니던가.

 


우리 일행의 태항산 트레킹을 안내한 가이드는 조선족이었다. 방년(?) 27세의 꽃다운 청년인데, 조선족 신세대였다. 머리는 노란색으로 염색을 했고, 귀에는 피어싱을 했는데 참으로 잘 어울렸다. 아직은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생기발랄한 청년이라고나 할까. 가이드 경력은 5년, 등산 가이드로 나선 것은 2년쯤 되었다고 했다.

 

꽃미남 가이드 홍영호씨. 실물이 훨씬 잘 생겼다.


그를 눈여겨 본 우리 일행 중의 한 사람이 가이드를 하지 말고 탤런트를 하라고 권하자, 이 청년 정색을 한다. 그 정도 인물이 안 된다는 거다.

볼 때는 가파르고 위험해 보였던 돌계단 길은 막상 걸으니 보기보다 위험하지 않았다. 계단은 가팔랐지만 돌난간이 튼튼하게 높이 쌓여 있었던 것이다. 위험하지 않다고 힘이 안 드는 건 아니니, 계단을 올라가면서 땡칠이처럼 혀를 빼어 물고 헉헉거렸다. 올라가서 걸어온 길을 돌아보니 까마득하게 보인다.

계단 옆으로 벚꽃이 피었다. 가는 가지에 촘촘히 피어난 분홍빛 꽃들. 벚꽃은 구련산을 걸으면서 많이 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처럼 한군데에 흐드러지게 피어난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조금씩 흩어져서 피어난 것이 인상적이었다.

계단이 끝나고, 흙으로 덮인 평지가 나타났다. 이제부터는 위험한 구간이나 힘든 구간이 전혀 없다, 는 게 가이드 청년의 설명이었다. 저 멀리 구련사가 보인다. 구련사 입구에 돌비석이 나란히 세워져 있기에 불경을 새겨놓은 유물인가 싶어서 카메라를 들이대고 찍었더니, 가이드가 말한다. 그거, 요즘 만들어 놓는 겁니다. 

 

 

* 이 도보여행은 도보모임 <카미노 도보여행> 회원들과 함께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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