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중국 만리장성/태항산을 걸어서 가다 본문

부엔 까미노

중국 만리장성/태항산을 걸어서 가다

까미l노 2015. 2. 14. 11:58
[중국 트레킹 10] 2010년 4월 5일

이리 보아도 성벽이요, 저리 보아도 성벽이다. 능선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지는 성벽은 도무지 길이를 가늠할 수 없다. 저 멀리 보이는 성벽이 여기서는 아주 가는 금으로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사람의 키를 훌쩍 넘는 높이인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길게, 그것도 이렇게 위험하기 짝이 없는 산 위에 성벽을 쌓다니, 사람의 능력은 대체 어디까지일까?

 


중국이 땅덩어리가 넓고 인구가 아무리 많다고 하지만, 6천km가 넘는 길이의 장성을 쌓을 수 있었다는 건 절대로 풀 수 없는 수수께끼인지도 모르겠다.

위험한 구간은 피하기도 하고, 지나치기도 하면서 성벽을 따라 걸었다. 예정은 8시간 내지 9시간쯤 걷는 것이었다. 걷는 시간이 문제가 아니었다. 깎아지른 절벽이나 다름없는 성벽을 기어오르다 보니 체력이 바닥이 나기도 했지만 마음도 지쳐 버렸다.

 


게다가 만리장성이라는 게 처음에 볼 땐 와, 대단하구만, 하면서 연방 감탄사를 쏟아내지만 하루 종일 보고 또 보게 된다면 성벽이 그게 그거지 뭐 별 거 있겠어, 하는 심정이 되고 만다. 성벽을 따라 걷고 또 걷다보니 만리장성을 볼만큼 봤다는 혹은 트레킹을 할 만큼 했다는 알 수 없는 자신감이 가슴을 치고 올라온다. 덧붙여 우리는 만리장성에서 가장 위험하다는 구간을 넘어오지 않았는가 말이다.

점심 도시락을 까먹고 서너 시간을 더 성벽 탐험을 한 뒤 우리는 하성(?)하기로 했다. 성벽에서 내려가는 것이지만 산에서 내려가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어차피 성벽은 산의 능선을 따라 이어지고 있었으니까 산등성이를 따라 올라간 만큼 내려와야 하지 않겠나.

 

 


마을로 내려가는 길로 접어들어 한 시간쯤 걸었을까? 중간에 포기한 일행 두 명과 함께 내려갔던 가이드 김영표씨가 우리를 향해 걸어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트레킹을 포기하고 내려갔던 일행은 조씨산장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우리를 마중하기 위해 산길을 따라 성벽 길로 올라왔던 것이다.

우리는 출발지인 조씨산장으로 돌아가 무사귀환(?)을 축하하면서 맥주를 마셨다. 트레킹을 마치고 마시는 맥주의 맛은 아주 각별했다. 맥주를 마시면서 우리의 무용담(?)을 과장되게 풀어놓는 것도 잊지 않았고.

만리장성 트레킹을 이렇게 끝났다. 원래 우리의 계획은 만리장성을 이틀간 트레킹 하는 것이었다. 첫날은 가장 위험한 구간을, 다음 날은 보다 가벼운 구간을 걸을 예정이었다. 허나 예정이란 늘 변하기 마련.

 

 

 

행 가운데에는 중국에 여러 번 온 사람도 있지만 중국이 처음인 사람들도 있었다. 중국에 처음 와서 그것도 북경까지 와서 자금성과 천안문 광장을 보지 않고 간다는 것이 서운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그래서 만리장성 트레킹은 하루만 하고, 마지막 날의 일정은 관광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나는 자금성과 천안문 광장은 오래전에 다녀갔지만, 한 번 더 그곳에 발걸음을 한다고 해서 나쁠 건 없었다. 태항산에서 이틀간, 만리장성에서 하루, 이렇게 사흘간 온몸을 내던져(?) 트레킹을 했더니 평소에 안 쓰던 근육들이 아우성을 치면서 통증을 호소하기도 했고. 온몸 근육을 골고루 단련시키는 데는 만리장성만큼 적당한 곳도 없으리라.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중국 사람들의 평생 소원 가운데 하나가 죽기 전에 자금성을 보는 것이라고 한다. 중국 전체 인구가 15억을 넘는다고 하는데 자금성을 본 중국인은 2억에 지나지 않는단다. 하긴 땅덩어리가 넓은 중국에서 자금성을 보려고 북경에 가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 싶다. 변방인 경우 몇 날 며칠을 기차를 타고 달려와야 하지 않겠나.

그래서인지 자금성은 사람들로 흘러넘치고 있었다. 관광가이드가 깃발을 높이 치켜들고, 관광객들은 그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광경, 쉽게 볼 수 있다. 외국인 관광객도 많지만 중국인들도 엄청나게 많다.

다음날인 4월 6일에 자금성과 천안문 광장을 둘러본 이야기는 풀지 않으련다. 그곳은 다녀온 사람들도 많고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었던 것도 아니니까. 자금성과 천안문 광장을 천천히 걸어서 둘러보면서 중국 역사의 길고 긴 영욕의 세월을 돌이켜 보았다는 감상만 덧붙이고 싶다.

 


황금색은 황제의 색이라고 했던가. 황제를 위해 지어진 황궁 자금성이 이제는 고궁박물관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중국의 역대 황제들을 반추하는 역할만을 하는 것을 보니 세월의 덧없음과 더불어 인생의 무상함도 느껴지더라.

그동안 중국 트레킹 여행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만리장성 트레킹을 마치로 샤브샤브를 먹으러 갔다. 반쪽은 매운 맛, 반쪽은 맵지 않은 맛.

 

샤브샤브에 넣는 국수를 즉석에서 만드는 식당의 여종업원.

 

만리장성을 함께 걸은 <카미노 카페> 회원들.

 

* 이 도보여행은 도보모임 <카미노 도보여행> 회원들과 함께 했습니다.

유혜준(해피올리브)여행기자의 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