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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두

까미l노 2015. 2. 6. 10:21

자두의 순우리말은 오얏이다. 오얏꽃(자두꽃)은 『삼국사기』와 『고려사』, 『조선왕조실록』에 복숭아꽃과 같이 등장하는 유서 깊은 꽃이다. 연산군 12년(1506) 3월 14일에 연산군이 어제시(御製詩)를 내리기를 “향긋한 복숭아와 오얏꽃이 봄 산을 곱게 물들였다”는 구절로 보아, 한양에 복숭아나무와 자두나무를 많이 심었음을 알 수 있다.

 


대한제국이 들어서면서 오얏꽃(자두꽃)은 대한제국을 대표하는 문장(紋章)으로 사용되었다.
대한제국의 인장이 찍혀진 칙서나 정부의 문서 등에는 태극기와 함께 자두꽃이 그려져있다. 또한 대한제국군의 모자나 견장의 무늬로도 쓰였다.

1884년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우편업무를 시작한 우정국은 1905년 통신권을 일본에 빼앗길 때까지 보통우표 54종을 발행했다. 대한제국의 문장인 오얏 문양이 주로 발행되었으므로 이화우표(李花郵票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대한제국시기 백동으로 만든 화폐에도 표면의 위쪽에는 오얏꽃, 오른쪽에는 오얏나무 가지, 왼쪽에는 무궁화 무늬를 새겨 넣었다

 

우리나라에서 재배하는 자두나무는 대부분 유럽종 자두로서 1920년대 이후 재배하였다. 자두는 생식할 뿐 아니라 잼·젤리의 원료, 통조림·과실주 등으로도 이용된다. 미국에서는 건과(乾果)로 이용하는 품종을 플럼이라고 하며, 마른 자두는 아침식사나 양과자의 장식으로 쓴다.
김천시 상징물제정위원회는 2009년 2월 12일 김천시의 시화를 진달래에서 자두꽃으로 변경하였다. 자두꽃이 시화로 선정된 이유는 이른 봄 강한 생명력으로 열매를 많이 맺는다 하여 다산, 순수 등의 꽃말을 가진 자두처럼 인구가 늘고 시의 왕성한 발전을 염원하고자 함이다. 


오얏나무(자두나무)는 『시경』에서 “주(周)나라에서는 매화와 오얏을 꽃나무의 으뜸으로 쳤다”고 하여 중국에서 귀하게 여기는 나무였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시기는 『삼국지』 위지 동이전의 부여조(夫餘條)에 복숭아, 오얏, 살구, 밤, 대추를 다섯 가지 과일로 기록한 것으로 보아, 이미 기원전2~1세기에 심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오얏꽃(자두꽃)은 『삼국사기』와 『고려사』, 『조선왕조실록』에 복숭아꽃과 같이 등장하는 유서 깊은 꽃이다. 오얏꽃(자두꽃)과 복숭아꽃은 이들 문헌에서 봄을 알려주는 상징으로 기록되어 있다. 연산군 12년(1506) 3월 14일에 연산군이 어제시(御製詩)를 내리기를 “향긋한 복숭아와 오얏꽃이 봄 산을 곱게 물들였다”는 구절로 보아, 한양에 복숭아나무와 자두나무를 많이 심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자두라는 이름은 복숭아를 닮은 열매의 색이 진한 보라색이므로 자도(紫桃)라 하다가, 이것이 변해 자두가 된 것이다.

옛날 노자(老子)의 어머니께서는 아이를 잉태한 채 오얏나무 밑에서 81년 동안이나 살다가 낳았다고 합니다. 아기는 너무 오래 오래 어머니 뱃속에 있었기 때문에 외형상으론 아기임이 분명하지만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말을 잘 함은 물론 모르는 것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자는 아기때부터 대철학자(大哲學者)라는 명칭이 붙었다 합니다. 한편 노자는 성(姓)을 이(李)가로 정했다고 합니다. 그건 위에서 언급했듯 오얏나무 아래에서 어머니가 오래 살았기 때문에 붙여진 것입니다.

이밖에도 오얏꽃에 대한 동양의 전설은 신선과 관계되는 것들이 많이 전해지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간신을 지칭하는 비유의 보조관념으로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꽃은 예쁜데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기만 하면 견디지 못하고 너무 쉽게 떨어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서양에서는 동양과 달리 불행과 관련 있으며 꽃말은 “곤란”으로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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