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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꽃 이야기 14

까미l노 2013. 3. 3. 14:16





산골짜기에 봄기운이 감돌기 시작하는 춘분(春分)을 지나면서부터 진달래는

우리나라 곳곳에 분홍꽃을 쏟아내는 낙엽관목이며 참꽃이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진 꽃으로

영어로는 Korean Rosebay 라고 한국장미로 표현된다.

어릴 적 입술이 파랗도록 참꽃을 따먹은 기억이 눈에 선한 진달래는 분홍색에서 풍기는 우리의 전통 사고와 맞아

선덕여왕 시절 아름다운 수로부인을 위해 노인이 진달래꽃을 꺽어 바쳤다는 헌화가(獻花歌)에서부터

삼월삼짇날 황진이 묘를 찾아 진달래 꽃차와 꽃전을 노래한 조선시대의 문인 임백호(林白胡)를 지나 소월의 시어(詩語)까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좋은 꽃이다.

자줏빛 바위 가에
잡은 암소 놓게 하시고,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을진댄
제 꽃 꺾어 바치오리다. <헌화가(獻花歌)>

시냇가 돌을 모아 솥뚜겅 걸고
흰가루 참기름에 진달래 꽃전 부쳐
젓가락 집어드니
가득한 한 해의 봄빛 향기
뱃속에 스며든다. <임백호>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소월>

진달래꽃은 이별에 인연이 많아 카수들의 노래에도 많이 등장하여 임창정에서 진시몬, 채정안을 지나 노바소닉 이라는 그룹,

그리고 마야라는 가수까지 진달래를 노래하니 연인들의 마음도 무척이나 자극시키나 보다
어디 그뿐인가요?
요사이 민주당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면 소월의 진달레꽃이 머릿글에 떡 올라있어 정치적으로도 의미심장한 시가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에 최대의 진달래 군락지라는 강화도 고려산을 비롯하여 삼대 진달래 명산에 속한다는

여수의 영취산, 창녕의 화왕산, 마산의 무학산이 아니라도 가까운 산 어디라도 진달래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음을 알 수 있다

진달래는 두견화, 참꽃, 홍두견 이라고 하기도하며 흰진달래, 털진달래, 왕진달래, 반들진달래, 산진달래, 한라진달래 등이 있고

청송의 주왕산에서는 수달래라고 부르는 한 맺힌 꽃도 있으며 한방에서는 꽃을 영산홍(迎山紅)이라는 약재로 해수, 기관지염, 두통에 효과가 있고

 이뇨, 건위 등에 처방하기도 하며 최근에는 콜레스톨의 몸속 흡수를 억제하여 성인병을 예방 치료하는 효과도 발표된 모양이다.

삼월 삼짓날에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진달래꽃 따다가 찹쌀가루 곱게 빻아 참기름에 지져 화전이라도 부쳐

향기 가득한 우전 한잔에 진달래 꽃잎을 띄우면 이게 바로 신선놀음 아닌가 싶다

 

 





나리는 백합(百合)을 우리말로 표현한 이름이다.
국어사전에서 나리의 낱말을 찾아보면 ①백합과, 백합속에 속하는 풀의 총칭 ②백합이라고 되어있다.
일반적으로 "나리"하면 자생나리만을 연상하고 "백합"은 흰나리를 말하는 것으로 잘못인식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 "백합(百合)"이라는 말은 옛날에 (나리를 약용, 식용으로 사용할 때) 약 1백개의 인편이
합쳐서 하나의 구근를 이루기 때문에 백합(百合)이라고 했다고 한다


"나리"라는 우리나라 고유의 이름 유래는 고려시대 " 견래리화(犬來理花)", "대각나리(大角那利)"라 하였고,
이조시대에는 "동의보감 산림경제(山林經濟) 제상신편(濟象新編)"등에 "개나리불휘"라 하였고, 물명고
(物名考)에서 "흰나리"는 향기로운 흰백합을 호칭하였다.


서양에서 말하는 백합의 속명 Lilium은 켈트語(keruto: 유럽인종의 하나)의 li(百)과 lium(花)에서 유래하며
이것은 유럽자생종 흰색의 "마돈나 나리"(Madonna lily)에서 전래하는 것 같다. 이상에서와 같이 나리는
국가와 언어권에 따라 다양하게 사용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최근에 "나리"라고 통일하여 사용하고
있다.

 

 






옛날 어느 부부가 쌍둥이를 낳았는데
두 딸이 너무 예뻐서
언니는 금화(金花), 동생은 은화(銀花)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금화와 은화는 우애 있고 착하게 잘 자라
어느덧 시집갈 나이가 되었지만,
서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고집을 피워
부모님이 몹시 걱정을 하셨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언니 금화가 열이 심하게 나면서
얼굴과 몸이 온통 붉게 되는 병에 걸려 의원을 급히 불렀지만
의원은 "이것은 열병으로 치료 약이 없습니다" 라는 말만 할 뿐
치료를 포기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결국 언니 금화는
동생 은화의 정성스러운 간호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며칠 뒤 동생 은화도 역시 언니와 같은 병을 앓다가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은화는 자신의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부모에게
"저희들은 비록 죽지만 죽어서라도
열병을 치료할 수 있는 약초가 되겠습니다"
라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1년 후 두 자매가 죽은 무덤에서
이름 모를 싹이 자라고 있었는데
그 꽃은 처음 필 때는 흰색이었다가
점점 노란색으로 변하는 것이었습니다.
얼마 후 바로 그 마을에
두 자매에게 걸렸던 것과 같은 열병이 돌았는데
그때 마을 사람들은 그 꽃을 달여먹고 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그 꽃을 언니 '금화(金花)'와
동생 '은화(銀花)'의 이름을 합해서
'금은화(金銀花)'라고 이름을 지어 불렀습니다.

 

 

 











C:\Documents and Settings\SEC\My Documents\뮤직박스Ennio Morricone- For Annette & Warren 영화 Love Affair OST

*꽃설명: 전국의 바닷가 모래땅에 나는 떨기나무. 바늘모양의 가시, 가시모양의 털, 높이는 1~1.5m, 꽃은 5~7월에 핀다.

*꽃이야기:

해당화가 여성들의 꽃이라하지만 꽃이 지고 열리는 열매만은 남자들의 몫이었답니다.

엄지손가락만하게 달리는 열매는 동백과는 달리 속이 텅 비어 씨앗을 파내면 훌륭한 호리병이 되었습니다.

 

남자들은 속씨앗을 파내고 곱게 다듬어서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입피리를 불었다고 합니다.

입술을 토끼처럼 오므리고 그 열매 구멍에다 대고 입바람을 불면 휘바람새 비슷한 묘한 소리가 난답니다.


그래서 남자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처녀들 집 앞에서 해당화 열매피리를 불며 처녀들에게 구애를 하였습니다.

그 소리는 사람이 부는 소리와 달라 어른들은 눈치채지 못하는데 처녀들은 신통하게도 알아듣고 나와 보았습니다...

그러다보니 해당화피리는 어린아이들보다는 혼기 찬 청년들의 놀이처럼 만들어 불게 되었답니다.

왜냐하면 어린아이들은 입바람이 약해서 불기 힘들었기때문이랍니다.

*꽃이름: 때찔레꽃(남쪽지방), 큰찔레꽃, 홍찔레꽃등으로 불리며

한방에서는 매괴, 매계(梅桂),해당과(海棠果), 헝매괴, 홍매화, 매괴화, 매괴유라고 부른다.

*쓰임새: 해당화 꽃잎은 향료나 색소로 이용하며,

꽃으로 술을 담근 해당화주는 백년손님에게나 내 놓을만큼 향기와 붉은색깔이 좋다.

 

 



원추리란 말은 중국명 훤초(萱草)라는 한자음이 변해서 우리말화 된 이름이다


훤초->원초-원추->원추리로 시간이 흘러가면서 발음하기 편한 우리 고유어로
변했다고 한다 원추리의 다른 이름은 의남초가 있다.

 

중국 주나라 풍토기에는
임신한 부인이 원추리를 몸에 지니고 다니면 아들낳는다 하여 의남초라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의남이란 아들을 많이 낳는부인을 가르키는 말이다

 

 한편
동양화를 보면 바위옆에서 원추리를 그린 그림이 더러 있는데 이런 그림의 의미는
생남장수를 그리는 부적과 같다고 생각 해볼수 있다.

 

원추리가 의남을 상징하고
바위가 십장생의 하나로 장수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런 그림은 보통 여자의
방에 거는 그림이라고 할수 있다

 

 









*꽃설명: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의 산에 무리지어 자라는 여러해살이풀.
높이 25~35 cm의 꽃줄기에 10여개의 꽃이 달리는 총상꽃차례, 개화 4~6월.

*꽃이야기
그리스에 힘세고 용감한 청년이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청년은 사냥을 갔다가 깊은 산 속에서 그만 길을 잃고 말았습니다.

한참동안 숲 속을 헤매던 청년은 갑자기 무시무시한 화룡(火龍)을 만나게 되었답니다.

 

화룡은 눈이 무척 크고 날카로웠으며 입에서는 불을 내뿜고 혓바닥은 붉은 용암같이 이글거리며 청년의 길을 막고 청년을 집어 삼킬듯 무섭게 노려 보았습니다.

청년은 용기를 내어 화룡의 기세에 질세라 화룡과 밤을 새워가며 혼신을 다해 싸웠습니다.

그러나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았으며 싸움이 시작된 날로 나흘이 되던 날 용이 잠시 지쳤을 때,

 

청년은 그 틈을 이용해 용의 급소를 찔러 용을 쓰러뜨리며 청년도 큰 부상을 입게 되었습니다.

청년의 몸에서는 피가 방울처럼 뚝뚝 떨어졌으며 그 떨어진 곳에 이름모를 꽃이 피어나기 시작하였답니다.

마치 용의 독을 정제라도 한 것처럼 깨끗한 하얀 방울꽃이 피어난 것 입니다.

이 꽃이 은방울꽃이며 작고 아름다운 이 꽃은 청년의 끈질긴 의지를 이어받은 듯 번식력이 강하답니다.

*꽃말
다시찾은 행복, 쾌락, 사랑의 꽃, 순애, 섬세함등의 꽃말이 있다.

*스웨덴과 핀란드의 국화(國花)이다.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5월 1일이 "은방울꽃의 날"로 지정하고 이 꽃을 선물하며 받은 사람은 행복이 온다고 한다.

 

프랑스에서는 '요정의 꽃',
'작은 요정의 계단', '천국에 이르는 계단'이라 한다.

*쓰임새
전초 또는 뿌리를 영란(鈴蘭)이라 하며
강심, 이뇨, 거풍등에 효능이 있어 심장쇠약, 부종, 타박상, 소변불리등에 사용한다.
서양에서는 향수의 원료로 쓰인다.

 

 





쑥부쟁이의 꽃말은 그리움, 기다림 인데 아래 전설을 읽어 보시면 그 이유를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옛날 어느 마을에 아주 가난한 대장장이가 살고 있었는데 그에게는 11남매나 되는 자녀들이 있었답니다.

이 때문에 그는 매우 열심히 일을 했지만 항상 먹고 살기도 어려운 처지였습니다.

이 대장장이의 큰딸은 쑥나물을 좋아하는 동생들을 위해 항상 들이나 산을 돌아다니며 쑥나물을 열심히 캐왔답니다.

그래서 동내 사람들은 그녀를 '쑥을 캐러 다니는 불쟁이네 딸' 이라는 뜻으로 쑥부쟁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쑥부쟁이는 산에 올라갔다가 몸에 상처를 입고 쫓기던 노루 한 마리를 숨겨주고 상처까지 치료해 주었답니다.

노루는 고마워하며 언젠가 은혜를 반드시 갚겠다는 말을 남기고 산속으로 사라졌지요.

그날 쑥부쟁이가 산 중턱쯤 내려왔을 때였습니다. 한 사냥꾼이 멧돼지를 잡는 함정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습니다.

쑥부쟁이가 치료해 준 노루를 쫓던 사냥꾼이었습니다.

쑥부쟁이가 목숨을 구해 준 사냥꾼은 자신이 서울 박재상의 아들이라고 말한 뒤,

이 다음 가을에 꼭 다시 찾아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쑥부쟁이는 그사냥꾼의 씩씩한 기상에 호감을 갖고 다시 그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부풀었습니다.

가을이 어서 오기만을 기다리며 열심히 일하였지요.

드디어 기다리던 가을이 돌아왔습니다. 쑥부쟁이는 사냥꾼과 만났던 산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올라 갔습니다.

그러나 사냥꾼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쑥부쟁이는 더욱 가슴이 탔습니다. 애타는 기다림 속에 가을이 몇 번이나 지나갔지만 끝내 사냥꾼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쑥부쟁이의 그리움은 갈수록 더 해 갔습니다.

그동안 쑥부쟁이에게는 두명의 동생이 더 생겼습니다. 게다가 어머니는 병을 얻어 자리에 눕게 되었습니다.

쑥부쟁이의 근심과 그리움은 나날이 쌓여만 갔습니다.

어느날 쑥부쟁이는 몸을 곱게 단장하고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흐르는 깨끗한 물 한 그릇을 정성스레 떠 놓고 산신령님께 기도를 드렸지요. 그러자 갑자기 몇 년 전에 목숨을 구해 준 노루가 나타났답니다.

노루는 쑥부쟁이에게 노란 구슬 세 개가 담긴 보라빛 주머니 하나를 건네 주며 말했습니다.

"이 구슬을 입에 물고 소원을 말하면 이루어질 것입니다."

말을 마친 노루는 곧 숲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쑥부쟁이는 우선 구슬 한 개를 입에 물고 소원을 말하였습니다.

"우리 어머니의 병을 낫게 해주십시오."

그러자 신기하게도 어머니의 병이 순식간에 완쾌 되었습니다.

그해 가을 쑥부쟁이는 다시 산에 올라가 사냥꾼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사냥꾼은 역시 오지 않았습니다.

기다림에 지친 쑥부쟁이는 노루가 준 주머니를 생각하고, 그 속에 있던 구슬 중 하나를 꺼내 입에 물고 소원을 빌었습니다.

그러자 바로 사냥꾼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그 사냥꾼은 이미 결혼을 하여 자식을 둘이나 둔 처지였습니다.

사냥꾼은 자신의 잘못을 빌며 쑥부쟁이에게 같이 살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쑥부쟁이는 마음 속으로 다짐했습니다.

'그에게는 착한 아내와 귀여운 아들이 있으니 그를 다시 돌려 보내야겠다.'

쑥부쟁이는 마지막 하나 남은 구슬을 입에 물고 가슴 아픈 소원을 말하였습니다.

그후에도 쑥부쟁이는 그 청년을 잊지 못하였습니다. 세월은 자꾸 흘러갔으나 쑥부쟁이는 결혼을 할 수 없었습니다.

다만 동생들을 보살피며 항상 산에 올라가 청년을 생각하면서 나물을 캤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쑥부쟁이는 산에서 발을 헛디뎌 그만 절벽 아래로 떨어져 죽고 말았습니다.

쑥부쟁이가 죽은 뒤 그 산의 등성이에는 더욱 많은 나물들이 무성하게 자라났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쑥부쟁이가 죽어서까지 동생들의 주린 배를 걱정하여 많은 나물이 돋아나게 한 것이라 믿었습니다.

 

연한 보라빛 꽃잎과 노란 꽃술은 쑥부쟁이가 살아서 지니고 다녔던 주머니 속의 구슬과 같은 색이며

꽃대의 긴 목 같은 부분은 아직도 옛 청년을 사랑하고 기다리는 쑥부쟁이의 기다림의 표시라고 전해집니다.

 이 때부터 사람들은 이 꽃을 쑥부쟁이 나물이라 불렀습니다

 

 





금강산에서 처음 발견되었고 꽃 모양이 청사초롱 같이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다.
보통은 1000미터 이상의 숲속에서 나뭇잎틈으로 간간히 들어오는 빛을 받으며 자란다.
강한 햇빛이나 더위에 약해서 늦여름에 꽃이 피었다가 미처 열매가 맺히지도 전에
서리를 맞아 죽는 경우도 많다.

이 꽃에도 얽힌 전설이 있는데 억지로 갖다 붙인듯한 조금은 통속적인 느낌이 든다
.....
금강산에 두 오누이가 살았는데, 부모를 여의어 어려서부터 힘들게 살았지만
형제간의 우애는 누구나 부러워 할만큼 사이가 좋았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날 누나가 아파서 눕게 되었다. 집이 가난한 그들에게 약을 산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남동생은 말로만 들었던 약초를 찾아 금강산을 헤매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꽃들이 남동생에게 속삭였다. 그 약초를 구하기 위해서는
달나라까지 가야한다고. 남동생은 누나를 살리기 위해 달나라까지 갔다.


한편 집에서 남동생을 기다리던 누나는 아무리 기다려도 동생이 돌아오지 않자
동생을 찾아 초롱불을 들고 늦은밤 집을 나섰다.

 

몸이 좋지 않았던 누나는 얼마
걷지도 못해 금강산 한 구석에서 죽고 말았다. 그 누나가 들고 있던 초롱불이
금강초롱꽃이 되었다고 한다

 

 





옛날 어느 깊고 외진 산골에서 할머니가 두 손녀를 데리고 살고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가난했지만 부지런히 일을 하며 어렵게 두 손녀를 키웠습니다.


큰손녀는 얼굴이 예쁜 처녀였지만 마음씨는 고약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그런데 작은손녀는 별로 예쁜 얼굴은 아니었지만 마음 씀씀이가 곱고 착했습니다.


 "언니. 할머니께서 힘들어하시니 저녁밥은 우리들이 짓도록 합시다."
"어른이 계시는데 왜 네가 설치니? 괜히 너 혼자 잘난 척하지 마!"
할머니는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큰손녀를 걱정했습니다.


 "에그, 저렇게 속이 좁은 것이 어떻게 시집을 가려는지, 원!"
어느덧 큰손녀와 작은손녀는 나이가 차서 시집갈 때가 되었습니다.
할머니는 손녀들을 불러 놓고 말씀하셨습니다.


  "얘들아, 이제 너희도 나이가 찼으니 좋은 데가 있으면 얼른 시집을 가야지."
큰 손녀는 '네, 할머니!'하고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작은손녀의 대답은 달랐습니다.
"아니에요, 할머니. 전 시집가지 않고 할머니를 모시고 오래오래 살겠어요."
할머니는 작은손녀의 말을 듣고는 가슴이 찡해졌습니다.
"얘야, 네 말은 고맙다만 누구나 나이가 차면 시집을 가야 한단다."


그러던 어느 날입니다. 이웃 동네의 부잣집에서 중매쟁이가 할머니를 찾아왔습니다.
"누추한 집에 무슨 일로 오셨수?"
"저, 이웃 마을의 김 부자 댁에서 이 집에 예쁜 처녀가 둘씩이나 있다기에 선을 보러 왔지요."
그 때 큰손녀가 쪼르르 뛰어나왔습니다.
할머니는 중매쟁이에게 큰손녀를 소개했습니다.


  "이 애가 제 큰손녀입니다."
중매쟁이는 큰손녀의 예쁜 미모에 홀딱 반해 버렸습니다.
큰손녀는 김 부자 댁에 시집을 갔고, 작은손녀는 먼데 사는 성실한 산지기에게 시집을 갔습니다.
작은손녀는 시집가던 날, 몇 번이고 돌아다보며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할머니, 몸 건강히 계세요."
세월이 흘러 손녀들을 시집 보낸 지도 몇 년쯤 되었을 때
할머니는 홀로 쓸쓸한 마음을 달래면서 지내고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이제 너무 늙고 병까지 들어 도저히 혼자서 살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들에게 찾아가 이 늙은 할미를 보살펴 달라고 해 봐야겠다."
이렇게 생각한 할머니는 아픈 몸을 이끌고 이웃 동네의 큰손녀를 찾아갔습니다.
"여보세요, 여기가 이웃 마을에서 예쁜 색시를 며느리로 맞아 온 부잣집이지요? 저는 그 애의 할미가 되는 사람입니다."


조금 있으려니까 화려한 비단옷에 금목걸이를 하고 금팔찌를 찬 큰손녀가 나왔습니다.
큰손녀는 할머니를 반갑게 맞아 주었습니다. 그러나, 일주일이 지나고 보름이 지나자
할머니가 자기에게 얹혀 살러 온 것을 알고는 푸대접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큰손녀는 할머니만 보면 짜증을 내곤 했습니다.
할머니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추운 겨울날, 할머니는 큰손녀 몰래 집을 빠져 나왔습니다.
눈앞에는 할머니를 모시고 오래 오래 살겠다고 하던 작은손녀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작은손녀의 집은 높은 산 꼭대기에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언덕을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가까스로 고개를 올라가고 있는데 찬바람이 쌩쌩 불어 왔습니다.


춥고 숨이 차서 할머니는 한 발짝도 더 걸을 수가 없었습니다.
조금만 더 가면 되는데 할머니는 그만 고갯마루에서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작은손녀의 이름을 부르면서 할머니는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작은손녀는 할머니 생각이 날 때면 언덕쪽으로 내려오곤 했습니다.


왜냐 하면 그 곳에서는 할머니가 계시는 곳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슬슬 집을 나섰던 작은손녀는 거기서 할머니의 시체를 발견했습니다.
"어머나! 할, 할머니 아니세요!"


작은손녀는 엉엉 울면서 시체를 양지바른 곳에 묻었습니다.
다음 해 봄, 그 무덤에서는 '할미꽃' 한 송이가 마치 사랑하는 손녀들을 보내고 나서
늙고 병들어 힘없이 살던 할머니의 모습처럼 피어났습니다

 

 





산을 오르면서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야생화와 달리 산속 그늘진 곳에서는 사뭇 달라 보이는 녀석들이 눈에 띄곤한다.

뜨거운 열기가 기승을 부릴 즈음
산속 그늘진 바위 이끼틈 사이에서 분홍색 꽃을 피운 병아리난초를 만나는 일은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대부분의 난초과 식물들은 여름에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는데 그중에 하나가 바로 ‘병아리난초’이다.
우리나라에는 약 100여종의 난초과 식물들이 자생하고 있는데 대부분은 제주도 및 남해의 섬과 백두산을 중심으로 자생하고 있으며

병아리난초와 같이 몇몇 종들은 내륙지방에서도 볼 수 있는 것들이 꽤 있다.

MONO가 살고 있는 파주에서 발견한 난초과 식물들은 옥잠난초, 병아리난초, 산제비란, 은대난초, 천마 정도이다.

병아리난초는 바위난초라고도 하며 산지 습한 이끼 낀 바위틈에서 자라고 그 크기가 매우 작아 병아리라는 이름이 붙여졌으며

 잎사귀는 1개이며 줄기는 높이 8-20cm정도로 꽃은 총상화서로 4cm정도로 줄기 아래쪽에서부터 피어나기 시작한다. 


  일반적으로 6월초부터 8월초까지 볼 수 있으나 우리 파주에서는 7월초에 병아리난초의 꽃을 볼 수 있다.



난과 식물중에 닭의난초도 있다. 병아리난초보다 비슷한 시기에 꽃을 피우지만 자라는 습성이 달라

닭과 병아리가 같은 곳에서 꽃을 피우지 못하고 생김새도 많이 다르다. 닭의난초와 병아리난초가 함께 자라는 모습은 어떠할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매화는 봄을 알리는 꽃이다. 하지만 매화가 봄에만 피는 것이 아니라

봄, 여름, 가을에 매화라는 이름이 들어간 꽃이 만발하여 우리에게 자연의 신비로움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그만큼 매화라는 꽃이 우리에게 친숙하고 아름답기 때문에 많은 꽃 이름에 붙여졌을 것이다.

매화마름, 매화노루발풀, 매화말발도리, 금매화, 물매화, 황매화, 홍매화 등등....

그중에 금매화와 큰금매화는 꽃색깔이 유난히 노랗고 황금색을 띄기에 금매화라 불리우고 북부 고산지역에서나 볼 수 있는 소중한 우리꽃이다.

우리 민족의 영산 백두산은 지난해 5월말에도 폭설이 내려 6월말까지 천지 주변에서는 눈이 널려있었다.

하지만 그 추운 백두산에도 여름은 찾아 온다.

한여름 7월부터 금매화는 천지주변에 노랑 융단을 깔아 놓은 듯 그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꽃잎과 꽃술이 모두 노란색이며 꽃의 크기는 3cm~4cm로 다른 꽃보다 큰 편이다.

유난히 다른 꽃보다 노랗고 꽃의 크기가 크기 때문에 군락을 이룬 모습은 가히 장관이 아닐수 없다.

금매화는 주로 군락을 이루고 피는데 반하여 큰금매화는 몇몇 개체끼리 모여서 피어나는데

큰금매화의 길쭉한 수술처럼 생긴 것이 꽃잎이며 그 자태가 너무나 아름다워 큰금매화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

무엇보다 금매화와 다른 점은 키가 훨씬 크고 꽃잎이 길게 하늘로 뻗어있다는 것이다.

한자로는 장판금련화(꽃잎이 긴 연처럼 아름다운 황금색의 꽃)라고 하며 역시 북쪽에서나 볼 수 있는 꽃이다.

금매화의 꽃말은 ‘꿈 많은 소녀’이다. 황금색은 사람들에게 많은 희망을 안겨 주는 색임에 틀림없는 듯 싶다.

하지만 아쉽게도 금매화나 큰금매화는 우리 남쪽에서는 볼 수 없다. 북쪽 백두산이나 낭림산 고산지원에만 자라기 때문이다.

그 아름다운 자태를 하루 빨리 우리 땅을 밟아서 볼 수 있는 그 날을 희망해본다.

 

--인디카 사진 동호회 회원들의 사진과 식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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