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나무와 꽃 싱아 이야기 본문
(뱀딸기는 4월부터 10월 말까지 오랫동안 꽃을 피운다. 2010. 10. 17. 전북 고창에서)
어릴 적에는 뱀딸기를 자주 따먹곤 했었다.
그 때의 맛은 달작지근한 추억으로 남아있는데,
요즘 먹어보면 달지도 않고 밋밋하기만 하다.
이놈의 혀가 오십 년 동안 온갖 단맛 쓴맛 다 보면서
감각이 무디어지고 사치스러워진 탓이리라.
‘뱀딸기’는 뱀이 먹는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지만,
뱀이 이 열매를 먹는 것을 실제로 보지는 못했다.
중국 이름과 한약재명은 사매(蛇梅), 즉 ' 뱀매화'이고,
열매의 즙이 뱀이나 벌레에 물린 데 약이 된다고 한다.
뱀딸기는 뱀이 다닐만한 논둑이나 풀밭에 살면서
뱀처럼 땅을 기는 줄기를 뻗어가면서 자라니
이 풀은 '뱀딸기'라는 이름이 딱 어울린다.
게다가 뱀이 겨울잠을 자고 나오는 봄에 꽃을 피우기 시작해서
땅속으로 들어가는 가을까지 오랫동안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다.
정말 뱀처럼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주는 식물이다.
뱀딸기의 개화 기간은 쥘 르나르(Jules Renard, 1864~1910)의
뱀이라는 시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뱀 / 너무 길다.
세상에서 ‘제일 짧다’는 이 시는 ‘너무 길다’이다.
뱀의 유혹으로 선악과를 먹은 후 시작된 인간의 죄가
뱀처럼 길게 수만 년을 이어지고 있다는 메시지일까.
나의 죄도 뱀딸기를 따먹었을 때 시작되었는 지 모른다.
먹으면 배탈이 난다는 금단의 열매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몽글 몽글 먹음직한 빨간 사탕 같은 열매는
먹을 것 없었던 산골 아이에게 참기 힘든 유혹이었었다.
서너 살 쬐끄만 입술에 빨간 물을 묻히고서도
안 먹은척 고개를 잘래잘래 흔들었을 것이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꿈 같은 날들이다.
이상 -- 위도상사화
이상 -- 백양꽃
해녀콩
Canavalia lineata (Thunb.) DC.
콩과 해녀콩속의 덩굴성 여러해살이풀. 바닷가 모래땅에 자람.
꽃은 25~30mm. 열매는 긴 타원형으로 납작하며 길이 5~6cm.
6~8월 개화. 제주도 해안, 일본, 타이완 등지에 분포.
* 제주도의 해녀콩은 열대, 난대에 자라는 해녀콩의 열매가
바닷물에 떠내려 와서 자라는 것으로 알려짐.
(토끼섬의 해녀콩)
비로용담[毘盧龍膽]
Gentiana jamesii Hemsl.
용담과 용담속의 여러해살이풀. 높은 산의 풀밭에 자람.
높이 5∼12cm. 꽃의 길이 2.5∼3cm. 7~8월 개화.
뿌리는 약용, 어린 순과 잎을 식용. 북한에서는 천연기념물로 지정.
한국(강원도 이북)·일본 등지에 분포.
[이명] 비로과남풀, 비로봉용담, 백산용담
2012.7.보현산
2012.7.보현산
2012.7.보현산
2012.7.보현산
2012.8.5. 강화도
지금은 타계하고 없지만 소설로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분이 계셨는데 그 분이 박완서님이시다.
그 분이 쓴 글 중에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여기에 나오는 싱아가 바로 이 식물이다.
싱아라는 식물의 어떤 점을 작가가 알고 언급했는지 그것이 알고 싶어서 책을 첨부터 끝까지 정독해 보았다.
본인이 어린 시절에는 싱아라는 식물 자체를 몰랐다.
야생화 공부를 하면서 싱아 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소설의 주인공인 저자에 대해서도 쬐끔 탐구해 보았다.
1931년에 태어나 늦은 나이인 1970년 39세 때 소설 '나목(裸木)'이 여성동아에 당선되면서
타계하기 1년 전인 2010년까지 주로 소설을 위주로 수없이 많은 글을 썼으며
그 중에 자신의 어릴 적 성장 과정을 소설속에 담아 놓은 글이 바로 이 '싱아'가 들어간 소설이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의 줄거리는 책을 읽어 보신 분들은 대충 알 터이니 생략하고
여기서는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라는 구절이 나오는 부분만 옮겨 적어 본다.
[아카시아꽃도 첨 보는 꽃이려니와 서울 아이들도 자연에서 곧장 먹을 걸 취한다는 걸 알게 된 것도 그 꽃을 통해서 였다.
잘 먹는 아이는 송이째 들고 포도송이에서 포도을 따 먹듯이 차례 차례 맛있게 먹어 들어 갔다.
나도 누가 볼세라 몰래 그 꽃을 한 송이 먹어 보았더니 비릿하고 들척지근했다.
그리고는 헛구역질이 났다. 무언가로 입가심을 해야 들 뜬 비위가 가라앉을 것 같았다.
나는 불현듯 싱아가 생각났다. 우리 시골에선 싱아도 달개비만큼이나 흔한 풀이였다.
산기슭이나 길가 아무데나 있었다. 그 줄기에는 마디가 있고, 찔레꽃 필 무렵 줄기가 가장 살이 오르고 연했다.
발그스름한 줄기를 꺽어서 겉껍질을 길이로 벗겨 내고 속살을 먹으면 새콤달콤했다.
입안에 군침이 돌게 신맛이, 아카시아꽃으로 상한 비위를 가라앉히는 데는 그만일 것 같았다.
나는 마치 상처난 몸에 붙일 약초를 찿는 짐승처럼 조급하고도 간절하게 산 속을 찿아 헤맸지만 싱아는 한 포기도 없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나는 하늘이 노래질 때까지 헛구역질을 하느라 그곳과 우리 고향 뒷동산을 헷갈리고 있었다.]
당시 박완서님은 어릴적 고향 뒷산에만 올라가면 흔하게 만날 수 있었던 식물이 싱아였고,
그 싱아는 신맛이 나는 식물이라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아카시아, 싱아, 달개비, 찔레 등 4종의 식물이 등장한다.
달개비는 닭의장풀을 의미하는 것이니, 이곳 포항에도 싱아를 제외한 3종은 흔히 볼 수 있는 식물인데
싱아는 내가 어릴적에는 진짜로 알지 못했던 식물이였다.
아카시아 꽃을 한 입 먹었는데 비위에 맞지 않아 헛구역질을 해 댓는데 이것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이
그 신맛이나는 싱아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곳엔 싱아는 하나도 없었다.
그곳은 지금은 이북땅인 고향 개풍군 청교면 덕적골이 아니고 서울이였던 것이였다.
박완서님은 싱아를 통해서 어린 시절의 고향을 회상했고,
고향을 생각하면 싱아를 떠 올릴 정도로 뇌리 깊숙히 인지된 식물이였음을 알 수 있다.
최근에 강화도에 갈 일이 있어 지금은 북한 땅인 개풍군과 가장 가까운 강화도에는 싱아가 없을까 생각하면서 강화도 야산을 돌아 보았다.
야산 도로가에 지천으로 피어 있는 것이 싱아였다. 개풍군과 강화도는 바다로 갈리워진 땅이지만
강화도에도 이 싱아가 많이 자생한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우연한 기회에 2010년 7월 어느 날 보현산을 탐사하는데 평소 보지 못했던 식물 하나가 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것도 특정지역에 군락으로 자생하고 있었는데 평상시 보고 싶었던 그 싱아 같았다.
사진을 정성들여 찍어 집에 와서 확인해 보니 싱아였다. 보고싶다는 간절함을 가지니 우연한 기회에
그 싱아는 나에게 다가와 아름다운 꽃이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2011년과 2012년에도 현장에 가서 이 식물을 보고 왔었다.
그런데 첫해에는 상당히 많은 개체가 군락으로 형성되어 있었는데 올해(2012)는 현장에 가 보니 개체수가 많이 줄어 있었다.
등산길 모퉁이의 한 지점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개체수가 줄어들 수 밖에 없을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엔 자옥한 안개와 더불어 분위기가 좀 되었는데 워낙에 사진 담기가 까다로운 식물이라 잘 찍어 놔도 폼이 나지 않는 식물임은 확실하다.
고산 지대의 자옥한 안개 그리고 구름과 함께하니 신선이 따로 없다.
이 싱아는 마디풀과 식물로 키가 큰 것은 1m도 훌쩍 넘는다.
마디가 있는 곳마다 가지를 치면서 자라고 마디에서 잎도 피어난다.
꽃은 보는 것처럼 원추화서를 이루며 자잘한 흰꽃이 많이도 피어난다.
5장의 꽃잎처럼 보이는 것은 꽃받침이고 꽃잎은 퇴화되고 없다. '싱아' 이름도 정겹다.
정겨운 이름이 이 소설속의 식물 부분 주인공이 되는데 한 몫 하지 않았을까 싶다.
님은 가고 없지만 덕적골 뒷산의 싱아는 해마다 7월이 오면 뜨거운 햇살아래 싱그럽게 피어나 가신 님을 그리워 할 것이다.
털복주머니란
Cypripedium guttatum var.koreanum Nakai
난초과 복주머니란속의 여러해살이풀. 높이 30cm 정도.
잎술 꽃잎은 흰색에 자주색 반점이 있고 줄기에 털이 많음.
6~7월에 개화. 한국(강원도 이북), 중국, 러시아, 유럽에 분포.
다른 이름은 애기자낭화, 털개불알꽃.
야생화를 즐겨 찾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돈을 써가며
백두산에 가는 이유가 나름대로 있을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간에 그 바탕에는 백두산과 만주 일대가
언젠가는 다시 우리 땅이 되리라는 염원이 깔려 있는 듯하다.
지금은 갈 수 없는 북한 쪽의 백두산에 있을 만한 풀을
그곳에서라도 보고 싶어서 가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우리나라에서는 멸종위기에 있거나
희귀한 식물들을 실컷 볼 수 있기 때문에 가는 것 같다.
털개불알꽃(국명: 털복주머니란)이 바로 그런 식물이다.
남한에서는 희귀한 이 꽃을 백두산 일대에서는 쉽게 볼 수 있고,
다른 개불알꽃 종류도 흔한 들꽃처럼 풍성하게 만날 수 있다.
나도 그 유혹에 못 이겨 두어번 백두산 일대를 탐사했었는데
한 자리에서 열 가지가 넘는 개불알꽃의 변종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충격적이고 가슴 아픈 이야기를 들었다.
한 조선족 택시기사가 '지금 조선족이 위기'라면서 하는 말이
1992년, 한중수교 이후에 조선족 여성들이 돈을 벌려고
한국으로 몰려가면서 문제가 심각해졌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에 들어와 있는 조선족이 50만 명이 넘는다.
문제는 이들 대다수가 젊은 여성과 가정주부들이라는 점이다.
원래 중국 땅에 200만 정도의 조선족이 살고 있었다고 하니,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지금 중국내에는 150만의 조선족이 있고
그 중 100만 정도가 남자, 50만 정도는 할머니와 여자아이들이다.
이런 인구 구조라면 조선족은 지금 당장 대가 끊기는 상황이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요즈음 중국에서 조선족 처녀를 찾기 힘들뿐더러
주부들 까지도 한국에 눌러앉아서 무너진 가정이 부지기수라고 한다.
이런 상황은 한민족의 장래를 위해서 심각하게 고민해야할 문제다.
민족정기가 살아있는 나라라면 어떻게 이런 문제를 방관할 수 있단 말인가.
그곳에서는 개불알꽃이 멸종위기종이 아니라 조선족이 멸족위기족이다.
백두산족이라고도 불리는 조선족이 백두산에서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다.
‘개불알꽃’의 우리나라 표준 식물명은 ‘복주머니란’이다.
이 이야기를 쓰면서 표준식물명을 쓰지 않은 까닭이 있다.
겨레의 장래를 걱정해야할 사람들이 혈세를 받아먹으면서
밥그릇 싸움이나 하고 있으니 이 꽃 이름이 입에 맴도는 것이다.
'이런 (복주머니?란)만도 못한 위인들 같으니라고...'
출처 : 인디카 사진 동호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