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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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반데룽

신선놀음 아니어도 도끼자루는 썩는다

까미l노 2012. 9. 26. 00:50

 

 

시간이 그야말로 물 흐르듯 지나간다.

일,노동, 노동자,근로자 라고 하는 표현은 대한민국에서 사용 여하에 따라

다소 어감이나 적용하는 직종이 달라지기도 하는데

더러 블루칼라 같은 현장 근무자라거나 그런 느낌을 주기도 하는

어쩌면 하위직 근로자를 지칭하는 경우가 많지 않나 시푸다.

 

근로자라는 표현은 요즘엔 많이 나아져서(?)사무직에도 이 표현을 사용하기는 한다만...

 

급여를 받는 사람들이라면 다 근로자일텐데

의사,교수,판검사 등의 직업도 근로자라는 표현을 하는지...

 

이즈음의 세상은 도시생활을 벗어날려고 하는 사람들

즉, 귀촌이나 귀농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는데 나는 그럼 귀촌이거나 귀농에 성공한 범주에 속해야 하는 것일까...

 

시골(?)인 제주도에 와서 흙을 만지며 살고 있으니 순수(?)노동을 하는 노동자이고

귀농까지는 아니지만 귀촌을 하였고 열대식물을 연구하는 곳이긴 하지만

내친 욕심인지라 상추며 배추 무 콜라비며 브로컬리 쑥갓 같은 채소도

심었으니 귀농도 해당 될려나,

 

흙에 파묻혀 살다보니 배 고프기 전이나 해 넘어갈 무렵이 아니면 시계를 볼 일도 없고

요일이 딱히 중요치 않으니 날짜개념도 희미해져서 문득 뒤돌아보면 한 주일이 후딱 지나버렸음을 실감하곤 한다.

 

호미로 흙을 한줌 뒤집으면 온갖 벌레들이 꿈틀거린다.

아니, 꿈틀거린다는 정도가 아니라 지들 딴에는 일대 혼란이 일어났을 것이다.

지렁이 지네 굼벵이류 돼지벌레 집게벌레 땅강아지 등등 무수히 많은 각종 벌레들이 놀라 도망치느라 난리 법석이다.

 

나처럼 도시생활에서조차 까탈스럽던 인간이 흙밭에서 일꾼 흉내를 낼려나 참 어렵다.

매일 새 목장갑을 끼고 싶고 바닥이 깨끗한 장화를 신고 싶은데 그게 영 여의치가 않다.

 

손바닥면이 빨간 페인트가 칠해진 투박한 목장갑은 잠시만에 흙투성이가 되어 장갑 속 손톱 아래에 흙이 끼이고

아무리 조심을 하여도 장화 속으로 들어가는 흙으로 인해 저녁에 양말을 벗으면 발가락과 뒤꿈치 부분은 닳아서 구멍이 나고

발톱 속과 발바닥은 아프리카 토인 발처럼 새카매져 있다...

 

농사일까지는 아니라도 흙일을 하는 사람이 손발톱 걱정은 무슨 사치일 것이며 매일 새장갑이라니

갈 길이 그다지 먼 것은 아니지만 아직 멀어도 한참 멀기는 한 것 같다.

 

옛 말로도 수 없이 들어봤던 말

흙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던...

농사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흙이 진실하다는 것을 믿지 않거나 모르는 사람 있을까만,

제 몸뚱아리 한 팔 뚝 잘라 옆 땅바닥에 그냥 꽂기만 하면 금 새 새 잎이 돋아 나오고 잔뿌리를 내리는 녀석들이 있는데

이것들이야말로 거짓이 전혀 없는 흙 속의 자연이 아닐까 싶다.

 

반대로 온갖 정성을 쏟아도 건드렸다 하면 비실거리거나 금방 시들어버리는

성질 고약한 나 같은 까탈스런 놈들도 있다.

 

최근엔 지극히 정성을 드려 잘 보이고 싶은 대상이 생겼는데

바로 감자와 상추를 파종했는데 소위 말하는 마대자루에 감자씨를 담아 흙으로 채워 두면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자루에 뚫어둔 구멍 속으로 싹이 올라오기 시작하고 자루 속에  감자가 주렁주렁 열린다는 사실이다.

 

문제는 이놈의 감자는 아름다울(^^)정도로 싹이 쑥쑥 잘 올라 오는데

상추란 녀석들이 미동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도 자주 주고 애지중지 보살피며 이제나 저제나 싹이 트이길 학수고대 하고 있는데

5일이 지났는데도 꿈쩍도 않는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하늘 한 번 보여줬다고 사흘만에 자식타령하는 애비 꼴이다.

 

잘 보이고 싶은 대상이 생겼는데 그 대상은 전혀 반응이 없다.

뭐가 잘못된 것인지 아직은 전혀 알 길이 없어 답답하다.

 

사람과 사람의 사이도 마찬가지일테고

특히나 이성간이라면 더 그럴테지,

 

나도 잘 보이고 싶은 사람 있는 게 좋다는 편이다만

잘 보이고 싶다는 것은 잘해 주고 싶은 대상을 뜻한다만

잘해 준다는 것이 무엇 무엇이다라고 딱히 구분 짓기가 뭣하긴 하다만...

 

창 밖 서귀포 바다 위로 조금씩 둥그레져 가는 달이 떠 올랐다.

지금 살고 있는 이 집이 참 마음에 차 퇴근하면 부리나케 집으로 온다.

 

서울에서 살 때엔 불 꺼진 집으로 들어가기 싫어

밤 늦은 시간까지 천변을 걷다가 들어가곤 했었는데 

서귀포에서는 기다려주는 사람이 없어도 불이 꺼져 있어 컴컴한 곳이어도 곧장 집으로 직행한다.

 

한 잔 술을 즐길줄도 그럴싸한 찻집에서 혼자 고급 커피 음미할 위인도 못되기에 

그냥 멍청하게 밤바다를 내려다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좋아서다.

 

저녁 해 기울 때 오른 쪽 싱크대 창으로는 노을이 물드는 산방산과 송악산 군산이 보인다.

그래서 설거지를 하면서 창밖을 바라보는 맛도 썩 괜치만은 않다...

 

집을 나서도 들어서도 딱 행복하다.

그래서 이젠 뭐든 다 괜찮아진다.

 

잘해줄 사람 잘 보이고 싶은 여자 없어도 그럭저럭은 참아진다.

그렇다고 오래 오래 살고 싶다거나 지금 죽는다고 해도 애 닯다 할 것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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