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5월 강동우 성의학연구소가 대한민국 성인 남녀 1246명을 대상으로
'한국인의 성생활 및 성의식 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88.8%가 '성생활이 인간 관계에 중요하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 628명 중 580명이, 여성 618명 중 526명이 이같이 응답했다. 통계 수치만 놓고 보면 성생활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어 보인다.
하지만 현실엔 반전이 있었다.
조사 대상자 중 20대 후반에서 40대 후반의 기혼 남녀 817명을 대상으로 섹스 빈도를 조사한 결과
기혼 여성 527명 중 204명(38.7%)이 '월 1회 이하거나 거의 안 한다'고 답했다.
기혼 남성의 경우 290명 중 73명(25.2%)이 월 1회 이하라고 응답했다.
1년에 10회 미만, 혹은 한 달에 한 번 이하의 성관계를 갖는 경우를 흔히 '섹스리스(sexless) 증후군'이라고 표현한다.
통계에 따르면 대한민국 성인 부부의 섹스리스 비율이 30%를 훌쩍 넘는다는 얘기다.
섹스리스 통계와 관련, 전문가들은 남성의 경우 혼외정사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여성의 섹스리스 비율이 보다 정확하다고 보고 있다.
이혼 신청 10쌍 중 8쌍이 섹스리스 고민
부부 관계 전문가들은 “이혼을 결심한 부부들 대부분이 성격 차이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그 뿌리에는 성적(性的) 불화가 자리 잡고 있다”며 “성생활만 원만해도 이혼 부부가 절반가량 줄어들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가정법원의 한 조정위원은 “조정을 신청한 부부 10쌍 중 8쌍은 섹스리스 문제를 호소한다”고 말했다.
병원을 찾는 섹스리스 부부들도 “우린 함께 여행도 자주 다니며 경제적으로도 여유롭고 부부 사이도 좋다.
그런데 이상하게 행복한 것 같진 않다”고 털어놓는다고 한다.
결혼 생활이 10년도 채 안 되는 이들 젊은 부부들이 섹스리스로 고민하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섹스리스의 원인을 크게 발기부전을 비롯한 성기능 장애와 각종 심리적 장애 등 두 가지를 꼽는다.
성기능 장애의 경우 부부가 성욕을 갖고 있다면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
남성들이 고민하는 발기부전과 조루·지루 등은 비아그라 등 약물을 사용하거나 각종 수술을 통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여성의 경우 출산 전에는 성교통(性交痛)이나 불감증 등으로,
출산 후에는 질근육 이완으로 인한 성기능 저하 등으로 병원을 찾곤 하는데
이때도 상담과 치료를 병행하면 상당 부분 치유가 가능하다.
이런 경우 성기능 장애를 인정하지 않고 서로만 탓하기보다 전문병원을 찾아 진단을 받아보는 게 우선이다.
문제는 심리적 장애다. 1995년 에드워드 라우만 박사가 미국 성인 2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미국인들의 건강과 사회생활 조사'에 따르면 미국에서도 섹스리스 부부가 20%를 넘고,
이 가운데 성기능 장애로 인한 섹스리스가 상대적으로 많았다.
반면 30~40대의 섹스리스 부부가 30%를 상회하는 한국은 별다른 성기능 장애 없이도 배우자와의 섹스를 피하는 경우가 적잖다.
이에 대해 강동우 성의학연구소장은 “한국의 부부들은 부부간 성관계에서 큰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데다
상당수가 치료도 받으려 하지 않는다”며 “한국의 섹스리스 부부는 대부분 심리적 장애로 인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먹고 살기도 힘든데 … 'DINS족' 급증
특히 최근 들어 맞벌이와 육아 때문에 시간 부족과 피로 등을 호소하며 성관계를 포기하는
'DINS(Double Income No Sex)족'이 늘고 있는 것도 섹스리스 부부의 증가에 한몫하고 있다.
결혼 후 1~2년까지는 나름 노력했지만 아이가 생기고부터는 그마저도 힘들어졌다는 호소다.
“피곤해 죽겠는데 섹스할 힘이 어딨나요? 성욕 자체를 잃어버렸어요.
” 3살과 5살 두 아이의 엄마인 이모(34)씨는 “낮에는 회사에서, 밤에는 집에서 쉴 새 없이 일하며 기계처럼 살고 있다”며
“내게 섹스는 사치스러운 단어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예전엔 피곤해도 한 달에 한두 번은 관계를 가지려고 했는데 아이가 둘이나 생기니 남편과 타이밍 맞추기도 힘들더라”고 덧붙였다.
이윤수 성과학연구소장은 “맞벌이 부부들은 주로 체력적인 문제를 호소하거나 서로 관계를 원하는 시간
, 이른바 '섹스 타임'이 안 맞아 충돌을 빚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일에 지친 남편은 “밤에는 서로 피곤하니 모닝 섹스를 즐기자”고 하는 데 반해
아내는 “아침에는 애들도 챙기고 출근도 해야 하니 늦게라도 밤에 하자”고 말하면서 갈등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이 소장은 “결국 부부가 이런 문제로 다투다가 '먹고 살기 힘든데 섹스는 무슨 섹스냐'며 섹스리스 부부로 돌아서곤 한다”고 설명했다.
결혼 적령기가 남녀 모두 30대로 넘어가면서 '만혼(晩婚)이 섹스리스의 원인'이라는 진단도 나온다.
남성의 성욕과 성기능은 20대 초·중반에 정점에 달한 뒤 서서히 감소하는데,
초혼이 늦어지면서 결혼생활 중 남성이 성욕을 왕성하게 느끼는 기간이 과거에 비해 크게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이윤수 소장은 “남성의 경우 직장 스트레스가 최고조에 달하고 성기능도 매년 약해지는 30~40대에는
성적 욕구를 느끼지 못하는 '심리적 거세' 상태에 놓이기 쉽다”며 “
대부분의 남성이 30대 초·중반에 결혼하고 심지어 40대 초혼도 적지 않다 보니 부부 관계에 소홀해지는 경우가 적잖다”고 분석했다.
민주일보 정다운 기자
기혼 여성들 또한 사회생활과 아이 양육 등에 30대의 대부분을 보내는 게 현실이다.
이처럼 남녀 모두 섹스의 절정기를 놓치면서 부부간 성관계에 대한 관심과 열의가 떨어질 수밖에 없게 됐다는 설명이다.
특히 만혼 부부의 경우 임신에 너무 치중해 섹스 자체를 즐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강동우 소장은 “성관계를 임신의 수단 정도로 생각하다 보면 예기치 않은 부작용이 발생하기 쉽다”며
“즐거운 성관계를 갖다 보면 임신이 가능하다고 생각해야지 임신만을 위해 성관계를 택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섹스는 부부간의 친밀감을 더해주고 삶의 질을 높여주는 좋은 수단인데 주객이 전도되면 섹스를 점점 꺼리게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성적 취향 달라 처음부터 부딪치기도
섹스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부부 관계를 피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최근 들어 여성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성적 욕구에 대한 표현도 보다 과감해지면서
남편들의 부담이 크게 늘었다는 분석이다.
한 회사원 남편은 “출산 후 오랜만에 관계를 가졌는데
아내가 흥분하기도 전에 그만 사정을 해버렸다”며
“너무 당황해서 그 뒤로는 나도 모르게 잠자리를 피하게 됐다”고 고백했다.
그는 “아내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부담감에 항상 긴장 상태로 지내다 보니
직장에서보다 더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토로했다.
주부 임모(41)씨는
“남편이 30대 후반까지는 밤마다 부부 관계를 요구해 성가실 정도였는데
40대 초반이 되자 부쩍 횟수가 줄었다”며 “
그뿐 아니라 힘도 없어지고 지속 시간도 짧아졌다”고 털어놓았다.
임씨는 “직접 말하진 않지만 남편도 스스로 느끼는 것 같다”며
“전보다 자신감도 떨어지고 성관계도 자꾸 회피하려고만 해 문제가 생긴 건 아닌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실제로 상당수 남편들이 성관계를 가지면서
'아내가 만족할 수 있도록 잘해야 한다'는 부담을 크게 느낀다고 한다.
성관계 도중에도 “좋으냐”고 습관적으로 묻는 게 불안감의 방증이란 얘기다.
상대의 기대에 못 미쳤을 때는 자신감을 잃거나 성기피증에 걸리고,
심지어 손쉽게 만족할 수 있는 성매매에 눈을 돌리기도 한다.
강동우 소장은 “40대에 접어들면 남성 호르몬이 급격히 감소하면서
성욕이 떨어지고 발기 강도와 유지 시간이 떨어지는 경우가 적잖다”며
“이른바 '남성 갱년기'라고 불리는 이 시기에 남성은 성기능 저하와 함께
불안·우울증·불면증 등을 겪으면서 자연스레 섹스리스가 될 확률이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젊은 부부들은 서로 다른 성적 취향 때문에 갈등을 빚기도 한다.
5년차 부부인 A씨(36)와 B씨(35)는 아이를 낳은 뒤 1년 반 만에 별거에 들어갔다.
“우리는 하나부터 열까지 달라도 너무 달라요.” 병원을 찾은 둘은 입을 모아 말했다.
두 사람은 결혼 적령기에 만나 '적당하다는 이유로' 사귀었고 무탈하게 결혼에 골인했다.
하지만 첫 섹스 이후 곧바로 둘은 섹스리스 부부가 돼버렸다.
혼전 성경험이 거의 없었지만 적극적이고 솔직한 성격인 아내는 첫 부부관계 때
남편에게 좀 더 색다른 체위를 요구했다.
반면 '여자는 정조를 지켜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가졌던 남편은
아내의 요구에 강한 거부감이 들었다.
남편의 냉담한 태도에 상처받은 부인과, 부인의 당당한 요구에 충격받은 남편은
이후 성관계를 기피하게 됐다. 서로의 성적 취향을 몰라 오해만 키운 셈이다.
이후 서로 간에 불신이 쌓이면서 “당신과 나는 너무 다른 사람”이라며
사사건건 부딪치게 됐고, 부부 관계도 악화일로를 걷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불화는 원하는 섹스의 수준과 쾌락의 정도,
성행위의 방식 등이 서로 다를 때 종종 나타난다”며 “취향이 다른 두 사람이
사회적 조건만 보고 결혼했을 경우에도 이런 낭패를 겪기 쉽다”고 진단한다.
선정적인 야동이나 광고 때문에 부부간에 성적 불화가 생기기도 한다.
30대 주부인 C씨는 “평소 섹스에 대한 요구를 거의 하지 않던 남편이
어느 날 갑자기 세일러문 교복을 사오더니 입어 달라고 하더라”며
“너무 어이가 없어 절대 입을 수 없다고 거부했다”고 말했다.
남편의 성적 취향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 섹스리스를 선택했다는 얘기다.
“섹스는 단순 쾌락 아닌 훌륭한 운동”
하지만 전문가들은 “맞벌이로 인한 피로나 야근·육아 등의 문제가
섹스리스의 직접적 원인이 될 수는 없다”고 입을 모은다.
강동우 소장은 “피곤하다는 것은 핑계일 뿐”이라고 잘라 말한다.
그는 “성관계는 단순한 쾌락 이상으로 훌륭한 운동”이라며 “신체 호르몬을 활성화해 건강 관리와 컨디션 조절에도 좋다”고 말했다.
실제로 2001년 미국 킨제이 성연구소에서 섹스리스의 원인을 분석한 결과 시간이나 신체적 부담 등 물리적 원인보다는
부부 상호 간의 존중 부족, 섹스에 대한 불만족 등이 주된 이유로 밝혀졌다.
배정원 행복한성문화센터 소장은 “아무리 피곤하고 힘들어도 섹스가 재미있으면 왜 피하겠느냐”며
“결국 서로가 만족하지 못하고 억지로 해야 한다는 중압감 때문에 더욱 거부감이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맞벌이나 야근 등이 섹스리스의 표면적 원인처럼 보일 수는 있지만 사실은 '재미있는 섹스'를 하지 못하기 때문이란 얘기다.
그는 “흔히들 속궁합이 안 맞다고 하는데 그 말도 다 핑계”라며 “섹스도 인간 관계처럼
서로 조금씩 맞춰가며 발전시키는 건데 속궁합 핑계를 대는 건 노력하지 않겠다는 얘기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강동우 소장은 “피곤하다는 핑계 대신 부부가 함께 노력해 성적 쾌감을 높이면 오히려 섹스가 적절한 '운동'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윤수 소장은 “3~6개월간 성관계가 끊어지면 전형적인 섹스리스 단계로 이어지고, 남녀 모두 어떻게 섹스를 해야 할지 모를 상황에 이르게 된다”며
“솔직히 터놓고 얘기하면서 서로 하나가 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민주일보 정다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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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동남편과의 전쟁 |
[토요판] 가족 ‘야동남편’과의 전쟁
▶ ‘야동 순재’ ‘야동 지원’ 같은 캐릭터가 드라마에 등장하더니,
일부 연예인 부부는 예능 프로에 나와 “우리 남편은 야동 마니아”라고 거침없이 ‘폭로’하기도 합니다.
“야동 안 보는 남자 없다”는 대한민국의 요즘 풍경입니다.
최근 성폭행 범죄가 잇따르면서 정부가 야동 단속에 고삐를 죄고 있답니다.
“모든 남성이 잠재적 범죄자냐”며 볼멘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닌 듯합니다.
“우리 사이에 무슨 문제가 생긴 걸까?”
결혼 10년차, ‘딩크족’(자녀 없는 맞벌이 부부)으로 살고 있는 김정은(가명·36)씨에겐 요새 남들에겐 말 못할 고민이 하나 생겼다.
집에서 사용하는 컴퓨터에서 제목을 언급하기도 민망한 낯뜨거운 ‘야동’(야한 동영상) 파일을 무더기로 발견했기 때문이다.
회사 일이 많다며 일감을 싸들고 들어와 밤늦게까지 서재에서 일을 하던 남편이 떠올랐다.
어쭈, 헛웃음이 나왔다. 그저 쿨하게 넘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떻게 야동 같은 걸 볼 수 있냐”며 호들갑을 떨 순진한 나이도 아니잖나.
결혼 전에도 남편은 “야동에서 봤다”며 킥킥 웃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들려주곤 했다. 하지만 생각할수록 약이 올랐다.
‘나더러 먼저 자라더니 다른 여자들이 벌거벗고 나오는 동영상을 보고 있었던 거야?’
약오르는 이 감정은 ‘배신감’에 가까웠다.
‘총각 때야 그렇다 쳐도 결혼해서도 야동을 보는 건 좀 이상한 거 아닌가’ 싶기도 했다.
“한번 하자”고 할 때 싫다고 진저리를 친 것 같지도 않은데, 남편이 다른 자극을 찾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자존심도 상했다.
‘나와의 잠자리가 지루해진 걸까’ 불현듯 걱정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 보니 남편하고 함께 잠자리를 한 지도 꽤 됐다.
“바쁘고 피곤하다는 서로의 이해에 맞았을 뿐”이라고 여겨왔는데,
그사이 남편은 컴퓨터 앞에 앉아 딴짓을 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어이없게도 눈물이 왈칵 터졌다.
‘내가 그렇게 매력이 없어졌나?’ 고민도 됐다.
그러고 보니 거울 속에 비친 허리는 통나무처럼 굵고, 눈가엔 주름이 자글자글한 것만 같다.
배신감과 모멸감, 우려가 뒤엉킨 머릿속에서 남편이 다른 여자와 뜨거운 정사를 벌이는 모습이 마구 그려진다.
휴지통엔 이상한 흔적까지
남편 컴퓨터 부숴버리고픈데
“남들 다 보는데 뭐가 대수야?”
당황도 않고 당당하게 나온다
야한 동영상으로 욕구 풀면서
아내 몸엔 손도 대지 않다니
내가 매력이 없어졌나 해서
어이없는 눈물이 왈칵 터졌다
그냥 모른 척 넘어가주려던 김씨는 끝내 남편에게 따지듯 물었다.
“당신, 왜 야동 따위를 보는 거야?” 급작스러운 질문에 얼굴이 벌게진 남편이 말했다.
“아, 그거. 당신 봤구나. 그냥 보는 거야. 일종의 취미생활이랄까.
당신 친구들한테도 물어봐. 세상에 야동 안 보는 남자는 없어.” 그저 ‘취미’라는데 무슨 얘길 더 할 수 있겠나.
“하여튼 남자들이란….” 김씨는 혀를 끌끌 차고 넘어가줬다. 그렇다고 찜찜한 기분이 다 사라진 건 아니었다.
결혼 3년차, 이현진(가명·32)씨는 솔직히 “남편의 컴퓨터를 부숴버리고 싶은 기분”이다.
이씨의 남편은 한마디로 ‘야동 마니아’다. 모르는 척 넘어가려고 하지만,
서재 쓰레기통에서 미처 치우지 못한 남편의 ‘흔적’을 발견할 때마다 이씨의 혈압은 급상승한다.
처음 당황스러워하던 남편은 이젠 아주 당당하다.
“밖에 나가서 바람을 피우는 것도 아니고, 남들 다 보는 야동을 보는 게 뭐가 대수냐”는 것이다.
“뭐가 대수냐고?” 남편이 애써 언급을 피하는 한 가지가 있다.
남편은 야동을 보면서 욕구를 풀면서도 이씨의 몸엔 거의 손도 대지 않는다는 점이다.
남편은 늘 “피곤하다”며 “다음에 하자”고 미루기만 한다.
그다음이 언제가 될지는 기약이 없다.
“그렇다고 그다음이 언제냐고 따질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 연애 시절, 틈만 나면 모텔 한번 가자고 조르기 바빴던 남편의 이런 변화가 이씨는 당혹스럽고 밉다.
남편이 야동에 빠지기 시작한 건 결혼 1년 남짓, 이씨가 임신을 했다가 유산했을 즈음이다.
이씨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됐다. ‘아이를 잃은 슬픔에 몸 가누기도 힘든 아내를 두고 도대체 야동 따위를 보는 게 말이나 되냐’는 것이다.
남편이 짐승처럼 느껴지고, 징그럽기도 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나는 남편과 잘 지내기 위해 노력했다”고 이씨는 생각한다.
한번은 여성지에서 충고하는 대로 섹시한 란제리를 입고 남편을 ‘유혹’하려고 했다.
민망하게 거절만 당했다. 남편의 눈에서 비친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 이씨는 “괜스레 밝히는 여자 취급만 받은 것 같아 마음에 상처만 입었다.
” 그 이후로 이씨는 남편에게 섹스의 ‘ㅅ’자도 꺼내지 않는다.
“아내 눈엔 모든 게 내 탓이다.” 남편도 남편대로 할 말은 있다.
아내는 남편이 자기를 밀어낸다고만 생각했지, 자신이 남편을 밀어냈다는 건 인정하지 않는다.
아이를 유산한 이후, 아내는 그의 손길을 매몰차게 내쳤다.
“나는 이렇게 힘든데 당신은 어떻게 그런 생각이나 하느냐”는데 할 말이 없어졌다.
그의 딴엔 제법 시간이 흘렀다고, 조심스럽게 꺼낸 얘기였는데 그 점은 무시됐다.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거냐고 물을 순 없는 노릇 아닌가.
” 그러다 보니 야동을 보면서 자연스레 욕구를 해결했다.
딱히 야동이 좋아서 보는 건 아니지만 그게 편하다.
언제부터인가는 아내와 살이 맞닿는 것도 영 어색했다.
몸도, 마음도 멀어진 기분. 그건 둘 다 마찬가지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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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면 ‘선’을 넘은 걸까
부산가정법원은 최근 “야동을 보느라 가정생활을 소홀히 한 남편과 이혼하는 건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아내가 취미생활을 이해하지 못하고 외도를 의심하는 등 과대망상 증세가 있었다”는 남편의 항변에도,
법원은 “결혼 초부터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장시간 채팅을 하거나 야동을 보면서 가정생활에 소홀했다”고 주장한 아내의 손을 들어준 거죠.
“야동 보는 건 남자들의 건전한 취미”라는 남편들, 주변에 널렸습니다.
심지어 캐나다 몬트리올대는 2009년 ‘야동을 본 20대 남성’과 ‘안 본 20대 남성’을 비교하는 연구를 하려다가,
야동을 안 본 남성을 찾는 데 실패해 연구를 포기했다니 말 다했죠.
우리나라에서도 ‘야동 순재’ ‘야동 지원’ 등의 캐릭터가 드라마에 등장하며 인기를 얻는 건,
야동 보는 남자란 보편성이 우리나라라고 예외는 아니기 때문일 테죠.
위에 언급한 이혼소송에서 보듯, ‘야동 보는 남편’은 많은 아내의 고민이기도 합니다.
‘혹시 우리 남편이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우리 관계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싶어지는 거죠.
서울가정문제연구소의 김미영 소장은 이에 대해 말합니다.
“건강한 남성들이 야한 동영상을 보는 건 일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요.
다만 “아내와의 섹스에 흥미를 잃고 한발 더 나아가 부부관계를 단절하고
야동 쪽에 더 빠진다면 중독에 준해 치료를 해야 한다”고 권합니다.
그는 많은 상담 사례를 보면 “결혼생활에서 배우자와 마음이 멀어질 경우 동영상에 더욱 깊이 빠져드는 경향이 있다”고 하네요.
야동 보는 남편이 걱정되신다면, 둘 사이 마음의 거리도 함께 점검해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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