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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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반데룽

행복과 함께 하는 열정의 찌꺼기

까미l노 2012. 9. 18. 00:36

 

 

히말라야 트레킹과 인도 배낭여행 그리고 산티아고를 50일 간 걸었을 때 신었던

한바그 비브람이 지금은 농장에서 신는 신발이 되어버렸다.

 

나도 한 켤레를 사긴 했지만 여느 농부들이 주로 신고 일을 하시는 장화가

아직 나에게는 어색하고 장화의 바닥이 지나치게 얇아 불편한 듯 해서이다.

 

아열대 식물 자원 연구를 하는 이곳 농장에는

키가 엄청 큰 와싱턴 야자와 부티아 야자 그리고 황금 야자,공작 야자,카나리아 야자

파파야,글루 카시아,망고,아보카도,쏘팔메토,등의 남방식물들을 재배 중이다.

 

전에 일하던 사람이 고추며 방울 토마토를 한 켠에 심었다가 제대로 관리를 하지 않아

군데 군데 너저분하게 방치가 되어 정리를 하다가 방울 토마토 덩쿨에 걸린 톱을 지나치게 힘을 주어 당기다가

그만 왼손 엄지를 치게 되어 일곱 바늘을 꿰맨 후 한동안 고생을 했는데 이젠 거의 완치가 되어가는 중인데

그동안 한 손으로 샤워를 하면서 머리를 감고 오른손이 닿지 않는 오른 쪽 등을 씻는다고 혼 좀 났었다... 

 

농사 일이라는 게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덤벙대며 덤빈다고 일이 잘 되거나 

소기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몸을 던져(?)깨닫게 된 것 같다...

 

아직은 완전 초보수준의 농부라 장갑도 매일 새것으로 끼고 싶고

바지에 흙 묻는 게 신경 쓰이고 걸핏하면 손을 씻으니 이래서야 어디 일을 제대로 하랴...

 

아웃도어용으로 애지중지 했던 옷들은 이제 흙에 파묻혀 일을 하는 작업복으로 몽땅 변신중이다.

OR의 사하라 솜브레로 고어텍스 모자를 쓰고 아크테릭스 티셔츠와 마운틴 하드웨어와 멜로스 바지를 입고 

테바와 킨 그리고 한바그와 마인들 등산화를 신은 우스꽝스런 농부의 모습이다... 

 

어릴적 희망이었던 그넘의 여자고등학교 으막샘도 해봤고

가정도 가져봤었고 여행도 다닐만큼 다녀봤지만 그것들...

결과적으로는 되돌아와야 했었기에(?) 여태껏 삶의 행복이란 걸 느껴본 적은 없었는데

지금 아직 짧은 경험이지만 흙을 만지며 식물을 보살피는 이 일이 너무도 행복하여 빨리 손가락 붕대 푸는날을 손 꼽아 기다리는 중이다.

 

한동안 걷지를 못하였더니 아랫배가 거북한 것 같기도 하지만

올빼미형 인간이 새벽에 일어나기 시작하였더니 밤이 깊은 늦은 밤이 채 되기 전 졸리기 시작도 하고

아침이면 어김없이 분기탱천해지니 발걸음이 절로 가벼워진다.

잠자리에 들면 내일 아침이 기다려지고 낮에 일을 하면 하루가 금새 지나가 버리는 즐거움을 맛 보는 중이다.

 

앞으로는 상추를 좀 심어 봐야겠다.

깻잎을 따지 않았더니 태풍 때 바람을 탄 파도가 이곳까지 소금끼를 날려보내 잎이 막 시들었다.

 

올레 6코스 숲길에는 나무에 이름표를 달아서 나무에 관한 작은 이야기를 적어 두고

농장 견학도 하게 하고 쉬었다 갈 수 있는 조그만 공원 같은 것도 만들 생각이다.

 

아무렇게나 심었던 고춧대에 싱싱한 무공해 풋고추가 주렁주렁 열렸다...

지나가는 올레꾼들과 물에 말은 밥 한술에 된장 푹 찍은 풋고추 한 입 권할 수 있는 올레쉼터도 되리라,

 

열대과일? 그것도 권해?

 

덜 자게 되어 모자라는 잠

많이 걷거나 발바닥을 고생시키면 뻐근해지는 이놈의 열정

어쩄거나 기분 좋은 괴로움...

  

 

파초를 닮은 외국의 잎이 넓은 야자수인데 아직 이름을 모른다.

꽃의 색깔과 모양이 화려하고 향기조차 스쳐 지나가는 여인네의 지분 냄새처럼 향긋한 자극이었는데

 

 

태풍에 시달려 그만 시들고 말았다.

화려하고 향기 좋은 꽃들은 다 빨리 시들어 화무 십일홍이라 그랬는지...

 

 

독일에서 온 글루 카시아

마치 거대한 연잎 같기도 하고 토란 잎 같기도 한데

줄기 한 가운데에 수려한 하얀 꽃대가 나오면서 우아한 자태를 뽐내기도 하는데

꽃을 없애야 줄기와 잎이 잘 자란다고 하니 참 안타까운 식물이다...

 

 

태풍에 줄기며 잎사귀가 다 떨궈져버린 파파야에 깨벗은 남자들이 주렁주렁 매달렸다.

가을에 따 먹어야 할 열매인데 아쉽게도 열대 지방에서 온 녀석인지라 내년 봄까지 기다려야할 판이다.

 

 

한국 토종 어름인데 서양의 키위랑은 사뭇 다르고 다래 라고도 하는데

진짜 다래는 이것과는 전혀 틀린 작은 포도알 만한 열매이다. 

 

 

새끼 바나나

애기 바나나?

 

꽃대가 삐죽이 나오고 있는데 난 생 처음 바나나 꽃이라는 것을

히말라야 트레킹 떄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의 어느 호텔 마당에서 본 적이 있었다.

 

 

 

그떄 아차..싶었던 것이 나무든 풀이든 모든 식물은 꽃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칠십리 소공원 연못에 아주 드물게 노랑 수련이 피었다.

흰색과 보라색 계통의 빨간 수련은 자주 본 적이 있었다만 노랑색 수련은 예서 처음 보는 것 같다.

 

 

 

실하게 익어가는 파파야 열매

그런데 이 녀석은 특이하게도 열매가 한 번 달린 나무는 밑둥을 잘라주어야 다시 그 밑둥에서 가지가 올라 오게 되고

줄기며 잎사귀가 생기니 참 신기한 녀석이다.

 

 

고운 여인네의 화사한 한복의 하얀색 같기도 하고 고깔 같기도 한 글루 카시아 꽃이 살며시 고개를 내미는 중이다.

그런데 이 꽃대를 잘라버려야 한다는 것은 좀 슬픈 일이다.

 

 

남자들이 좋아하는(?)

아니 요즘 세상엔 여자들이 남편들에게 적극 권하는(?)쏘팔메토

 

어느 제약회사에서 전량 수입해서 판다는 광고를 떠들썩하게 하는 바로 그 약초이다.

 

 

지금 한참 옮겨 심고 있는 망고 묘목이다.

다친 손가락 때문에 한 손만으로 삼 천 그루 정도를 옮겨 심었더니 죽을 맛이긴 했지만 일은 신났다~

 

오늘 중국 사람과 만나 저녁 식사를 하면서 땅이며 팬션 등 이 저런 이야기를 하고

밤 늦게 퇴근을 하게 되어 집으로 오는 차 속에서 이걸 행복한 것이라고 믿기로 해버린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멋진 결과가 다가 올 미래가 있다는 사실엔

깬 다음날 아침이 기다려지고 밤에 잠 들기도 즐거워지니

이토록 편안한 내 집 창가와 바다 풍경이 침대에서 다 보이니 댓자로 누운 내 모습에 절로 행복해진다.

돈을 만들 딱히 목적이 있어서는 아니지만 일을 하면 돈도 생긴다는 지극히 간단명료한 이 사실이 나는 정말 기뿌다...

 

흙을 만지는 일이 이토록 신나고 즐거울 줄이야...

일을 하면서도 상상을 하면 행복이란 건 내 안에 있다는 말이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하는데

오늘도 퇴근하면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 높은 언덕 베란다 창으로 바다를 보면서

이 아늑한 공간에 편안하게 쉴 수 있게 만들어 준 스스로에게 감사한다...

 

예전엔 행복한 일이 생기거나 마음이 순간 순간 즐거워지면 근무지를 땡땡이 치면서 낮시간에도 집으로 달려가곤 했었다.

그때 두 눈 휘둥그레져서 얼굴 붉히던 사랑했던 아내가 보고 싶어서였고 부지불식간에 안고 싶어져서 였었다.

 

냉정과 열정 사이를 오락가락 하는 요즘인가...

아니면 열정의 찌꺼기가 발광하는 중인지 지금의 내 행복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눠 주고 싶은데

그런데...내가 느끼는 이 행복에서 나눠줄 게 어떤 것인지 아직은 분간이 잘 되지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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