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왼종일 지치도록 걸고자 했던 날에 본문

링반데룽

왼종일 지치도록 걸고자 했던 날에

까미l노 2012. 1. 12. 19:47

서귀포 민중각에 짐을 풀고 첫날밤은 아무 짓(?)못하고 그냥 잤다.

그냥 잔 정도가 아니라 평소 잠자리에 드는 시각이 새벽 두시는 되어야 했었거늘  밤의 제주도에서는 달리 오갈 곳들도 없고

그나마 나그네 술  한 잔 마실 재주도 없는 위인인지라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매우 우울한 지경에 이르렀고

어느만큼 잤다 싶은데 옅은 꿈 속에서 뒤척이다 깨어 시계를 보니 겨울 열두시...

뒤척이고 뒤척이다 새벽녘 다른 올레꾼 깨는 소리에 덩달아 일어나고...

 

 

 

서귀포 구터미널 뒤편 용이 식당에 올레꾼들을 위한 아침 식사로 시래기 국밥을 판다

말아서 나오는 건 아니고 밥과 시래기 된장국 한양푼과 김치와 무우 생채나물

뜨끈한 시래기 된장국이면 겨울 아침에 더할 최고가 어디 있으랴...

육식을 달가워 않는 나로서는 두번 연속 12,000원 하던 고등어 구이와 전복 뚝배기는 시래기 국 보다 영 달갑지는 못하고 보니...

 

 

오늘은 일부러 지치도록 걷고 싶어 평소 좋아하지 않던 올레 코스중 가장 긴 3코스를 택해서 걷기로 한다

마을 정류소마다 들리는 동일주 버스를 탔더니 그야말로 시간이 흐르건 말건 한시간 여 달려 온평포구 가는 도로변에 떨어졌다.

마을 사잇길을 1km 남짓 걸어 내려가 제주일주를 여러번 해봤지만 난생 처음 올레 패스포트에 스탬프를 찍어보고 길을 나선다.

이곳 3코스 주변 마을은 곳곳이 온통 무우 밭이다.

 

한녀석이 성형수술도 못한건지 못생겼다고 그런지 가족과 동무들에게서 버림을 받아 길바닥에 팽개쳐져있다.

이 정도면 무 생채를 하거나 깍두기를 담으면 양으로 보나 일석삼조 될터인데

무우든 사람이든 잘 생기고 보거나 아니면 부모 잘 만나 성형수술이라도 해야할 판인가 보다...

 

 

하늘이 잠시 벗겨진다.

파아란 하늘이 드러나길래 언능 갈대를 찍었다.

갈대 씨앗인 머리털이 다 벗겨져 보기에는 영 별로다...

 

 

 

올레표지 간세 말뚝 위에 솔방울 두개를 올렸다.

왼편의 조금 큰놈은 사내고 작은 게 아가씨이리라...

 

둘이 살풋이 머리를 맞대고 기대인 게 영락 없는 연애질 하는 아름다운 연인 사이 같네...

니들 다음에 다시 올 때 꺼정 싸우거나 오해 같은 거 절대 하덜말고 서로 아껴주며 오래 오래 잘 지내고 그 옆에다 새끼 소나무 한그루 맹글어 놔...

그럼 올레소나무라고 이름 지어줄테니까...

 

 

 

 

무거워서 거추장스러워서 제주도로 오면서 망설이고 망설이다 버리고 온 망원 렌즈여...

돌아본 무우밭 너머에 한라산이 꽤 멋있게 서있는 것을

아뿔싸!!

광각렌즈로 찍어보니 아쉽기 한량 없다.

 

그래봐야 다음에 마음 다잡아 먹고 망원렌즈 가지고 오면 뭐할까?

계속 날씨 탓으로 찍을 한라산은 모습을 좀처럼 드러내자 않을텐데...

 

 

 

 

 

 

 

올레 이사장님께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오셨다던데...

유네스코에 등재된 길은 차치 하고서라도 대한민국은 걷는 사람들을 미친 눔들이라고 하는 게 딱 맞다...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그곳엔 절대 사람과 차 사이가  위험하도록 방치해 두는  길은 없다.

우리나라와는 아주 다르게 반드시 차도와 인도 사이에(순례길 아닌 곳이라도) 위험 방지 철망이 막아 서 있게 되어 있거나

철망 바깥에 따로 흙길 같은 것으로 인도를 만들어 둔다.

 

대한민국은 차가 더이상 밖으로 튕겨 나가지 않도록 인도 맨 바깥에 설치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차가 바깥으로 퉁겨져 나가는 사고를 당했을 때 그 옆 인도나 갓길에 사람이 걷고 있으면 일차적으로 사람이 차를 막아주는 방법을 택한 건인지...

 

아스팔트 처럼 포장된 길이나 전신주와 전깃줄을 사진에 담지않을려는 타입이지만

오늘은 걷는 사람을 무시하는 대한민국 행정하는 인간들 땜서 열 받아 한번 찍어봤다...

 

 

 

 

60% 이상 아쉬운 3코스

그나마 독자봉과 통오름이 있어서 아쉬움을 조금 달래며 통오름에서 멀리 성산의 일출봉을 본다.

언젠가 해질녘 관리인 몰래 일출봉 단애 건너까지 죽자 냅다 뛰어 가본 적이 있다.

 

건너편 까지 가서 절벽 끝에 가 보시렴...

물론 기회가 주어진다면 것도 몰래...

 

절벽 끝의 경치는제재주도 어디를 가도 볼 수 없는 풍광을 경험할 것이다.

절벽 너머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뒤로 밀려나게 하는 것이 저절로 절벽 위의 타이타닉 개폼이 되어버리더라...

 

 

거의 내 자화상 아닌가 시푸다

두모악 김영갑 갤러리 마당의 조각(?)

 

 

 

 

 

수선화가 아닌가 시푼데 지금 계절에 피는 것인지

꼴에 숲해설가랍시면서 애매한 것이 식생들의 이름을 외우는 것에는 영 잼병이니...

 

 

이건 꼭 조화 같다...

길가 담부락에 동백이란 녀석이 활짝도 피어서 모가지 댕강 떨어뜨려야 할텐데 소담스럽게도 동그랗게 달려서 맴을 애잔하게 하더라...

 

 

우도 소머리 정상에 오래 전 연인사이인 남녀 둘이 불장난 하다가 그만 소잔등을 대 태워먹는 바람에

그곳에 그 많이 피던 쑥부쟁이들이 흔적이 없어졌다던데 신천 바다목장 초지 절벽부분에 이 겨울에 살아버티는 녀석들이 있네...

키를 납작하게 하고 바짝 엎드려서 악착같이 살아낼 모양이다...

 

부탁이니 제발하고 아무도 밟고 지나가지 마라...

 

 

셀프로 함 찍어도 보고

길에선  온갖 개폼을 다 떤다...

 

그래야 길동무가 없어도 괘안아지거든...

오다가 부부를 만났는데 아뿔싸...

근래 누구와도 대화를 했던 적이 없었던지라 한달 정도 해야할 말 보다 더 많이 지껄어버렸던 것 같다

 

산티아고에 대해 궁금해 하길래 상세히알려주다 보니 그만 떠벌이처럼 입에 개거품을 물었던 것이리라...

(순전히 궁금한 것이라는 게 일자별 경비일 뿐이기도 하지만)

 

무슨 남자가 수다를 떠는 것도 아니고...

밀감농장 근처에서 잠시 주문도 할겸 쉬었다 가자길래 언능 그 자리를 도망치듯 먼저 가겠노라고 하고 피했다.

 

 

뭐라 그랬더라?

배고픈 다리랬나?

다정하게 걷고있는 젊은 연인이 보기 좋아 몰래 찍었네...

할배 할매 되어서 손 잡고 다시 와서 그 길 걸으시오...

 

 

표선 해변의 나무 의자

누구 두사람 다정하게 앉아서 해 저무는 바다를 보고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면 참 보기 좋을 곳 같네...

 

 

 

이건 무슨 꽃?

해변길에 조성한 원예종 같은데 꽃은 소극 대가리 같기도 하고...

 

 

 

썰물이 되어 드러난 표선의 모래사장이 드넓다.

그런 시 한 구절이 생각나네.

너를 만나러 가기 위해 썰물이 되어도 배를 띄우겠다던...

 

지치도록 걷겠다 그랬는데 아껴 걷지 않고 허겁지겁 걸어온 것은 혼자라서였고 사실은 점심 먹을 곳이 없어서 배가 너무 고파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