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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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은지심

밤마실 걷기를 하다가

까미l노 2009. 10. 1. 01:44

창 밖이 캄캄해졌길래 밤이 다 된 건가 싶어 시계를 흘낏거리며 밖을 내다봤더니

서쪽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몰려드는 것이 비가 올려는지 그래서 일찍 어두워졌나보다...

 

서둘러 신발을 고쳐 신고 중랑천으로 나갔다.

어제 저녁답에  세이브존인가 뭔가 하는 큰 빌딩에서 왕창떨이를 한다길래

하나 골라 신은 새 운동화인데 무척 마음에 드네...

 

'새 신을 신고 뛰어보자 팔짝~ 하늘이 노랗구나 영양실조다...'

 

추석칠로 예쁜 운동화를 신어서인지 발걸음이 무척 가벼워서

신나게 걷는데 조금씩 까닭모를 화가 치밀어 오른다.

걸음이 점점 더 빨라진다.

 

살아있다는 것이 지겨워져서...

 

천변에 낚시꾼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붕어낚시를 하고 있다.

나처럼 하염없이 물가에 퍼질러 앉은 채 붕어 찌올림 보기를 좋아하는 얼굴이 문득 떠올라서 

휴대폰을 열었다.

단 세글자로 문자를 보냈다.

 

"잘사나...? "

 

잠시 후 전화가 왔다.

 

"그러잖아도 요 며칠 니 생각이 자주 나더만 괘안나...? "라고 되묻는다.

 

뭐가 괘안코 뭐가 안 괜찮은 건지 잘 모르겠지만

 

"아직은 안 죽었다"

 

"그라모 됐다...."

 

 

어릴적 동네 이웃집 친구고 초등학교는 한해 후배되는 37년된 여자친구이다...

살면서 나쁜 짓을 하게 되거나 화가 나고 다툼이 생길 때 라거나

가끔 혼자 있으면서 추한 짓거리를 하려고 하다가도 어김없이 늘 이 친구를 떠올리게 되면서 포기하거나 계면쩍어지기도 하는데 

그런게 무슨 이유인지 잘 모르겠지만 어쩄거나 그런 기분이 들게 하는 이상한(?)친구이다.

 

그렇게 중랑천을 걸으면서 전화기에 대고 나쁜 짓을 하려다가도 니 생각만 하면 못하게 되더라고 했더니 고맙단다....

가끔 아주 가끔 내가 먼저 소식을 전하게 될 때도 있는데

그럴 때 마다 이 친구는 며칠 꿈자리가 사나워서 전화를 해볼려고 했던 참이란다...

 

아주 오래 전 우리 둘이 확 결혼을 해버릴까 라고 툭 던지는 말에 

얼굴 붉어지던 친구인데 오히려 그 친구의 가족들 반대에 충격을(?)받아 

내가 미리 돌아서버려서 그 친구에게는 배신을 한 남자가 되어버렸지만...

 

그 친구의 가족들도 나를 많이 좋아했었기에 쌍수를 들고 환영하리라 믿었던 난 보기좋게

가족들에게 퇴짜를 맞아버렸고...

글쎄... 그런것과 결혼(?)이라는 것은 별개인 모양이어서 한동안 바보가 되어버렸던 기억이다...

 

글을 참 잘 쓰는 친구인데 지금 내가 끄적거리며 흉내를 내는 글들이 그 친구의 영향력을 받아서이다.

일평생 도움이 안 되는 남자친구였었는데 언젠가 한번은 나를 써먹으라고 했더니

죽지말고 기다리랜다.

 

언젠가는 한번 써먹어야겠다고

나처럼 저 먼 이국땅에서 맥 놓고 원 없이 걷게 해달라고...그러마고 약속했다.

 

그 친구가 지금의 애기 아빠와 결혼하기 전 한사코 좋아한다고 하던(아마도)남자가 그 친구에게 보냈던 글이다.

 

나도 애인이 있었으면 좋겠다

 

나도 애인이 있었으면 좋겠다

단풍나무 아래서 차마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실실 소녀적 웃음을 날리고 서있는---


하늘이 너무나 파랗다고 다른 용건도 없이

전화통 너머에서 깔깔거리기만 하는---


문득 어머니가 생각난다며

내 팔을 붙들고 펑펑 울어 젖히기도 하는

그런 애인이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제 손을 잡기 전에 먼저 내 손을 잡아 주거나

제 손을 잡도록 이유를 만들어 주거나

내가 제 입술을 힐끔거리기만 할 때

어두운 골목길에서

문득 입술을 내밀고 서있기도 하는---


사람의 마음을 짐작해 주고 아껴주는

그런 애인이 있었으면 좋겠다


지나가는 아가씨보다

제가 더 이쁘다고 뻑뻑 우기기도 하는---


철이 든 것인지 들다만 것인지

나처럼 곧 오십이 되어가는, 조금 뻔뻔한

그런 애인이 있었으면 좋겠다


먼 바닷가를 거닐며 분위기도 좋은데

누가 내게 부당함을 행하면

두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서서 감싸주는


언제나 어디서나 우리편인 아줌마!

그런 애인이 있었으면 좋겠다


지 핸드백에서 담배가 발견되고

내 담배 몇 개비도 더러 없어지던데

담배는 절대 안 피운다고 우겨대는---


나처럼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를 좋아하고

더러 감자처럼 생긴 머스마 김용택님 보다 더 고운 시를 쓰기도 하는---


그렇게 억지도 쓰고 시도 쓰는

그런 애인이 있었으면 좋겠다


팝송도 많이 알고 시사에도 밝으면서

모처럼 침 튀기며 어설픈 논리에 바쁜 나에게

따지지 않고 차라리 졸고 앉아 있는---


발뒤꿈치 꺼칠하고 배가 조금 나왔어도

나에게는 한없이 사랑스러운

그런 애인이 있었으면 좋겠다


찬 소주잔을 들 때의 무표정은

허허로운 벌판을 닮아 애달프고

강 언덕에 세워 두면


가슴 아픈 그림이 되고 마는

봄에는 나비같고 가을에는 꽃잎같은

그런 애인이 있었으면 좋겠다


술잔마다 생각나고 보고 싶어서

가슴이 답답하다는 핑계 한마디 던져 놓고

홀로 거리를 걷게 하는---


낮에 만났어도 밤새 보고싶은

그런 애인이 있었으면 좋겠다


나에게 햇볕같고 바람같고 구름같고

흐르는 강물같은 애인이 있었으면 좋겠다.


무슨 이별의 징후가 전혀 없는데도

바라보면 안타깝고 애 타는 사람!


그녀에게 내가 눈물로 남기 싫고

결코 내 눈물이 안 될 사람!

그런 애인이 있었으면 좋겠다


나에게 꽃 보다 아름답고 달 보다 고우며

갈대밭에 숨어도 느낌으로 찾아지는---


끝까지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는 도도한 콧대의---

더 이상 말고 이제 내 끝인 사람일

그런 애인이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갈 때 절대 남겨두고 갈 수 없건만

그래도 가끔 내 생각하라고

겨우겨우 두고 가는---


내 상여를 먼발치에 바라보고 서서

'다시 만나자'고 말해주는

그런 쓸쓸한 사람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애인,

생각하면

애달파지고 마는

그런 사람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에잇~

에나 진짜...나도 이런 애인 하나 있었으면 참말로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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