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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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서

도막난 밤잠의 기차여행

까미l노 2007. 11. 22. 00:50

비어있을 의자들이 주는 냉기

시골 다방 문을 밀치고 들어설 때 처럼

빈 의자들은 일제히 갸웃 고개를 비틀고

객실 안을 입장하는 나그네를 바라보겠지...

 

수많은...

알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의 체온을 싣고 달려서

누적되고 퇴색되어 여행의 설레임 혹은 불안한 감정의 파편들이 켜켜이 겹쳐있을...

 

봄의 동해는 7번 해안 도로의 철쭉꽃들을 부르고

삶이 버거운 친구의 목매인 노래소리를 따라

바다 비린내에 젖은 몸을 씻고 밤바다를 찾아 나섭니다.

 

이른 봄

벗은 여인의 나신처럼

관능적이라는 물고기 숭어가 올라올 시기입니다.

 

숭어의 몸매를 두고 어떤이는 그랬습니다.

밤 반딧불이 모여있는 개울에서 목욕하고 나오는

여인의 벗은 몸 같다고 그러던데

내 보기엔 일요일 아침 침대에서

늦게 자고 일어난 당신의 벗은 몸 같습니다.

 

여자의 벗은 몸 운운 했던 것은

불쑥 치민 욕정을 다스릴 길 없어서였고

당신을 데리고 제주도에 가서 갈치회를 먹고 싶어서였습니다.

 

사실 숭어는 몸매만 관능적이지

막상 벗겨놓으면 남자들은 싫어하지요...

잘 삐지는 여자들처럼 조금만 스트레스를 받으면

발라놓은 살점이 하얗게 변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갈치란 놈은 성질이 고약해서 꼿꼿이 서서 유영을 하는데

이놈을 살려서 서울까지 가져가기엔 난갑합니다.

그놈들 비늘로 여성들의 립스틱을 만들기도 한다던데

당신 입술에서 반짝이는지 보고싶어서입니다.

 

언제나 7번 국도를 타고 속초로 강릉으로

그저 생각없이 가다보면 경주가 나오고

거꾸로 그런 짓을 하다보면 강릉을 지나 낙산의 폭설에 갇혀버리기도 합니다.

 

오늘은 늘 그리하던 버릇을 버리고

기차를 빌려 영동선 플랫폼을 내려서니

산골짜기를 내달리던 북풍이 옷깃을 잔뜩 여미게 합니다.

 

주섬주섬 여행객을 내려놓고선

기차는 꽁무니를 씰룩이며

산과 골짜기 사이로 이내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제서야 내가 내린 저 기차가

겨우 객차 두 칸만 달랑 매단

귀여운 꼬마 열차였다는 사실을 알게됩니다.

 

표을 팔거나 개찰도 없는 앙증맞은 간이역

한 주먹에 들어올 것 같은 역사는

풍경이 주는 적막감을 배가시키기도 합니다.

 

"승부역은 하늘도 세 평 꽃밭도 세 평"

--------- 어느 늙은 역원의 시

 

 

문득 지축이 울리고 열차 한 놈이 시근벌떡 달려와 멎노니

겨울 한 철만 운행 한다는 그 요란한 '눈꽃 열차'로

갑자기 산골 간이역이 소란스럽습니다.

 

경북 봉화군 석포면 오지 강변역

이 열차가 외지와 연결되는 유일한 매개 노릇을 하니

승용차래야 석포에서 남쪽으로 30리 험상궂은 고난장정 뿐...

 

1천미터 이상의 고봉들이 즐비한

산간 구릉지에 형성된 산촌입니다.

이마에 드리워진 수심 그늘만 지워낸다면

산양처럼 순박하고 질박한 산골마을 사람들이 살고있는...

 

황지에서 발원하는 낙동강이 지나는 이곳

그네들의 울적한 인생평론을 듣노라면

봄 산들은 한층 청명해지고  온 세상이 투명 영롱해집니다.

 

철길따라 낙동강 저 윗물결도 지나가고

기차에서 내리면 시골 반짝 시장도 열립니다.

 

아!

가보시게요?

겨울 한 철 눈꽃 열차가 지나가고 나면

늘 적막강산인데 지금 딱 가시면 참 좋을겝니다...

산간 산채나물에 탁주일배도 모르는 나 같은 문외한은

한이 되어 돌아와야하는 곳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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