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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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은지심

홀애비 밥풀꽃에 대한 보고서

까미l노 2007. 11. 22. 00:43

 

 

오버 깃 바짝 세우고
역사를 총총걸음으로 나선다.
일찍 퇴근하면 룰루랄라~ 즐겁게 장을 본다.

뒤따 큰 베개 두개
김치 한 포기
(아줌만 나에게만큼은 배추꽁지 자르고 쭉쭉 찢어서 무게를 단 후 국물을 담아준다)

라면 다섯개
불가리스 두줄
대파 한 묶음
양파랑 감자도 각각 한 묶음씩
계란 한 꾸러미

좀 많구나...
손이 모자라네~
들고있는 신문일랑 뒷주머니 꾸겨넣고

꽁치 통조림 두통
참치 캔 두개
토스트 한봉지

땅콩버터 한통
면도기 날 두 통
건전지

안되겠다...
다시가서 리어카 한대 밀고 와야지...

촌놈 출세 하는구나~
카트에 장 봐서 밀고 다니고
언젠가는 카트에 장 꾸러미 가득 담아싣고
얼라 태워서 둘이 밀고 다니고 싶더만
오늘에사 드뎌 혼자서나마 소원성취 허는구마이... 캑캑!!

캔 맥주 한개(극적인 비상시 대비 또는 접대용)
육포(남는건 산에 갈 때 비상용)
커피 사탕가리
프림...

파장이라 싼 단감 한 봉지
사과도 싸니까 덥썩
밀감은 비타민 씨 보충하게 넉넉하게~

어라?
욕실바닥 깔개가 예쁜게 있네...
냄비도 중간 크기 한개 주워담고
도마가 예쁜 것도 남자 눈에 띄는구나야...
기타 주섬주섬...

택시 있는 곳을 그냥 지나친다.
택시비로 두부를 사면 식단이 푸진데 뭣하러 택시를 타~
차라리 그 돈으로 술을 마시지...이히히


폼은 안났을테지만 그럭저럭 이고 지고 집까지 와서
이넘의 현관키는 왜 빙글빙글 돌기만하고
한번에 딱 못 들어가는고야?
아마 굶은지 오래되서 잘 안되는걸꺼야...

다시 자동 조명등 불 들어오게 두리번 해 주고
문 따자마자
후다닥~
(지랄거치 꼭 집에 들어서기만 하면 쉬가 마려운지...)

물내림과 동시다발로 손 씻고
반드시 한쪽 발에 딸려나오는 욕실 슬리퍼 건너편 벽으로 휙 날려보내며
쌀 푸대 들쳐매고(쌀통을 사? 말어? 일 주일 째 목하 고민 중)
조심조심 쏟아붓는다...

빡빡 문질러 씻어라~
쌀눈이 쌀 바가지 안에 있는거지 어디 가겠어?

쌀 뜨물 부어서 작은 국냄비부터 얹고
감자 깎고 양파 까면서
자꾸 도망가는 마늘알 다시 붙잡아다 콩콩 찧으며
중간 밸브 열고 가스 불 켠다.

밥솥을 선택하랴 냄비를 선택하랴~
잠시 고민하고
에라~
내일 아침은 누룽지 먹기로 작정...
오늘 저녁은 바닥 태우는 냄비 밥이다.

소금 흩뿌려서 프라이팬 올리고
게란 두개 마빡에 팍팍 깨뜨리고
대파 송송송 썰어서
다이빙 한꺼번에 하기좋게 가까운 곳에 대기시켜
꽁치 통조림 따니 고픈 배가 슬슬 아우성이다.

여보~
전임자여!
당신 가끔 아주 가끔 밥 해줄 때 그때도
난 이렇게 배고픔 참을성이 참 많았쟈?
차라리 그때 내가 종종 해 주는건데 그쟈?

미안타~
부디 잘 살아라...

밥냄비 얹음과 동시에
바지를 털면서 벗고 윗도리 위로 휙 뽑아 벗는다.
이넘의 양말 한짝은 꼭 개끔발 뛰게 따라온다.

스피커 한쪽 부엌으로 끌고 나와
음악 쿵쾅거리게 틀고
룰루랄라 아침 먹은 것 설겆이 하면서 담배 한대 피워물고...

밥 기다리는 시간과 반비례하는 것
그 시간이 길면 길수록 밥은 맛있다~
밥 타는 내음새 솔솔~
이 눔의 찌개 끓는 소리는 언제 들어도 리드미칼 하다니깐두루~

흐음~ 내일 아침 누룽지는 최상급 이구먼...


젖갈
김치찌개
계란말이

일식 오찬 이구나...
조금 과욕했다.
홀애빈 일식 삼찬이면 그만인데...

연우야!

오늘도 습관적으로 우편함을 한번 뒤집어 봤다.
니 아니래도 딱히 뭐 사람에게서 온 편지가 있을리 만무하지만
늘 그래도 하는 기대감이지...

난 아무런 희망이 없는 듯 하면 불안하거든...
이정도의 내 희망이란 것조차 너무도 커서
염치불구 해야할 정도의 바램은 아닐테지...

연말 소득공제 내역서만 달랑 와 있네...

오늘은 꽤 추웠다.
매번 이맘 때 겨울이 오면 혼자 사는게
참 쓸쓸하다는 느낌이 드는건 왜서지?
나 태어난 여름날에나 춘 삼월엔 괜찮던걸...

그래서 오늘은 장 꾸러미 든 손에
별시럽게 꽃을 한번 쥐어 봤다.
내 집안 쿰쿰한 내음이라도 좀 덜어 볼까해서
모퉁이 돌아오다 국화 한 묶음 샀더랬다.
대궁 중간 발목을 싹둑 잘린 자노랑색 소국이다.

을씨년스런 내 집 풍경 만큼이나
모가지 데롱거리며 걸려있는 저 모습도
내손에 들렸었던 그 매무새 만큼이나 괜스럽겠지...

연우야!

올 겨을에 지리산에 안 갈래?
폭설로 뒤덮인 그 고사목 능선에서
나랑 함께 반드룽 해보지 않으련?

나도 눈바람 몰아치는 지리산 능선에 내 편일 사람이랑 한번 서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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