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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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은지심

바늘구멍만한 자신의 하늘

까미l노 2018. 5. 21. 22:59

이제는 바늘구멍만 하더라도 자기 하늘을 마련해 놓고

올려다 보고 살아가야할 나이라고 그랬다.



Cobalt moon - Ikuko Kawai




한때는 혼자 살아내기로 작정하고

숱한 밤들을 컴컴한 거울 속에 들어가앉아 얼마나 마음을 숫돌에 갈아댔던가

어떤 경우든 타인에게 기대지 말고 그때마다 나를 쓰러뜨리면서...


"나를 만나기 전부터 말인가?

...끄덕끄덕...

확실히 나를 만나기 전 부터?

...끄덕끄덕...


아무리 고개를 끄덕거려도 

그 대목에서는 쉽게 이해가 되질 않아

또 다시 고쳐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빈틈없이 도사리고 앉아 반 묵묵부답식으로

고개만 끄덕일 뿐,

내게 저항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헤어질 각오를 단단히 하기라도 한 것이리라...


그런데 어쨰서 나를 택했던 것이지?

...    ...   ...

거기서도 마침내 대답이 없어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답이 없는 경우는

대개 그렇다는 뜻이므로 더 이상 물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서였고

나머지는 이제부터 각자 알아서 정리들을 해야할 터이었다.

무언가 눈에 띄는 물건이라도 집어던지는 비참해질 내 모습을 보기 싫기도 했지만.....


"그런데 꼭 이런 식으로 헤어져야 하나요?"

그런데 꼭 이런 식으로 헤어져야 한다니...

할 말이 남아있단 말인가?


"버릴까봐서..."

버릴까봐서?

사실대로 말했으면 버릴까봐서 두려워서 그랬단다.


"이제와서 당신이 왜 그런식으로 내게 왔던가는 묻지 않기로 하지."

"생각해보니 어리석은 질문인 것 같기도 해."


하지만 당신이 속으로 품고 있는 현재가 어떤 상황인지는 되도록 정확히 알려줘야

나도 어느듯 내게로 돌아가 대포라도 쏘아야 할 시간 같아서 말이야...


"가지 말아요"

한 번 안아주면 안되요?"


아무리 오래 만났다한들

결국 헤어지고 나면 그뿐인 것을

시간의 밀도 때문에 입자가 굵어 지랄같이 더디 지나가던 시간들


매사 부정적이고 불평만하던 유년도 거쳐

요즘보다는 한참 더 늦게 오던 시절의 사춘기


애꿎은 시간의 더딤만 탓했던 시기가 지나

시간의 말도거 현저히 낮아져 차라리 알갱이라고도 할 수 없을만치

가는 입자의 모래가루 같은데 젊었을 떄 그토록 닿고 싶었고 좋아했던 중년이라는 말...나이


즐겨(?)보지도 미쳐 느껴본 적도 없었던 것 같은데 어느새 황혼이던가...

이제는 시간이 그냥 아무런 여과 없이 함부로 지나가고 있다.


상자 같은 곳에서 아가리 보다 크게 쥐어 손이 빠져나오지도 못하는데

한꺼번에 많이 끄집어 내어 써버릴 작정으로 보냈던 시간은

이제는 몇 안 되는 알갱이로만 남겨져 아껴 하나씩만 꺼내 쓰는 것 같다.


내 손으로 밥도 해주고 잠자리도 봐주고

아침에 덜그럭거리며 밥을 하고있으면

잠에서 깨어난 여자가 문지방에 앉아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 눈빛이 마음에 걸려

왜 그런 눈빛으로 쳐다 보느냐고 묻지 말았어야 하는데...


"아저씨 참 정나미 떨어지는 사람이네요."

...    ...     ...


"되게 잘 해주는 척하고 있지만 실은 자물쇠를 채우고 있어서

어디 비집고 들어갈 틈을 보이지 않는 남자라구요."

...    ...    ...

"도대체 왜 그러는건데요?"

...     ...     ...


"아저씨 같은 사람은 분명 독재할 스타일이예요."

...     ...    ...


"그게 다 잘난 척이지 뭐에요?"

.......    ....     ....


"실은 밴댕이 소갈머리를 가졌으면서 말예요..."

...    ....    ....


헤어짐은 이렇게도 어려운 것인가?

만남보다 잘 헤어지는 좋은 이별이라는 것은 정말 없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