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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은지심

살아온 날들 보다 턱없이 짧은

까미l노 2017. 6. 23. 12:59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고 싶은 헌나라의 중늙은이인데

겨우 그마저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산다.


죽을 때가 될만큼 늙어지면 잠이 없어진다는 말이 있던데

나는 잠이 없기는 하지만 자고 나면 세상이(?) 좋아져있는 것 같아서 잠에 드는 것을 참 좋아하고

죽음처럼 깊은 잠에 빠져드는 것이 소원처럼 그랬었다.


이젠 세상 떠나고 나서야만 그 소원 이루어 지려나 싶고

점점 더 늦은 잠자리와 이른 깨임에 익숙해지나 싶어 지랄맞다...


살아온 날들보다 턱 없이 적어진 떠날 시간이 남았는데

죽으면 썩어 흙 속으로 들어 그동안 못잔 잠 싫컷 자기야 할테지만

한평생 시체처럼 반듯이 누워야만 이루어지던 잠이 요즘엔 밤새 뒤척이는 옅은 잠만 자게된다.


잠을 설치니 늘 깬 아침이면 전에 없이 부스스한 몰골에다 개운치도 않아진다.

밤에 잠이 모자라서인지(?) 한낮의 졸리움에 까무룩해지기도 한다.


누구에게나 다 그러하듯 제대로 예고도 없을테고 어차피 준비없이 가야할테지만

나 떠나고 난 후 속 시끄러울까봐 지레 겁(?)먹고 할 수 있을만큼은 준비를 하면서 산다.


누구든 빚 없는 사람 없다지만 세상 떠날 때 빚 남기는 거 싫어

버리고 비우고 내려 놓은다는 것들을 오직 이것들에 할애한다.

빚 독촉에 시달려본 적은 없지만 받을 건 잊어버려도 누구에게 줄 것이 남았다는 건 참 싫은 것이다.


홀가분하게 만들었다.

이쪽 저쪽 기울어짐 없이 공평하게 제로를 만들었다는 것

내 선택으로 온 것은 아니지만 올 때 빈손이었다가 갈 적에도 내 선택 아니든 말든 빈손이 되는 것


살면서 늘 괜시리 노심초사하며 살아왔던 것

신의 신용...

나를 뒤져보면 참 대단하다 싶을만큼 꽤  관리를 잘 하며 살아왔다 싶어 참 행이다.

손가락질 받지 않은 채 살아낼 수 있었던 게 은행으로부터의 신용상태였으리라 싶다.


누구는 그랬다.

까짓 파산신청이니 신용회복 지원이니 그런 상태로 만들어버리라고...

몇 번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만 지랄같은 까칠함 때문에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고

꼴에 1등급 2등급 같은 따위에 신경이 쓰여 여태 2등급 아래로 내려가게 만들지 않은 채 살아왔다.


이 따위가 다 무슨 소용있으랴만 그렇잖아도 깊이 들지 못하는 잠인데

이마저도 못했다면 매양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을 것 같았거든...


내 곁에 값나가는 것 전혀 없고

누가 내게 빚 갚으라 그럴 일 만들어두지 않았으니

어차피 떠나면 깊이 들 잠이지만 이제부터라도 좀 죽음보다 깊이 잘 잤으면 시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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