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아마데우 드 푸라두도 동경했던 곳 본문
중세부터 유럽인들이 세상의 끝이라고 믿었던 스페인 북서쪽 피니스테레 절벽
리스본행 아간열차 속 프라두가 동경했던 곳
그러고 보니 포르투칼 리스본에서 북쪽 바닷길을 게속 올라가면 피니테레가 나오는데
도보여행으로 걸어갔으면 되었을텐데....
사람들은 흔히 무언가를 표현할 때 극상의 단어나 낱말을 사용하는데
세상에서 제일, 세상에서 가장이라는 표현을 한다.
생애 가장 감명깊게 들었던 음악
가장 감명받았던 영화
가장 감명깊게 읽었던 책
가장 존경하는 위인
심지어는 가장 맛있게 먹었던 음식까지....
난 도통 그런 것들과는 거리가 멀었었고 심지어는 모임에서 노래들을 부를 때
그 흔한 18번 한곡 못 정한 채 헤매이었으니까...
그런데 지금도 다른 것들은 아직 없지만 한 권의 책
읽고있는 이 책이 내겐 너무도 신기할 따름이다.
섣불리 단언하건데 내 생애 이토록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온 책은 없었다.
아주 생소한 스위스사람 이름과 포르투칼사람 이름과 도시 같은 것들이 나오는데
외국 소설이지만 번역해서 읽는 것이니까 내용은 그럭저럭 이해하겠지만
좀처럼 책 속에 나오는 사람들의 이름을 정확하게 기억하면서 읽히지가 않는데
이 책은 어지간히 제대로 기억해지면서 읽어지거니와 다소는 어려울 수도 있는 책이기도 한데다가
재미가(?)있거나 슬퍼거나 신나거나 뭐 그렇고 그런 류의 소설도 아니다.
그런데 여러날에 걸쳐 몇페이지씩 조금씩 읽는 것인데도
앞쪽의 읽었던 내용들이 생생하게 기억 되어지고
흥미진진하거나 그 다음이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해 하게 만드는 내용이 전혀 없는데도
이 책을 펼칠 때마다 너무 설레이는 건 무슨 조화일까....
주인공이라고 하기엔 다소의 무리가 있겠지만
책 속으로 나를 끌고 다니는 사람은 나와는 전혀 다른데
꼭 내가 그렇게 할 것만 같은 행동을 하고 그가 찾아 다니는 책 속의 또 한사람 역시
억지로 끼워 맞출래도 나와 비슷할 수는 없는데도 내가 그였던 것 같기도 하다....
그는 기차를 좋아했고 역과 플랫폼까지 좋아했었고
내가 멍하게 앉아 사멸하는 해를 바라보던 곳
세상의 끝이라는 피니스테레를 동경하며 살았던 포르투칼 사람
그가 책 속의 책에서 했던 말
고등학교 졸업식이 있었던 대강당에서....
"난 대성당이 없는 곳에서는 살고 싶지 않다.
유리창의 반짝임과 서늘한 고요함과 명령을 내리는 듯한 정적이
오르간의 물결과 기도하는 사람들의 성스러운 미사가
말씀의 신성함과 위대한 시의 숭고함이 필요하니까 나는 이 모든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자유와 모든 잔혹함에 대항할 적대감도 필요하다.
한쪽이 없으면 다른 쪽도 무의미하다.
아무도 나에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하지 말기를."
그를 불경한 사제라고 교사들은 생각했었다.
그가 사랑한 여자들 중 가장 사랑했을 법한 단 한사람은
서로가 사랑했었으니 짝사랑은 아니었으면서 아무런 행동(?)조차 없이 오직 사랑만했었는데 ...
평생 내가 좋게 생각하는 이성상의 여자인 것 같다.
난 생 처음 책을 정말로 아껴가며 조금씩 읽고 있고
다 읽은 후 다시 한 번 더 처음보다 더 찬찬히 음미하면서 읽을 생각부터 든다.
한사코 연이 닿지 않으려고 외면하다가 편해진 사람
평생을 여자고등학교 국어샘으로 사셨던 분이 선물로 보내주신 책
(내가 가장 오래 사랑했었고 내게 가장 많은 분노를 안겨 주었던 사람의 고딩시절 샘)
스위스 사람 파스칼 메르시어라는 사람이 쓴 책 '리스본행 야간열차' 을 읽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