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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은지심

처깽험 처음이자 마지막 충격

까미l노 2016. 8. 10. 00:24


                                                                                      

그 시절 그 아이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했으면서 더도 덜도 말고 사십까지만 살고 싶다고 했었다.

그로부터 어언 하고도 벌써 40여 년도 더 지나버렸고 딱 그만큼만 살자고 한 날에서조차 20 년이 지나가려 한다.


그때 그 아이는 사십을 넘겨 더 사는 것이 지랄 같은 것일 거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구름버섯이다.

                                                                 여느 여인의 화사한 주름치마 무늬처럽 곱다.




죽은 줄 알았던 비목나무에 오색 딱따구리 부부가 열심히 집을 짓고 붉은 덕다리 버섯이 나무를 분해하기 위해 잔뜩 붙었었다.

그러다 어느날 딱따구리 부부가 집을 버린 채 떠나고 붉은 덕다리 버섯도 하나 둘 말라가면서 땅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왜그런가 유심히 살폈더니 죽은 줄 알았던 비목나무에 맹아가 자라기 시작하면서 딱따구리 부부와 덕다리 버섯에게

"나 아직 안 죽었다고" 말했던 것이다.


딱따구리 부부와 덕다리 버섯들이 나무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면서 떠났는데...

지금 이 나무도 아직 다(?)죽지 않은 것 같은데 버섯이 잔뜩 달라붙었으니

과연 이 나무도 버섯들에게 아직 안 죽었으니 내 몸에서 떨어져라고 할까?


                                                                                    붉가시 나무와 산벗나무의 사랑



                                                                                                     푸른...

                                                                                            너무도 푸르고 푸른




그 아이를 여인이 되기 전 중학교 2학년 어느무렵 동네에서 처음 만났다.

그 아이의 언니와 나의 누나가 동기였었고 그 아이의 남동생이 나 보다 조금 어렸지만 낚시며 카드 놀이를 함께 하곤 했었다.


그 아이의 동생을 찾아 자주 그 집에 놀러 갔었던 것은 그 아이의 언니들도 동생도 나를 좋아했었으리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했었으리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사람을 대하는 방법의 차이에서 오는 내 착각이었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동네 아이였을(?) 때와 믿음이 가는 듬직한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 들이는 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을게다만...

그 아이는 일생 내게서 두 번의 대포를 맞았다고 했었다.


나는 그 아이 때문에(?)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일 충격을 받았었고...

내 충격은 순전히로 치자면 그 아이 때문이 아닌 그 아이의 형제들 때문이었을 테지만

당시의 내 충격은 그 아이에 대한 믿음의 배신감인(?) 줄로만 알았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 아이는 심지가 무척 굳었으므로

가족의 핑계를(?) 그 아이의 입으로 듣는 순간 나로서는 충격이었다.


중학생 때 만나서 성인이 되고 사랑이라고 믿었을 때

나의 누나는 그 아이의 집이 가난하다고 싫어했지만 나에게 내 가족이랍시고 아무도

내 미래에 왈가왈부할 사람은 있을 수 없었으니 그 아이의 심지를 믿었던 나로서는

나 역시 그 아이의 가족의 일원이 될 수 있다는 것엔 그의 가족들 사이에도 무조건 무사통과가 될 것이라 여겼다. 


형제들이 나를 반대하더라는 무심한 듯 이야기 하는

그 아이는 여태 내가 알고 믿었던(?)아이는 아니였었다.


사람 성향이 그렇고 그렇다 보니 내 스스로가  죽을 때 까지 두 번 다시는 좀처럼 충격 같은 걸 받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때 내가 받은 충격은 그 아이도 다른 누구도 아무도 알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냥 배시시 웃고 말았으니까...


나중에 이야기 할 수 있었을 때 형제들의 반대 그게 무슨 상관이었냐고 하던 그 아이...

당시 내가 알던 그 아이의 형제간들은 가난했어도 화목하고 행복한 가족으로 보였었기에

형제들의 반대를 내게 이야기 했을 땐 반대하니 어쩌지? 정도로 들렸었다. 


삼류 소설의 이야기처럼 그냥 둘이만 좋으면 어디 멀리 가서 살 수도 있겠지만

그 아이의 남동생과 언니 둘도 다 반대라는 말을 들었던 나로서는 오직 충격적인 황당함만 느꼈을 뿐

그래? 나를 싫다니 그럼 그만 두지 뭐 라는 반발심 때문에서라도 모든 것을 포기하기로 작정했었다.


                                                                        

                                                                                  나를 보고 후다닥 도망가기 바쁜  제주 비바리뱀


                                                            어쩌자고 떨어져 내린 곳이 하필이면 바위 위람...

                                                비가 내리고 낙엽이 조금 쌓이고 흙이 날아와 앉은 움푹한 바위 위

                                                                       붉가시나무의 도토리가 싹을 틔웠다.

                                                                               얼마나 살 수 있을까?

  


그 아이는 내게 대포를 두 번 맞았다고 했었다.

처음 내가 받았던 충격으로 인해 포기했던 첫사랑을 그 아이는 내가 떠난 이유였다고 생각했기에 한 번의 대포를 맞았다고 느꼈었고

이혼 후 다시 만나게 된 그 아이는 여전히 나를 기다렸었고 나는 또 그런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었다.


이혼 후 삶이 팍팍했던 내게 다가온 뜻밖의 사람을 만나고 있었기에 그 아이와 나는 또 다시 맺어지지 않게 되었다.

서둘러(?)결혼하던 그 아이의 결혼식에서 그의 언니는 일부러 나에게 봐라 좋은 신랑감 만나서 결혼하지 않느냐고

너랑 맺어지지 않은 게 참 다행이게 되었다는 투로 말했었다.






어느날엔가 불쑥 고향을 떠나 다른 지방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나의 하숙방에 찾아왔던 그 아이

단단히 각오를(?) 하고 왔으리라는...

눈빛만으로도 내 심중을 알아채던 그 아이

심지가 하도 굳은 아이라 그 아이의 생각 행동 결정 같은 것을 나는 무조건 믿는 편이었다.


지금도 나는 그 아이의 순결을 믿는데

그 아이는 아직도 내가 동정이었던 것을 믿지 않을 것이다.


그때 지나가는 투로 내게 그렇게 말했었다.

처음인데 어떻게 아는 것이며 가능했느냐고...


그날 그 아이를 안았을 때의 첫경험 남자 아이의 당황했던 기억을 생각하면 

내가 동정이 아니었을 것이라고 믿던 그 아이의 말 때문에 지금도 나는 억울하다....


그때 당시 아무것도(?) 모르던 사춘기 청소년 시기였고 그 아이는 순결 따위에 별 관심이 없었지만

남자 아이들에게는 여자의 순결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 같은 것과 첫경험이나 동정에 대한 자부심 같은 것이 있었다.




그 아이는 이재에도 밝은 아이이고 책임감 강하고 현명하여 현모양처가 능히 될 수 있을 여자였었고

머리가 좋아 공부도 잘했었는데 그 아이랑 내가 맺어졌더라면

아마도 내 등쌀에 못 이겨서라도 그 아이는 글 쓰는 사람이 되었을테고

나는 그 아이의 지혜를 얻어 꽤 돈 잘 버는 유능한 남자가 되어 둘이 온 세상을 여행하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도 그 아이와는  어릴적 고향 친구로 만날 수가 있는데 그 아이가 어른이 되어 부르던 노래는

다시 또 누군가를 만나 사랑을 할 수가 있을까 라는 가사의 노래를 부를 때면 그 목소리는 측은지심이었다.


그 여자는 잠을 잘 못 자는 여자이고 불면의 밤을 평생 보내는 여자이다.

그런데 잠을 잤으면 좋겠다와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고는 싶어해도 

잠을 자야 되는데 라고 못 잔 잠을 내일을 위한 걱정으로 삼는 여자는 아니다. 


배신이라는 대포를 쐈던(?) 어릴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럴 것이다만

내 심중이든 의중이든 글이든 말이든 눈빛으로도 알아내기에 내가 삶에 서툴다는 것을 걱정 해주기도 한다.


내가 그 아이에게 미안해 했던 기억은 아주 오래 전 어느날의 여행

각오를 단단히 하고 나와 함께 여행을 떠났던 그 아이를 편하게 안을 수 없었던 기억

 

내 삶의 지랄 같음과 그 아이의 삶의 지랄 같음이 어쩌면 일맥상통했었기 때문에 떠난 여행이었다만

무슨 성인군자나 윤리 따위 같은 건 아니었는데 내가 동물적인 남자이면서도 내 몸은 내 의지대로(?) 움직여 주지는 않았기 떄문이었다...



그 아이에게 일생 단 한 번만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떠날 때 내 생이 그나마 홀가분하고 편해질 것 같다.

그 아이는 내게 빚을 주지 않았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그 아이에게 좌우지간 무언가 빚을 안고 있는 느낌이다.


어릴 적 농담삼아 웃으며 내게 던졌던 그 아이의 말

일생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던 그 말이 기억 되어지는 이 밤에

언제였던가?

반드시 일생 한 번은 도움이 되어 주겠노라고 덜컥 말 해버렸었다.


아마도 지금 전화를 걸어 본다면 분명 아직도 잠 못 들고 있을 그 아이

죽기 전에 아주 잠시만이라도 평화롭고 편안함을 가져보기를 할 줄 모르는 기도로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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