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한 길 사람 속 열 길 물 속(속담시시비비) 본문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진주 수복빵집의 찐빵
속담에 시비 걸려는 건 아니지만...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
오늘 겨우 한 길 내 속을 들여다 본 적도 없는 사람에게 들은 것 같은 느낌
아니 땐 굴뚝에는 연기가 날 수 없다 같은 속담은 시시비비 할 일조차 없을 것 같은데
이노믜 한 길이든 열 길이든이라는 속담은 시비거리가 꽤 있을 것 같다.
한 길 사람 속은 알 수가 없다고 하는 사람이라면
스스로의 기대치 때문은 아닐까?(매양 모든 사유 사람마다의 차이는 분명 인정한다)
앞 차 뒷 유리창에 붙은 '다 내 탓이로소이다"처럼
내 탓인데 나는 개의치 않을려고 앞유리창이 아닌
따라오는 뒷차만 볼 수 있는 뒷유리창에 붙여놓듯...
내 뒷통수는 한 길은 커녕 채 한뼘조차 되지 않지만 스스로는 볼 수가 없다.(혹 거울 앞에서 뒷통수에 거울 비추면 보인다 그럴라)
살면서 가끔 뒷통수가 뜨뜻해져 올 때 더러 있었는데 타인을 속일려다 그리 된 것은 결코 아니고
타인의 시선 보다 내 스스로의 시선 때문에(자격지심) 괜시리 그랬다는 것이다...
뒤집어서 열 길 물 속은 너무 깊어 들여다 볼 생각조차 하지 않거나
애초 기대치를 높이려는 욕심조차 가지지 않았을 터,
가소로울 한 뼘이나 한 길 정도려니 스스로의 기대에 대한 실망 때문에 만든 탓은 아닐까...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한다는 것
사기를 당한다는 것 또한 뒤집어 보면 스스로의 욕심에 기인한 이유가 많고
상대방을 제대로 몰랐지만 스스로의 마음 속에 당연 이저러 할 것이다를 설정해두고서
알 수가 있네 없네 라고 자기 기대치에 대한 실망을 타인의 탓으로 돌리려는 짓...
열 길 물 속은 보이지 않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미루어 짐작 가능하다
한 두 마디의 글줄이나 대화면 겨우 한 뼘의 뒷통수
조금 길다고 한들 겨우 한 길 사람 속 그렇게 짐작이나 파악이 안 되는 것일까?
그래서 나는 한 번 믿으면 끝까지 믿고 처음부터 믿지 않기로 작정했으면 영원히 믿지 않는 것일까?
옳다 그러다를 말하고 싶은 건 결코 아니다.
틀리다 다르다 조차도 아니다.
스스로의 믿음에 대한 확신도 없으면 자기 자신이 아닌 타인의 탓을 하지 말지어다...
내 뒷통수는 하도 못 생겨서 평생 마음에 들어본 적이 없고(아무리 고급 이발을 한들)
겨우 한 뼘 뒷통수 죄 까뒤집어져 있을 터인데 보이고 안 보이기를 알 수가 있고 없기나 할 게 뭐가 있을꼬?
단 한개가 마음에 차지 못하면 아무것도 성에 차질 않아하는 사람이니
내 한 길 인간 속인들 알 수 없거나 안 보이게 해둘 게 전혀 없다.
잘 못하고 잘 안 하지만 내뱉은 말 휘갈긴 글은 결코 주워 담지도 지우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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