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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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반데룽

산다는 건(왜 사느냐고 묻거든)

까미l노 2015. 6. 20. 16:58

            

                                                  

 

 

다른 사람의 기억에서 잊혀진다는 것은 잠시의 섭섭함일테지?

아닌가?

나의 경우는 섭섭함은 잠시일 뿐 차라리 까맣게 잊혀지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잊혀지지 않고 누군가 여전히 가끔이라도 나를 기억한다면 오히려 슬플 것 같은데...

 

 

 

달팽이가 나뭇가지에 오르는 이유는 뭘까?

스페인 산티아고 길에서도 하얀색 껍질의 식용 달팽이들이

(한국에 서식하는 집을 달고 살아가는 동양 달펭이와 집이 없는 민달팽이 두 종류) 

무수히 떼로 나뭇가지에 달라 붙어 오르는 것을 봤는데 천적을 피해 올라간다고 하기엔 공중의 새들에게 쉽게 노출 될 것 같고...

 

가지의 끝까지 오르고 나면 더 이상 기어 오를 곳이 없어 몸을 비틀고 촉수를 더듬어 사방을 휘 젓는다.

어떤 녀석들은 아주 키 큰 나무 꼭대기까지 기어 오르기도 한다.

 

저들도 어떻게든 살아내기 위한 몸짓인 것 같기는 한데...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이 있다만,

몸이든 마음이든 현실에 힘들어 하는 사람에게듣기에 좋은 위로라도 되라고 하는 말이겠지,

 

난 상처에 약도 바르지 않고 보통의 남자들이 그러한 것처럼

어지간해선 병원에도 가지 않는데 어디 몸이라도 불편해지면 위험을 느낀 달팽이처럼 몸을 잔뜩 움츠리고는

마인드 컨트롤을 발동하듯 이 시간이 후딱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아주 미련스럽기도 하지만 좋게 표현하면 자가치료이고 면역력을 높이는 짓이라고 위안 삼기도 하는 셈이다.

산다는 건 아차피 모두가 다 스스로의 책임이고 자신의 탓으로 생기고 이루어진 것 일테니까...

 

 

산다는 건 달팽이처럼 저렇게 치열한 것이겠지?

더는 갈 곳이 없어지면 몸을 되돌려 팔 다리도 없는 갸날픈 몸뚱아리로 나뭇가지를 단단히 감싸쥔 채 왔던 길을 되돌아 가는 것이리라,

 

인간은 절대 왔던 길을 쉬 되돌아 가지를 않는다.

미련스럽게 끝까지 부인하고 완강하게 거절타가 스스로의 능력치가 한계에 부딪혀야만 비로소 후회를 하면서 되짚기를 한다.

 

왜 사느냐고 묻는다면 되돌아 가기 위해 산다고 해야 할 것 같다...

 

 

                                                                      

                                            달팽이 먹이 먹는것 보셨나요.

 

 

 

 

                                                     잠자는 개구리 등타고 넘어가는 달팽이 포착                            

                                                                    위5장은 다른 사람의 사진 옮겨온 것임

 

 

 

 

 

 

 

 

벌 나비 꼬시기 명수

수국처럼(불두화) 가장자리에 커다란 가짜 꽃을 잔뜩 피운 산수국들

처음엔 파란색이었다가 점점 노랑색 연한 주황색들로 변화를 하는 속임수 전문 꽃

 

부모가 물려준 조그만 생김새로는 도저히 살아갈 수가 없어 택한 생존방법이 진짜 꽃 테두리에 가짜로 큰 꽃을 피우는 것이다.

벌과 나비를 불러 모으기 위해 옷도 자주 갈아 입는 꽃이다.

 

 

널 아무데나 팽개펴버린(?) 니 부모 탓이니 순전히 니가 스스로 택한 니 탓이니?

만 5살이 될 동안 아스팔트의 틈새에서 태어나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는 소나무 한 그루

언제까지 저 자리에서 있을지 더 자라 덩치가 커지면 결코 저곳에서는 더이상 살아갈 수가 없을텐데...

 

어른이 되었다고 어엿하게 솔방울까지 달고 있는데...

 

 

토끼풀도 살아가기 위해서는 덩굴이 되기도 한다.

풀 숲에서 태어나긴 했으나 키가 작아 도저히 햇빛을 쪼이지 못해 선택한 것이 햇빛이 보이는 곳을 향해 몸을 움직여 나왔다.

 

 

 

 

 

 

 

탓이란 자기 합리화 또는 적극적으로 살기 싫은 생명들의 변명일 뿐,

잡초로나 불리워지는 풀 한포기들도 살기 위해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는데 절대 다른 생물에게 직접적인 해를 끼치진 않는다.

 

동물이나 식물들은 사람에게는 배울 것이 없고 사람은 동식물에게서 배울 게 너무 많다.

인간은 자신의 생존본능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도 타인에게 잘나 보이기 위해 자기 자신을 뜯어고치고

식물은 태어났으니 살아내기 위하여 가장 낮은 곳 작은 구멍 한곳에서도 치열하게 버텨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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