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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은지심

파프리카 도시락 소풍 도보여행 그릇 필요치 않는 도시락

까미l노 2015. 5. 17. 22:01



주변을 둘러보면 숲에 지나치게(?)많이 번진 환삼덩굴과 누리장 나무들의 새순이 나오는 걸 볼 수 있다.

부드러운 것을 따서 살짝만 데치고 땅두룹 새순이며 더덕 덩굴 새 이파리와 산뽕나무의 새순 이파리 그리고 다래 덩굴나무 새순을 따서

생으로 참기룸과 꺠와 고추장을 넣고 쓱쓱 비벼 양배추 삶은 것에 담아 먹으면 꽤 괜찮다.

 


이렇게 비비거나 김치와 햄을 조금 작은 깍뚜기 썰기로 넣고 계란으로 볶음밥을 해서 조금 큰 파프리카를

윗부분을 잘라 뚜껑으로 하고 볶음밥을 담아서 소풍갈 때 먹은 후 파프리카는 후식으로 먹으면 괜찮을걸...

 

 

 

도시락 싸기 귀찮다는 생각이 단 한 시라도 드는 여자라면 제아무리 훌륭하고 바쁘고 좋은 엄마였대도 허울좋은 거짓일 뿐이고 엄마로서의 자격조차 없다.

밥 정도야 좀 먹을 수 있는 형편에 놓인 국민이라면 무상 급식 따위는 반대도 할 줄 알아야 하고 내 자식 먹거리 내 손으로 좀 만들어줘야지...

 

비단 그거 여자인 엄마 탓만 하랴,

별 그다지 바쁘지 않은 애비들도 마찬가지,

 


 

밤이면 밤마다 유흥과 술에 쩔어 직장과 사회생활 고달프다는 변명으로 지랄들 하는 삶만 즐기지 말고

솜씨 탓은 핑계일 뿐 일찍 일어나서 아이들 도시락 성의껏 만들어 쥐어서 학교 보내줘봐라...

거기서부터 인성교육이며 성심 바른 아이들로 자라게 된다.

 
지금은 초등학교라고 하지만 그 당시에는 국민학교라고 했었다.

어릴적 등하교는 부지런히 걸음을 재촉할 이유가 없었기에 온갖 해찰들을 하면서 걷기에 대략 30분 정도 걸어서 가는 길이었다.

 

 

그 길을 하루 두 번 왕복을 하게 되었던 것인데 소원이었던 도시락을 한 번도 싸간 적이 없었고

등 하교 한 번의 왕복과 점심 먹으러 또 왕복으로 집에까지 왔다 가야 했었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면 귀찮아서라도 아예 굶고 말았을테지만 그땐 배고픔은 견딜 수 없는 어린애였기 때문이리라,

그래봐야 집으로 점심을 먹으러 도착하면 가져갈 것 없는 집의 대문은 자물쇠로 잠겨있고

담장 옆 시멘트 블록아래 숨겨둔 열쇠로 문을 따고 들어가면 이불 아래 쌓여진 찬합엔 말라 붙어가던 밥과

냉장고도 없는 찬장 속의 신 김치 뿐이었지만 왕복 이십 여분을 걸어야 했기에 고픈 배 때문으로도 밥맛은 좋을 수 밖에 없었다...

 


초딩시절엔 나도 점심시간에 교실에서 도시락 한 번 먹어보는 것과 교복 한 번 입어 보는 게 소원이었다.

그 소원들은 지금에사 옷은 내 맘대로 사 입을 수 있겠지만 점심 밥 먹는 게 귀찮지 않은 날엔 내 손으로 도시락을 싸 가고 있는 셈이다...

 

 

딱 한 번 6학년 때  여름 하복을 입을 수 있었는데

불교 학생회장이었던 누나의 꾐에 빠져 절에 따라 갔었다가 무식한 중놈에게 봉변까지 당하고 교복은 더 이상 못입게 되어버렸었는데...

(어릴적 나는 합천 해인사에서 태어았었고 당시엔 우리 집이 해인사 경내에 있었고 내 종교도 그냉 불교인줄로만 알았엇다)

 

벙당 안에 있다가 소변이 급해 나왔다가 호장실을 찾지 못해 절마당 숲의 나무에서 볼일을 보다 중놈에게 들켜 혼 나는 건 괜찮았는데 따귀를 얻어 맞았었다.

초딩이 나무에다 급한 볼일을 봤다고 부처님이 노할 리 없을텐데도 그 땡중 놈 때문애서라도 아직도 나는 불교라는 종교가 싫다.

물론 그 이후로 절마당에 들어서게 되어도 절은 하지 못하고 있다...

 

 

 

따귀를 얻어 맞고서 법당 안으로 들어서려고 신발을 벗어 신발장에 넣는데 아랫칸이 신발들로 꽉 차서 맨 위칸에다 넣으려다가

나무로 만들어진 신발장이 기우뚱거렸고 언 미친 중놈의 새끼가 거기다 빨간 페인트 통을 얹어놓았는지 그만 내 하얀 교복위로 쏟아져 버렸다...

 

-초딩6년 동안 딱 반나절 입어보고 끝난 내 여름 하얀 교복의 추억-

 

 

그 누난 지금 형제들과 소식도 주고 받지 않는 사람이고 형이 세상을 떠났을 때 알려준 내 휴대폰으로 온 한줄 문자는

나보다 더 오래 살 줄 알았더니 일찍 갔네? 그것으로 끝이었던 사람이다...

이웃 사촌 보다 더 못하기도 하지만 차라리 남 보다 더 못한 손 위 형제로 기억 남았을 뿐, 

 

조카랑 둘을 내 돈으로 오랫동안 암보험을 불입해 주었었는데 암에 걸려 막내랑 둘이 보험금 수령하러 가기로 하고서

막내가 작은 오빠 양복이라도 사줘라고 하자 약속한 날 하루 전 몰래 가서 수령하고선 그 후론 입 밖에도 꺼내지 않는다고 했다.

누나 라는 대상이라 하도 이해가 되지 않아서 이런 글도 쓰게 된다...

 

아직도 따뜻한 내 밥과 도시락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꿈은 절대 이뤄지지 않는다...

다만 꿈으로서 남겨둬야만 하는 것이고 탓은 온전한 내 탓이 맞다...

 

 

이 주길노믜 사랑

좀처럼 떨어지지 않은 채 오랫동안 사랑에 빠져있는 숲모기들의 짝짓기

천적에 노출될 위험때문에 서둘러 짝짓기를 끝내는 육식동물들과는 달리 곤충들의 사랑은 매우 격렬하면서도 장시간 지속된다.

 

숫놈이 암놈보더 덩치가 작은 동물들의 세계

사마귀 개구리 잠자리 달팽이들의 사랑을 보면 참으로 대단하고 존경할만 한 삶이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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