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진달래 본문
진달래는 전국에 넓게 분포하는 낙엽활엽관목이다. 생육환경은 토양조건에 관계없이 반그늘과 양지에서 잘 자란다. 뒷면은 엷은 녹색으로 긴 타원형이고 뾰족하며 톱니가 없다. 꽃은 자홍색 혹은 연한 홍색으로 가지 끝에 한 송이 혹은 몇 송이가 먼저 피고 그 후 잎이 나온다. 꽃은 암술이 수술보다 길어 밖으로 돌출되어 있고, 꽃잎은 5갈래로 갈라지고 지름은 3~4.5㎝이고 가는 섬모가 있다. 열매는 10월경에 타원형으로 달린다. 진달래와 철쭉은 거의 동시에 개화하지만 가장 큰 특징은 진달래의 경우는 꽃이 먼저 피고 잎이 나오지만, 철쭉의 경우는 잎이 나오고 난 후 꽃이 핀다. 또한 잎에서도 큰 차이를 보이는데 진달래의 경우는 잎에 끈적거림이 많이 없는 반면, 철쭉의 경우는 잎에 끈적거림이 많다. 그래서 철쭉 잎은 동물들이 독성이 있어 잘 먹지 않는다. 주로 관상용으로 쓰이며, 꽃은 식용·약용으로 쓰인다.
꽃을 한꺼번에 많이 먹으면 눈이 침침해질 수 있으며 꽃술에 약간 독성이 있으므로 떼어내고 사용한다.
참꽃 또는 두견화라고도 한다. 전국의 50~2,000m 높이의 산야에서 무리지어 자란다. 높이는 2∼3m이고 줄기 윗부분에서 많은 가지가 갈라지며, 작은가지는 연한 갈색이고 비늘조각이 있다. 잎은 어긋나고 긴 타원 모양의 바소꼴 또는 거꾸로 세운 바소꼴이며 길이가 4∼7cm이고 양끝이 좁으며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잎 표면에는 비늘 조각이 약간 있고, 뒷면에는 비늘 조각이 빽빽이 있으며 털이 없고, 잎자루는 길이가 6∼10mm이다.
꽃은 4월에 잎보다 먼저 피고 가지 끝 부분의 곁눈에서 1개씩 나오지만 2∼5개가 모여 달리기도 한다. 화관은 벌어진 깔때기 모양이고 지름이 4∼5cm이며 붉은빛이 강한 자주색 또는 연한 붉은 색이고 겉에 털이 있으며 끝이 5개로 갈라진다. 수술은 10개이고 수술대 밑 부분에 흰색 털이 있으며, 암술은 1개이고 수술보다 훨씬 길다.
열매는 삭과이고 길이 2cm의 원통 모양이며 끝 부분에 암술대가 남아 있다. 관상용으로 심기도 하고, 꽃은 이른봄에 꽃전을 만들어 먹거나 진달래술(두견주)을 담그기도 한다.
한방에서는 꽃을 영산홍(迎山紅)이라는 약재로 쓰는데, 해수·기관지염·감기로 인한 두통에 효과가 있고, 이뇨 작용이 있다.
한국·일본·중국 등지에 분포한다.
흰색 꽃이 피는 것을 흰진달래(for. albiflorum)라고 하고, 작은 가지와 잎에 털이 있는 것을 털진달래(var. ciliatum)라고 하며 바닷가와 높은 산에서 흔히 자란다. 털진달래 중에서 흰색 꽃이 피는 것을 흰털진달래(for. alba)라고 하며 해안 근처에서 간혹 볼 수 있다. 잎이 둥글거나 넓은 타원 모양인 것을 왕진달래(var. latifolium)라고 한다.
바닷가 근처에서 자라는 것 중에서 잎에 윤기가 있고 양면에 사마귀 같은 돌기가 있는 것을 반들진달래(var. maritimum)라고 하고, 열매가 보다 가늘고 긴 것을 한라진달래(var. taquetii)라고 한다. 키가 작고 꽃도 작으며 5개의 수술이 있는 것을 제주진달래(R.saisiuense)라고 하며 한라산 정상 근처에서 자란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리인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이원수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창작했다는 「고향의 봄」은 전국민이 애송하는 동요이다. 고향의 뒷동산에 복숭아꽃 살구꽃과 함께 피어있던 진달래꽃은 화자가 어린 시절에 놀던 고향의 이미지를 함축한다. 그러나 이 노래를 알고 있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진달래꽃하면 고향을 떠올린다. 그만큼 진달래꽃은 한국인에게 있어서 가장 근원적인 고향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봄이 되면 북으로는 백두산에서부터 남으로는 제주도의 한라산에 이르기까지 잎보다 앞서 꽃을 피워 산을 온통 진분홍으로 물들이는 꽃 진달래는 오랜 세월을 두고 우리 겨레와 애환을 함께 하며 살아온 한국의 꽃이다.
진달래의 전설은 선녀와 나무꾼의 사랑에 관하여 전해진다.
하늘나라의 꽃밭을 가꾸는 아름다운 선녀가 하늘나라뿐만 아니라 인간세상에도 예쁜 꽃을 가꾸어 인간들도 즐겁게 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인간세상에 내려와서 꽃을 심다가 그만 실수로 높은 벼랑에서 떨어져 다리를 다쳤다. 때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한 나무꾼이 발을 다친 선녀를 발견하고 즉시 자기 집으로 업고 가서 지성으로 간호하였다. 선녀는 온갖 정성으로 간호하는 나무꾼이 좋아져서 곧 그와 결혼하였다. 그리하여 행복하게 사는 동안 예쁜 딸까지 하나 낳아 이름을 '달래'라고 하였다. 그러나 선녀는 앞으로 나무꾼과 이별하고 다시 하늘로 올라가야 하는 자신의 운명이 늘 괴로웠고 닥쳐올 이별이 슬프기만 하였다.
어느 해 봄, 하늘나라의 부름을 받은 선녀는 눈물을 흘리며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선녀와 이별한 나무꾼은 늘 슬픔 속에서 세월을 보냈으나 그래도 그 딸만은 예쁘게 잘 키워 어언 아름다운 처녀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해 그 고을에 마음씨 나쁜 사또가 부임해서 나무꾼의 딸을 첩으로 달라고 했다. 달래가 완강히 거절하자 사또는 달래를 감옥에 가두고 온갖 학대를 다 했다. 달래가 끝내 사또의 청을 거절하자 사또는 화가 나서 달래를 끌어내어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목을 치고 말았다.
달래가 죽었다는 소문을 들은 나무꾼은 막 달려가서 달래의 시체를 부둥켜 안고 울고 울다가 그만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그러자 달래의 시체는 온데 간데 없어지고 파란 하늘에서 빨간 꽃송이가 함박눈 쏟아지듯 내려와서 나무꾼의 시체를 덮어 꽃무덤을 만들었다.
그후 나무꾼의 무덤에는 해마다 봄이 되면 빨간 꽃이 피는데 이 꽃의 이름을 나무꾼의 성인 '진(陳)'자와 딸의 이름 '달래'를 따서 진달래라고 했다 한다.
신라 성덕왕 때에 순정공(純貞公)이 강릉태수(江陵太守)―지금의 명주(溟州)―로 부임할 때 바닷가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그 곁에는 바위 봉우리가 병풍처럼 둘러쳐서 바다를 굽어보고 있는데, 높이는 천길이나 되는 그 위에는 척촉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공의 부인 수로(水路)는 이것을 보고 가까이 모시던 이들에게 청했다.
“누가 저 꽃을 꺾어다 주겠소?”
종자들은 대답했다.
“그곳은 사람의 발자취가 이르지 못하는 곳입니다.”
그러고는 모두 안 되겠다 했다. 그 곁으로 한 늙은이가 암소를 끌고 지나가다가 부인의 말을 듣고 그 꽃을 꺾어와서는 또한 가사를 지어 바쳤다. 그 늙은이는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노인의 <헌화가(獻花歌)>는 이렇다.
짙붉은 바위 가에
잡은 암소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시면
꽃을 꺾어 받자오리다
「헌화가」는 우리 문학사에서 가장 일찍이 진달래꽃이 등장하는 작품이다. 소를 끌고 가던 노인이 꺾어 수로부인에게 바친 척촉(躑躅)이라는 꽃이 바로 진달래의 한자 표기이다. 수로부인이 갖고자했던 진달래꽃은 노인까지도 위험을 무릅쓰고 꺾어올 수 있을 정도의 가치를 지닌 것으로, 사실상 수로부인의 미모와 대등한 값어치를 지니는 사물이다. 수로부인의 미모와 진달래꽃을 대응시키는 상징적 수법을 구사한 것이다.
직접적으로 진달래의 어원은 확실하지 않다. 고려가요 〈동동〉에 나오는 '욋곶'이 진달래꽃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그것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어형으로는 가장 오래된 형태인 것 같다. 조선 중종 때 편찬된 《훈몽자회》에는 '진위'로 되어 있다.
진달래는 두견화(杜鵑花)라고도 하고 참꽃이라고도 한다. 두견화라는 것은 중국 이름으로서 두견새가 울 때에 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진달래와 두견새가 깊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그 새와 꽃 사이에 얽혀 있는 전설 때문이다.
두견새는 촉나라 망제(望帝)의 넋이라고 한다.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한을 품고 밤마다 이산 저산을 옮겨다니며 처절하게 운다는 것이다. 두견새는 밤에 우는 새다. 그것도 깊은 한밤중에 삼라만상이 잠들어 있는 그 시각에 홀로 깨어 우는 것이다. 길게 여운을 그리며 끝없이 되풀이되는 그 처량하고 구슬픈 울음 속에는 자기 가슴을 쥐어 뜯는 서러움이 담겨 있는 듯하다. 어디에도 하소연할 곳이 없어 모든 생명이 휴식하는 그 밤중에 그 어두운 밤을 견디기 위하여 울고 또 울어 밤을 지새는 것이다.
두견새는 울 때마다 피를 토하고 그 피를 또 도로 삼킨다고도 한다. 두견새가 토해낸 그 원한의 피가 진달래꽃잎에 떨어지면 그 꽃잎은 빨갛게 물이 든다고 한다. 또는 한 번 울 때마다 한 송이씩 빨갛게 피어난다고도 한다. 두견새가 토한 피로 물들여진 꽃, 그것이 두견화라는 것이다.
두견새와 두견화는 이와 같이 피로 이어진 인연이기에 두견화에는 두견새의 한이 서려 있고 두견새의 혼이 담겨 있는 것이다. 따라서 두견새의 울음소리가 원한의 상징이듯 그 피로 물들여진 진달래꽃도 정한(情恨)의 꽃으로 문학에 등장한다. 그리하여 두견새와 진달래꽃은 서로 짝이 되어 오랜 세월을 두고 시의 소재가 되어 수없이 읊어져 왔다.
진달래와 구별해야 할 꽃으로 산철쭉이 있다. 봄소식을 안고 뒷동산을 붉게 장식했던 진달래가 이울 즈음이면 연분홍빛의 철쭉이 고개를 내민다. 철쭉은 진달래와 비슷하여 얼른 구별하기 어렵다. 그러나 주의깊게 살펴보면 철쭉은 꽃잎에 주름이 잡혀 있으며 엷은 자주빛에 검은 점이 박혀 있다. 그리고 아름다우면서도 꽃과 꽃대에 끈적끈적한 점액이 있는 점이 진달래와 다르다. 또 철쭉에는 독이 있다.
진달래와 철쭉은 그 피는 시기가 다르다. 즉 진달래가 먼저 피어서 질 무렵에 철쭉이 피는 것이다. 그래서 경상남도 밀양지방에서는 진달래꽃이 진 다음에 연달아서 핀다고 하여 산철쭉을 연달래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한다.
또 진달래를 참꽃이라 한 데 대해 산철쭉을 개꽃이라고 불렀다. '개'란 개꿈·개소리·개떡 등의 경우와 같이 흔히 참된 것이나 좋은 것이 아니라는 접두어로 사용되었는데 여기서는 참꽃에 대한 반대 개념으로 사용된 것이다. 그런데 꽃의 생김새로 보아서는 철쭉쪽이 훨씬 더 탐스러운 꽃인데도 거기에다 굳이 '개'자를 붙인 것은 피어나는 서열을 따져서 그랬던 것 같지는 않고 아마도 진달래는 먹을 수 있고 철쭉은 먹을 수 없다는 데서 참꽃과 개꽃으로 부르게 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제주도에서 한라산 해발 50~1,100m 지역 산복(山腹) 숲속에 자생하는 진(眞)철쭉도 이곳에서는 참꽃나무로 부르고 있다. 그 외 속명으로 제주도두견·제주도참꽃나무·신달위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 제주참꽃나무는 5월에 꽃이 핀다.
경상북도 청송의 주왕산(周王山)에서 5월 초순경에 피는 철쭉을 이곳에서는 수달래(水丹花, 壽斷花)라고 부른다. 주로 물가에서 군락을 이루며 꽃이 피는데 이 꽃은 그 옛날 신라 때 청운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한을 품고 죽은 중국 진(晋)나라의 후예 주왕(周王)의 넋이라는 전설이 전한다
신라 향가 〈헌화가(獻花歌)〉에는 척촉(躑躅)의 꽃이 등장한다. 여기에 나오는 척촉을 보통 철쭉으로 번역하고 있으나 이를 진달래꽃으로 보아야 한다는 설이 있다. 그것은 첫째로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옛날에는 진달래를 한명으로 '척촉(躑躅)'으로 기록하였고 오늘날에도 지방에 따라서는 진달래는 참꽃이라 하고 진달래는 철쭉을 가리키는 곳이 있다는 것이고, 둘째로 진달래는 우리나라에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꽃일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여인들이 좋아했던 꽃은 철쭉꽃이 아니라 진달래꽃이었으며 오늘날에도 진달래꽃은 이를 꺾어 머리에 꽂거나 꽃병에 꽂는 일이 있지만 철쭉꽃은 좀처럼 그런 일을 볼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수로부인이 꺾어 주기를 바랐던 꽃은 철쭉꽃이 아니라 진달래일 것이라는 것이다.
세종 때 《양화소록》의 저자 강희안(姜希顔)은 화품을 매기면서 빛이 붉은 홍진달래(紅杜鵑)에 6품을, 그리고 빛이 하얀 백진달래(白杜鵑)에 더 높은 5품을 매겼다.
그것은 백진달래가 홍진달래보다 메마르고 각박한 땅에 자라면서도 마치 두견새가 촉(蜀)나라가 있는 북쪽을 향해 울 듯이 백진달래도 북쪽을 향해 잘 피기에 일편단심의 절조를 가상히 여겨 화격(花格)을 삼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화암(花庵)의 9등품에서는 6등으로 품열되어 있다.
진달래는 색깔이 피를 연상케할 뿐만 아니라, 전국시대 말기 촉(蜀)의 망제(望帝)인 두우(杜宇)와 관련되어 죽음을 뜻하는 꽃으로 상징되어 왔다. 억울하게 죽은 두우의 넋이 두견새가 되었고, 이 두견새가 울어서 토한 피가 물들어 두견화, 즉 진달래가 되었다는 것이다. 진달래꽃의 시각적 이미지는 두견새(소쩍새, 귀촉도, 접동새)의 울음이라는 청각적 이미지와 종종 결합하여 죽은 제왕, 죽음의 다짐, 죽음의 비애 등으로 다양하게 용사(用事)되었다.
단종의 작품으로 전하는 시는 숙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등되어 영월 땅으로 유배되었을 때 그 유배지에서 두견새의 슬피 우는 소리를 듣고 자신의 처지를 슬퍼하여 지은 시이다. 한이 맺힌 두견새는 울다 지쳐 새벽에야 소리가 그친다. 여기에서 두견새는 “원통한 새 한 마리”로 화자와 동일시되어 있다. 그 배경에는 말할 것도 없이 두우의 넋이라는 고사(故事)가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꽃과 잎은 봄에 채취하여 생것을 쓰거나 바람이 잘 통하는 그늘에 잠시 말려서 쓰고, 뿌리는 가을~봄에 채취하여 햇볕에 말려서 쓴다. 고혈압, 관절염에 뿌리 · 줄기 · 잎 말린 것 30g을 물 1,200㎖에 넣고 달여서 마신다. 기관지염에 꽃술을 떼어낸 생 꽃을 같은 양의 흑설탕에 재워서 효소를 만든 뒤 물에 타서 먹는다.
꽃을 한꺼번에 많이 먹으면 눈이 침침해질 수 있으며 꽃술에 약간 독성이 있으므로 떼어내고 사용한다.
고려의 개국공신인 복지겸(卜智謙)에 얽힌 전설이다.
복지겸이 왕건이 통일할 때 공을 세우고 나라의 지략가로 활약하다가 노후에 고향인 면천으로 돌아왔다. 그가 원인 모를 병이 들어 온갖 좋다는 약을 다 써도 병이 낫지 않자, 그의 어린 딸 영랑이 아미산(면천 소재)에 올라 100일 기도를 드렸다. 어느날 꿈속에서 산신령이 나타나 이르기를 “날이 새면 은행나무 두 그루를 구해다가 뜰에 심고 앞산에 올라가 진달래꽃을 따 안샘(지금 면천초등학교 뒤에 있는 우물)의 물로 술을 빚어 100일 후에 드리면 병이 나을 것이다.”라고 했다. 영랑이 그대로 하였더니 아버지의 병이 나았다고 한다. 영랑이 정성스럽게 심고 가꾼 은행나무는 지금도 면천초등학교 교정에 서 있다.
고려의 복지겸 전설은 현재 국가지정중요무형문화재인 면천두견주의 유래와 관련된다. 면천두견주는 아버지의 목숨을 구하려던 딸의 간절한 마음으로 100일 동안의 기도 기간을 통해 숙성된 것이다. 진달래 꽃잎을 재료로 하여 향기가 좋으면서도 100일간의 숙성을 통해 다양한 약성이 우러나는 술로 잘 알려져 있다. 이렇듯 진달래꽃은 먹을 수 있고 약으로도 쓸 수 있어서 참꽃이라고 불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