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원추리 본문
원추리는 우리나라 각처의 산지 계곡이나 산기슭에서 자라는 다년생 초본이다. 생육환경은 습도가 높으면서 토양 비옥도가 높은 곳에서 자란다. 키는 50~100㎝이고, 잎은 길이가 60~80㎝, 폭이 1.2~2.5㎝로 밑에서 2줄로 마주나고 선형이며 끝이 둥글게 뒤로 젖혀지고 흰빛이 도는 녹색이다.
꽃은 황색으로 원줄기 끝에서 짧은 가지가 갈라지고 6~8개의 꽃이 뭉쳐 달리며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시들며 계속 다른 꽃이 달린다. 열매는 9~10월경에 타원형으로 달리고 종자는 광택이 나며 검은색이다. 관상용으로 쓰이며 어린잎은 식용, 뿌리는 약용으로 이용한다.
넘나물이라고도 한다. 산지에서 자란다. 높이 약 1m이다. 뿌리는 사방으로 퍼지고 원뿔 모양으로 굵어지는 것이 있다. 잎은 2줄로 늘어서고 길이 약 80cm, 나비 1.2∼2.5cm이며 끝이 처진다. 조금 두껍고 흰빛을 띤 녹색이다.
꽃은 7∼8월에 핀다. 꽃줄기는 잎 사이에서 나와서 자라고, 끝에서 가지가 갈라져서 6∼8개의 꽃이 총상꽃차례로 달린다. 빛깔은 주황색이고 길이 10∼13cm, 통부분은 길이 1∼2cm이다. 포는 줄 모양 바소꼴이며 길이 2∼8cm이고, 작은꽃줄기는 길이 1∼2cm이다.
안쪽화피조각은 긴 타원형이고 막질(膜質:얇은 종이처럼 반투명한 것)이며 나비 3∼3.5cm이다. 수술은 6개로서 통부분 끝에 달리고 꽃잎보다 짧으며, 꽃밥은 줄 모양이고 노란색이다. 열매는 삭과로서 10월에 익는다. 양지바른 곳에서 잘 자라며 번식은 종자나 포기나누기로 한다.
동아시아 원산으로서 흔히 관상용으로 심는다. 어린순을 나물로 먹고, 꽃을 중국요리에 사용하며 뿌리를 이뇨·지혈·소염제로 쓴다. 꽃이 여러 겹인 것을 왕원추리(var. kwanso)라고 한다. 한국·중국 등지에 분포한다
원추리는 우리나라 자생종으로 여러 종류가 있다.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로 뿌리는 한약 재료로 쓴다. 봄에 돋아나는 연한 잎은 나물로 이용한다. 해가 드는 양지바른 곳에서 잘 자란다. 나리와 마찬가지로 종류가 많다(각시원추리, 노랑원추리, 섬원추리, 왕원추리, 골잎원추리, 애기원추리 등). 주로 꽃의 모양이나 색깔에 따라 붙여진 이름이다
원추리는 들이나 산에서 많이 자란다. 번식은 씨앗이나 포기나누기로 가능하므로 모양 좋고 마음에 드는 원추리를 봐두었다가 꽃이 지는 늦여름이나 가을에 씨앗을 받거나 봄에 포기나누기를 한다. 정원이나 화단에 원추리 몇 포기가 있으면 그 주변에 씨앗이 떨어져 자라는 포기를 옮겨 심는다. 여러 해 지난 포기는 뿌리가 많이 번성하므로 포기나누기 해도 된다.
원추리는 이른 봄에 싹을 틔워 자란다. 처음에는 펼쳐진 부채 모양으로 자라다가 나중에는 골이 파진 잎줄기가 생긴다. 봄에는 주로 활처럼 휘어진 잎을 키우고, 여름이 되면 꽃대를 세우고 꽃을 피운다. 꽃은 여러 개의 봉오리가 차례로 생기는데 하룻동안 피었다 진다.
이른 시기에 싹을 틔우기 때문에 초기에 풀이 주는 어려움은 덜하다. 그러나 자라면서 잎줄기가 크지 않고 꽃대만 자라므로 잎이 풀에 묻혀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 아래에 있는 풀을 정리해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가끔은 원추리 꽃대에 진딧물이 많이 붙어 있는 경우도 있다. 어느 정도 비옥한 곳에서 잘 자라므로 봄에 한 번 정도 웃거름을 준다. 포기에서 20㎝ 정도 떨어진 곳을 호미로 약간 긁어내고 퇴비를 한주먹 넣고 다시 흙을 덮어둔다. 옮겨 심을 때, 밑거름보다는 웃거름을 주는 편이 쉽고 관리하기도 편하다. 즉, 웃거름을 줄 때 풀도 정리해 포기 주변에 덮어두면 수분유지에 도움이 된다.
원추리는 우리나라에서 오랜 옛날부터 사랑받아 온 아름다운 화초로 6종이 자생하고 있다. 원추리를 물명고(物名考)에는 “원쵸리”라 하고 물보(物譜)에는 “원츌리”라 했는데 아마도 중국명인 훤초(萱草)가 변하여 된 이름으로 생각된다.
훤초(萱草)는 근심을 잊게 한다는 뜻의 이름으로서 한나라 때의 허신(許愼)이 쓴 『설문해자(說文解字)』에 ‘훤(萱)은 사람의 근심을 잊게 하는 풀이다’ 라는 설명을 하고 있다.
그리하여 중국 진나라(3세기)대에는 사람과 헤어질 때는 작약을 선물하고, 먼 곳으로 떠난 사람이 돌아오게 하고 싶을 때는 당귀를 선물하며, 근심을 잊게 하기 위해서는 원초를 선물한다는 풍습이 있었다고 전한다.
이 점은 당나라 때의 현종이 양귀비와 함께 청화궁(淸華宮)에서 모란꽃을 즐기다가 “오직 원추리는 근심을 잊게 하고 모란꽃은 술을 더욱 잘 깨게한다”고 한 싯구에서도 잘 알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은 우리나라에도 전해 내려와 집 뜰이나 장독대 옆에 심어져 있어 시인들의 시제로서 시름을 잊게 했다
또 원추리꽃을 집안에 심으면 집의 부귀영화를 불러올 수 있다고 믿었다. 또한 원추리의 꽃봉오리 모양이 사내아이의 ‘고추’를 닮은 탓에 집안에 심기도 한다.
손수 의남초의 꽃을 따노니
새로 백자화가 활짝 피었네
햇무리가 진 듯 두 뺨이 붉게 달아올라
더위를 씻고자 빙과를 씹는도다
手摘宜男草
新開百子花
潮紅暈雙臉
沃暍嚼氷瓜
옛날 어머니들은 임신하면 이 봉오리를 머리에 꽂고 다니는 풍습이 있어, 이 꽃을 ‘의남초(宜男草)’라고 부른다. 그리하여 임산부가 이 꽃을 왼쪽 머리에 꽂고 다니거나 저고리 깃에 꽂고 다니면, 뱃속에 든 태아가 계집아이일지라도 원추리의 주력(呪力)으로 사내가 된다고 믿는다. 의남은 아들을 많이 낳은 부인을 부르는 말로, 일종의 남근숭배 사상의 잔영이기도 하다.
원추리는 가을이 지나면 마른 잎이 떨어지지 않고 겨울 동안 새싹이 자랄 때까지 싹을 덮어 거름 역할을 한다. 이런 모습을 엄마가 아기를 보호하는데 비유하여 ‘모애초(母愛草)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래서 부인들이 아이를 가졌을 때 원추리 꽃을 심거나 그 잎을 말려서 차고 다니면 반드시 아들을 낳으며 걱정을 잊을 수 있다는 속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시경의 백혜에는 ‘뒤 뜰에 (훤초를) 심어 볼텐데’라는 구절이 있다. 여기서 뒤뜰로 번역한 ‘배(背)’는 북방을 의미하며 ‘사랑하는 사람을 전쟁터로 보낸 여성’, ‘자식의 무사를 비는 어머니’로 확대 해석되어 훤초는 자애로운 어머니를 상징하게 되었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지금도 모친절(母親節)에 카네이션 대신 훤초를 선물하거나 나이 드신 어머니 생신에 ‘수훤도(壽萱圖: 장수를 상징하는 영석(靈石)과 훈초를 그린 그림)’를 선물하는 풍습이 있다
이 꽃을 합환화(合歡花)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것은 꽃봉오리의 생김새 때문이다. 부부 화합의 기쁨은 득남의 전제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원추리꽃이나 순을 삶아 먹고 합방하면 아들을 가진다고 습속이 있다.
한국화에 ‘바위 옆에 원추리를 그린 그림’이 있는데, 바위가 십장생의 하나로 ‘장수’를 상징한다면 이 그림은 결국 생남 장수(生男長壽)를 상징하는 그림으로 여겨진다. 그런 이유에서 이런 그림은 여자의 방에 대개 걸기도 한다.
『동의보감』초부(草部)에는 훤초(萱草)는, 6~7월 꽃이 한창 필 무렵, 꽃술을 따 버리고 깨끗한 물에 한소끔 끓여 내어 초를 쳐서 먹는다 하였다. 입에 넣으면 맛이 신선 음식 같아 보드랍고 담박함이 송이보다 나아서, 남새 중에서 으뜸이다. 중국 사람으로 통판(通判)을 지낸 군영(君榮)이 이 나물을 만들어 먹었다 하였으니, 중국에서도 우리나라와 같이 원추리꽃과 같이 밥을 비벼 먹은 것으로 볼수 있다.
황화채는 넘나물 또는 광채(廣菜)라고도 하는데, 원추리의 꽃과 잎을 데쳐, 식초, 소금, 기름에 무친 것을 말한다. 또 세간에서는 원추리의 어린 싹과 꽃을 따서 김치[菹]로 만들어 먹기도 한다.
홍만선의 『산림경제』에서는 6~7월 꽃이 한창 필 무렵 꽃술을 따서 깨끗한 물에 한소금 끓여내어 초를 쳐서 먹는다고 했다. 입에 넣으면 맛이 신선 음식 같아서, 부드럽고 담백함이 송이보다 나아서 남새 중에서 으뜸이라고 하였다. 또 조선인들이 이 꽃을 말린 것을 중국 땅에 와서 팔았는데, 이를 황화채로 불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원추리 꽃의 심(꽃술)을 따서 버리고 밥을 지을 때 꽃을 넣어 밥을 물들인다. 이 밥은 근심을 잊으려는 벽사(辟邪)의 뜻이 함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