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복숭아 본문
복숭아꽃은 쌍떡잎식물강 장미목 장미과 나무인 복사나무의 꽃이다. 복사나무는 크기 6m 정도이며, 꽃의 색깔은 연홍색이다. 개화시기는 4~5월경이고 과실의 수확시기는 7~9월이다. 잎보다 먼저 연홍색의 꽃이 1~2개씩 가지 끝 짧은 꽃줄기 끝에 달리는데. 꽃잎은 5개로 원형이고, 꽃받침잎은 난형이다. 어긋나게 달리는 잎은 타원상 피침형으로 가장자리에 둔한 톱니가 있다. 잎자루에는 밀선이 있다.
복숭아꽃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과실의 맛이 좋아 우리나라 사람들이 선호하던 꽃이다. 대표적인 양목(陽木)으로 알려져 동쪽으로 난 가지가 귀신을 쫓는다는 속설이 있으며, 꽃 과 열매가 선경(仙境)과 불로장생(不老長生)을 의미하는 신선들의 과일로 상징된다. 한편 복숭아꽃 자체가 화려하므로 시세에 아첨하는 무리들로 흥히 표상된다. 이점은 사군자와 대조되는 문학적인 알레고리로 이해된다.
장송이 푸른 곁에 도화는 붉어있다
도화야 자랑 마라 너는 일시 춘색이라
아마도 사절 춘색은 솔뿐인가 하노라.
長松이 푸른 겻헤 桃花 불거 잇다
桃花야 쟈랑 마라 너 一時 春色이라
아마도 四節 春色은 솔인가 노라.
백경현의 시조는 대조 효과를 활용한 것이다. 복숭아꽃은 솔보다 아름답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자태에 불과하므로 장송의 모습에 비유할 바가 못된다는 것이다. 푸른 장송 옆에서 붉은 자태로 자기의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는 복숭아꽃은 곧 절의를 지키는 충신을 옆에 두고 간사하게 아첨을 떨고 있는 신하를 표상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국화의 경우에도 그 정절을 돋보이게 하기 위하여 비천한 자의 대명사격인 복아꽃과 자두꽃(도리화)를 연계시킨다.
모든 꽃은 여인을 상징하지만 특히 복숭아꽃은 맑고 아름다운 여성을 상징한다. 그래서 아름다운 여자의 얼굴을 도검(桃瞼)이니 도화검(桃花瞼)이니 말한다. 또 뛰어난 미인을 "복숭아꽃이 부끄러워하고 살구꽃이 사양을 한다(桃羞杏讓)"라고 표현하였다. 그리고 여인들의 아름답고 진한 화장을 도화장(桃花粧)이라고 한다.
또한 미인의 양협(兩頰)의 색차(色差)를 묘사하는 데 있어서는 거의 예외없이 도화색에 비유하고 있다.
복숭아꽃의 미를 사랑하여 여자 이름에 쓴 것으로 신라 때의 선도성모(仙桃聖母)·도화랑(桃花娘) 등을 들 수 있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도화랑은 자용염미(姿容艶美)하여 진지왕(眞智王)이 반할 정도였다고 한다. 또 기녀의 이름에는 '도(桃)'자가 흔함을 볼 수 있다. 홍도(紅桃)라는 이름은 기생 이름의 대명사격이다.
구한말 고종이 사랑했다는 기생의 이름도 도화라고 했다. 엄귀비(嚴貴妃)는 도화를 질투하여 왕 몰래 도화를 불러 그 얼굴을 바늘로 찔러 상처를 내고는 악질에 걸렸다고 쫓아냈다고 한다.
복숭아의 원산지는 중국 황하유역의 상류지대라고 한다. 이 야생종 과실은 표면에는 짧은 털이 밀생하고 크기가 작으며 과육과 핵이 떨어지는 이핵종(離核種)으로 현지인들은 이를 '모도(毛桃)'라고 부른다고 한다.
복숭아는 원산지인 중국에서는 가장 오랜 연혁을 가진 식물로서 그 재배는 중국의 농업과 기원을 같이 하고 있다. 중국 고서에 나와 있는 오과(五果) 오곡(五穀) 속에는 복숭아가 들어 있다.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에는 복숭아의 재배종에 관한 기록이 있고 《도경본초(圖經本草)》에는 대과종(大果種)과 특산지에 관한 기록을 볼 수 있다. 또 유명한 《제민요술(齊民要術)》에는 품종의 이름을 기술하고 있다. 이들 기록으로 보아 중국에서의 복숭아의 재배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복숭아는 기원전 1~2세기 경 상인의 손에 의하여 페르시아로 옮겨지고 다시 아르메니아를 경유해서 희랍·로마지방에 건너간 것이 기원전 1세기 경이라고 하며 여기에서 유럽 각국에 서서히 퍼져 나갔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복숭아가 언제 전래되었느냐 하는 것에 대해서는 확실한 기록이 없으나 《삼국유사》 등에 복숭아나무에 관한 기록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오래 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자생했던 야생종에는 대과종이 보이지 않으며 따라서 현재 재배되고 있는 품종의 모계인 중국종과는 그 계통이 다른 종류로 추측된다.
우리나라 기록에는 오얏[李]과 더불어 《삼국사기》에서는 8월과 10월의 이상개화(異狀開花)에 대하여 "복숭아와 오얏꽃이 피었다(桃李華)" 또는 "복숭아와 오얏꽃이 다시 피었다(桃李再華)"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는데 백제 온조왕(溫祚王) 3년(서기전 16년), 신라 파사이사금(婆娑尼師今) 23년(103년), 나해이사금(奈解尼師今) 8년(203년), 경덕왕(景德王) 22년(763년), 흥덕왕(興德王) 8년(833년), 고구려 안원왕(安原王) 10년(540년) 등에 나타나 있다. 이로 보아 백제에서는 건국 초인 서기전 1세기경부터, 신라는 서기후 1세기경부터 궁내의 뜰에 관상이나 식용을 목적으로 심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울산과 통도사 중간에 언양이라는 읍이 있고 여기에서 서북쪽으로 화장산(花藏山)이 있는데 이 산을 그렇게 부르게 된 데는 다음과 같은 내력이 있다.
옛날 신라 때 이 산기슭에 사냥꾼 일가족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이 사냥꾼은 산꼭대기에 있는 큰 바위틈에서 나온 독사가 내뿜는 독기를 받아 죽어 버리고 그 아내도 남편의 원수를 갚으러 바위틈으로 갔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역시 독사의 독을 받고 집에 돌아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잃은 두 남매는 혹시 아버지와 어머니가 다시 살아서 돌아오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에 추운 겨울날 산을 헤메다가 그만 지쳐서 눈속에 쓰러져 눈을 감아 버렸다. 그 아버지와 어머니의 혼령은 두 남매의 죽음을 불쌍히 여겨 남매의 혼을 복숭아꽃으로 만들었고 이 꽃은 눈속에 피어 향기를 품고 있었다.
이때에 신라 조정에서는 왕이 중한 병에 걸려 천하의 명의가 와서 좋은 약을 다 구해와도 왕의 병은 조금도 차도가 없었다. 이때 어느 의원이 왕에게 복숭아꽃을 잡수시면 병환이 낫겠다고 하였으나 한겨울에 복숭아꽃을 구할 길이 없었다. 그러나 혹시나 하여 전국을 뒤지던 중 언양지방 화장산 기슭에서 복숭아꽃을 발견하게 되고 왕은 이 꽃을 먹고 병환이 나았다고 한다.
그런데 왕의 사자가 복숭아꽃을 꺾을 때 꽃술이 땅에 떨어져 누이의 정(精)은 소나무 숲이 되고 아우의 정은 대나무 숲이 되었는데 그후 이 산을 화장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서울의 도화동은 복숭아나무가 많고 봄이 되면 복숭아꽃이 피어 경치가 좋아서 복사골이라고 불렀다.
옛날 이 복사골에는 마음씨 고운 김씨라는 노인이 살고 있었는데 김노인에게는 도화낭자라는 무남독녀의 아름다운 딸이 하나 있었다. 이 도화낭자는 얼굴 모습도 아름답거니와 마음씨 또한 착해서 효녀로 이름이 났는데 이러한 소문이 저 하늘나라인 천궁에도 알려져서 옥황상제께서는 이 도화낭자를 며느리로 삼겠다고 선관(仙官)을 내려 보냈다. 김노인은 딸이 천궁으로 시집간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영광스러운 일이니 기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애지중지 키워온 외동딸을 천궁으로 보내게 되면 딸의 모습을 다시는 볼 수 없게 될 터이니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이러한 김노인의 마음을 애처롭게 생각한 천궁의 선관은 천상의 선도(仙桃)를 한 개 주고 갔다.
선관이 주고 간 선도 복숭아는, 이것을 먹으면 천 년을 산다는 복숭아였지만 김노인은 딸 생각에 이것을 먹지 못하고 있다가 과일은 썩고 그 대신 복숭아씨만 남았는데 이것을 땅에 심었다. 이듬해 씨에서 싹이 트고 가지가 자라나 김노인은 정성껏 이 나무를 키웠다. 나무가 자라서 꽃이 피니 김노인은 천궁으로 시집간 딸 도화낭자를 보는 듯했다.
김노인이 죽은 다음에도 이 복숭아나무는 번성하고 마을사람들은 김노인과 도화낭자를 생각하며 이 열매로 복숭아나무를 계속 심어 그 열매가 모두 복숭아꽃밭을 이루게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신비로운 전설과 함께 이 일대를 복사골로 부르게 된 것은 상당히 오래 전부터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하늘의 불로장생의 상징인 복숭아가 어떻게 인간 세상에 오게 되었는지 그 유래를 알아 보자.
손오공은 원숭이 군단의 최고위직인 미후왕(美猴王)에 즉위한 자리에서 소리친다. "나는 죽고 싶지 않다"고. 그는 군단을 떠나 고된 수행을 시작한다. 그러나 수행하던 도중에 난도산(爛桃山)의 복숭아를 따 먹고 조사(祖師) 비전(秘傳)의 선술(仙術)을 누설한 죄로 추방된다. 천상계 공직의 말석에서 일을 하게 된 그는 천상계의 도원 울타리를 넘어들어가 선도를 훔쳐 먹는다. 그 선도는 삼천 년에 한 번 열매가 열고 불로불사의 효험이 있는 것으로 서왕모의 소유이다. 오공은 다시 천상계에서 추방된다.
그런데 오공은 동료 원숭이들 생각이 나서 그들에게 선도를 가져다 주기 위하여 하늘을 날아가는데 너무 급히 서두른 나머지 그만 무석(無錫)의 태호(太湖) 물가 향양(向陽)이란 산 위에 선도 두 개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태호 물가에서 싹이 틔어 자라난 두 그루의 복숭아나무는 이윽고 열매가 열렸다. 지상에서도 선도의 맛은 변하지 않았다. 이때 천녀(天女) 두 사람이 흰 봉황과 흰 화조(花鳥)를 타고 내려와 손에 든 바구니에 정성들여 복숭아를 따서 담았다. 그 순간 가까운 나무 밑에 한 노인이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두 천녀는 각각 복숭아를 한 개씩 노인에게 먹였더니 노인은 금세 기운을 차려 일어났다. 젊음이 회복된 선도의 위력에 노인은 놀랐다. 그 내력을 천녀로부터 듣고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고 서로 헤어졌다.
젊어진 노인을 본 마을사람들이 그 비밀을 알고싶어하는 것은 당연하다. 비밀을 지키기로 천녀들과 굳게 약속했지만 노인은 마침내 선도의 비밀을 누설하고 말았다. 이 말을 들은 그 지방의 대지주는 곧바로 산에 있는 두 그루의 복숭아나무를 자기집 정원에 옮겨 심었다. 그러나 하늘의 뜻을 거스린 것이라, 그 나무는 며칠 후에 죽고 말았다. 화가 난 대지주는 노인을 추방했다. 노인에게는 실로 억울한 일이다. 그런데 그에게는 복숭아를 먹고난 뒤에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던 씨가 있었다. 이것을 가까운 산에 심었더니 두 그루의 복숭아나무는 훌륭히 자라 탐스러운 열매가 열렸다. 이것이 오늘날 전해지고 있는 수밀도 종류의 백봉도(白鳳桃)와 백화도(白花桃)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