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백일홍 본문

소금창고

백일홍

까미l노 2015. 2. 5. 10:44

백일홍은 자미화(紫薇花)라고도 부르는데 그것은 당(唐)나라의 백거이(白居易)가 지었던 「자미화시」에서 연유한다. 백거이는 중서 사인(中書舍人)으로 있을 때 “황혼에 홀로 앉았으니 누가 내 벗이 될꼬, 자미화만이 자미랑과 서로 마주하였네.[獨坐黃昏誰是伴 紫薇花對紫薇郞]”라는 시를 썼는데, 여기에서 당나라 때 자미화를 중서성(中書省)에 많이 심어서 중서성을 자미성(紫薇省)으로, 중서 사인을 자미랑이라고 부르게 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백일홍은 또한 파양화(怕痒花)라고도 했다.
옛 사람들은 백일홍나무가 마치 동물처럼 외부의 자극에 반응한다고 여겼기 때문에, “긁으면 흔들린다”는 뜻으로 파양화라고 불렀다. 이만부는 격물론을 인용하여 백일홍의 생태를 자세히 관찰하고 속명인 파양화의 유래를 설명했다.

백일홍은 부처꽃과에 속하는 낙엽활엽소교목이다. 개화기가 길어서 백일홍이라고 하는데 소리가 변하여 배롱나무라고 한다. 국화과 초본식물에도 있으므로 구별하기 위하여 목백일홍이라는 이름을 쓰기도 한다. 중국 원산으로 높이는 8m 내외이다. 잎은 마주나고 타원형이고 가장자리가 밋밋하며, 윤기가 있고 털이 없다. 꽃은 7∼9월에 피고 홍색 또는 백색이며 양성으로서 원추화서에 달린다. 꽃받침은 6개로 갈라지고 꽃잎도 6개로서 주름이 많다. 수술은 30∼40개이지만 가장자리의 6개가 가장 길고 1개의 암술은 길게 밖으로 나왔다.

백일홍의 한자명인 자미화는 당나라 때 중서성에 많이 심은 데에서 유래하어 우리나라에서도 중서성 또는 조선시대의 사간원을 상징했다. 나무껍질을 긁으면 흔들린다는 속설 때문에 파양수라고도 하는데 문학적으로는 부끄러운 여인으로 비유되기도 했다. 오랫동안 꽃이 피므로 시간의 지속성과 기다림을 상징한다.

우리나라 영남(嶺南) 지방 해안 근처 여러 고을[郡]에서 이 꽃을 많이 심는데, 비단처럼 아름답고 이슬꽃처럼 곱게 온 마당을 비춰주어 그 어느 것보다도 유려(流麗)하다. 그러나 영북(嶺北) 지방에서는 기온이 너무 차가워 얼어 죽는 것이 십중팔구이고, 다행히 호사가(好事家)의 보살핌을 받아도 겨우 죽는 것만을 면하는 것이 열 나무 중에 한둘에 불과하다. 이슬비가 올 때 가지를 잘라 꽂아 그늘진 곳에 두어 두면 곧 산다. 새 가지는 해장죽[海竹] 등으로 붙잡아 매어 주고 백양류 꼴로 수형(樹形)을 가다듬으면 아름답다. 갈무리할 때는 너무 덥게 하지 말고 마르지 않게 물을 주어야 한다.

잘 자란 백일홍나무는 대체로 옛 선비들이 지은 아름다운 정자 주변이나 혹은 깊은 산속 산사의 앞마당에서 볼 수 있다. 중국에서 들여왔지만 우리 선조들이 그 꽃을 아껴왔기에 우리나라 남부지방의 이름난 정자나 옛 원림에는 어김없이 백일홍나무들이 심어져 있다.
한편 백일홍은 우리나라에서 석류문․ 난초문 등과 함께 식물문양으로서 많이 사용되었다. 백일홍문양은 잎이 무성한 꽃으로 표현되어 있다. 백일홍의 꽃무늬는 조선시대 민화의 소재로도 흔히 그려져 병풍 등에 쓰였고, 선비들은 가구나 청화 백자에 소담하게 그려진 백일홍의 수수한 멋을 좋아하였다

옛날 어떤 어촌에서 목이 셋이나 되는 이무기에게 해마다 처녀를 제물로 바치고 있었다. 어느 해에도 한 처녀의 차례가 되어 모두 슬픔에 빠져 있는데, 어디선가 용사가 나타나 자신이 이무기를 처치하겠다고 자원하였다. 처녀로 가장하여 기다리던 용사는 이무기가 나타나자 달려들어 칼로 쳤으나 이무기는 목 하나만 잘린 채 도망갔다.
보은의 뜻으로 혼인을 청하는 처녀에게 용사는 지금 자신은 전쟁터에 나가는 길이니 100일만 기다리면 돌아오겠다 약속하고, 만약 흰 깃발을 단 배로 돌아오면 승리하여 생환하는 것이요, 붉은 깃발을 단 배로 돌아오면 패배하여 주검으로 돌아오는 줄 알라고 이르고 떠나갔다.
그 뒤 처녀는 100일이 되기를 기다리며 높은 산에 올라 수평선을 지켜보았다. 이윽고 수평선 위에 용사가 탄 배가 나타나 다가왔으나 붉은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처녀는 절망한 나머지 자결을 하고 말았다.
그러나 사실은 용사가 다시 이무기와 싸워 그 피가 흰 깃발을 붉게 물들였던 것이다. 그 뒤 처녀의 무덤에서 이름 모를 꽃이 피어났는데, 백일기도를 하던 처녀의 넋이 꽃으로 피어났다 하여 백일홍이라 불렀다 한다.

백일홍설화(百日紅說話)는 처녀의 넋이 백일홍으로 피어났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자신을 구해주고 전쟁터에 나간 용사를 백일 동안 기다리던 처녀는 이무기의 피에 물든 깃발을 보고는 용사가 패배한 것으로 오인하여 자결했다. 여기에서 백일홍은 약속한 용사를 기다리던 처녀의 넋을 상징한다

 

'소금창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꽃  (0) 2015.02.05
밤나무  (0) 2015.02.05
목화  (0) 2015.02.05
무궁화  (0) 2015.02.05
민들레  (0) 2015.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