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벚꽃 본문
우리나라에서 매년 4월이 되면, 전국적으로 벚꽃으로 이름난 곳에서는 벚꽃 구경과 놀이가 벌어진다. 대표적인 곳으로 화개~쌍계사 ‘십리벚꽃길’이며, 전주~군산 ‘전군가도’, 그리고 진해 · 사천 · 경주 · 공주 마곡사 · 부산 달맞이고개 · 서울 남산과 윤중로 등은 벚꽃 천지다. 봄을 가장 화려하게 장식하는 꽃을 꼽는다면 단연 벚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미과에 속하는 왕벚꽃나무는 국화로 삼고 있는 일본이 원산지라 주장하지만 원래는 제주도 한라산과 해남 두륜산이 원산지로 알려져 있다. 잎보다 꽃이 먼저 피는 벚나무는 번식력이 아주 강한 나무로 4월 초순부터 시작해 중순이면 전국을 하얀 꽃구름으로 뒤덮는다. 벚꽃의 개화일은 한 개체 중 몇 송이가 완전히 피었을 때를 말하므로 꽃이 만개한 시기와는 약간 다르다. 또한 벚꽃은 한 번에 흐드러지게 피었다 한꺼번에 지는 특성으로 인해 만개일을 제대로 알고 떠나는 것이 좋다.
고려시대에 몽골군의 침입을 부처님의 힘으로 막기 위해 만들었던 팔만대장경의 판은 60%이상이 산벚나무로 만들어졌음이 최근 전자현미경을 이용한 조사에서 밝혀졌다. 조선 중종 9년(1514)에 서경(書經)의 글자를 쓴 족자는 해태(海苔)로 종이를 만들고 벚나무 껍질로 조각하여 글자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대부분의 나무들이 껍질이 세로로 갈라지는 데 비해 산벚나무 포함한 벚나무 종류들은 가로로 짧은 선처럼 갈라지면서 표면이 거칠지 않고 매끄럽다. 또한 산벚나무는 계곡이나 나지막한 언덕배기 등에서 잘 자라므로 몽골군이 점령한 육지에서 몰래 한 나무씩 베어 가까운 강으로 운반하기에 안성맞춤이었을 것이다. 나무는 짙은 적갈색으로서 조직이 치밀하여 전체적으로 고운 느낌을 준다. 너무 단단하지도 않고 무르지도 않고 잘 썩지도 않아 가공하기가 쉽다
벚나무의 껍질은 화피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활을 만드는데 꼭 필요한 군수물자였다. 세종실록 ‘오례’의 내용 중에 “붉은 칠을 한 홀은 동궁이라 하고 검은 칠을 한 것은 노궁이라 한다. 혹은 화피를 바른다”고 했다. “朱漆曰彤弓, 黑漆曰盧弓, 或塗以樺皮.”
이순신의 『난중일기』 중 갑오년(1594) 2월 5일자에도 “화피 89장을 받았다”는 내용이 있다.
화피(벚나무 껍질)는 활을 만드는 데 쓰였으므로 평안도 강계도호부(平安道 江界都護府)와 함길도(咸吉道) 등에서는 공물(공물)로 국가에 바쳤음이 세종실록 지리지에 기록되어 있다. 또한 중종 21년 3월 22일에, “화피(벚나무 껍질)는 우리나라에서 금하는 물건인데 중국에 밀무역하여 우리나라에는 없게 되었다” “至如樺皮, 亦我國禁物, 而潛貿上國, 致我國空乏” 는 집의 한승정(韓承貞)이 임금에게 아뢴 말이 있다. 화피를 국가에서 금한 것은 바로 활을 만드는 데 쓰이는 군수물자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옛날 병자호란을 겪고 왕위에 오른 효종은 그 때의 치욕을 설욕하려고 북벌을 계획했었다. 효종은 서울 우이동에 수양벚나무를 대대적으로 심게 하여 그 나무를 궁재(弓材)로 하고 껍질은 활에 감아 손이 아프지 않게 하려고 했던 것인데 애석하게도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구국의 염원은 비록 성취되지 못했지만 그 뜻은 살아서 지금 천연기념물 제38호인 지리산 밑 구례의 화엄사 경내에 있는 수령 3백여 년 된 올벚나무로 이어지고 있다. 이 올벚나무는 효종의 뜻을 본받아 벽암선사(碧岩禪師)가 심은 것 중에서 살아남은 것이라 한다.
서양에서 벚꽃은 일반적으로 봄, 순결 처녀의 상징으로, 그리스도교 전설에서는 그 중의 버찌가 마리아의 성목이 된다. 마리아가 이 열매를 남편이 요셉에게 구해서 거절당했을 때, 가지가 마리아의 입안에까지 처졌다고 하며, 거기에서 꽃은 처녀의 아름다움에 열매는 천국의 과일로 비유되었다. 또한 영국에서는 한 알씩 먹으면서 결혼할 수 있는지 여부를 묻는 연애점이 있다. 꽃말은 <교양>, <정신미>, 일본의 벚꽃은 <부와 번영>, 열매가 두 개 붙은 것은 <행운>이나 <연인의 매혹>의 상징이다.